국민이 걷는 거리를 줄이고, 짐을 나르는 수고를 덜어주는 것, 그것이 기아의 할 일이다. (김철호 기아 창업주)
기아의 82년 역사는 한국 자동차 산업의 역사와 맥을 같이한다. 기아를 창업한 고(故) 김철호 회장은 국내 최초의 승용차를 만든 인물로, 한국전쟁 후 피폐해진 서민들의 삶의 질 개선을 위해 제조업 발전에 한 평생을 바쳤다. 일본에서 자전거 부품 기술을 배운 후 돌아온 그는 당대 '서민의 발' 역할을 하던 자전거 부품을 국산화하기 위해 노력했고, 기아산업을 설립한 뒤 국내 최초의 자전거 '삼천리호', 이후 국내 최초의 자동차 'K-360'을 만들며 지금의 K-자동차 산업 초석을 닦았다.
1910년대 일제 강점기부터 독립 후 한국전쟁까지, 거친 현대사를 겪은 그는 전후 황폐해진 나라를 재건할 유일한 길은 인재 육성이라고 봤다. 이는 김 창업주의 대표 어록인 "공장은 부서지면 다시 지을 수 있고, 돈은 떨어지면 다시 빌릴 수 있지만 한 번 가꿔놓은 사람을 잃으면 (기업은) 전부를 잃는 것이다"로 잘 드러난다.
설립 초반 인재 육성을 통해 기술 자립에 집중했던 기아는 김 회장의 품을 떠나 이제 현대차그룹이라는 좋은 양부를 만나 '제2의 전성기'를 보내고 있다. 인재를 통한 산업보국을 평생의 과업으로 삼았던 기아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 "인재를 잃으면, 전부를 잃는 것"... 폐허에서 시작한 '자전거 왕', 자동차 제조로 우뚝
일본 자동차 산업의 산증인 토요타그룹이 어머니 노동의 고단함을 줄이기 위한 방직기 기술 개발에서 출발했다면 기아는 가난한 국민들의 삶을 배불리고자 했던 자전거 부품 산업에서 태동했다. 창업주 김철호 회장은 일본에서 자전거 부품 기술을 배운 뒤 고국으로 돌아와 1944년 기아의 모태인 '경성정공'을 창업했다. 김 회장은 창업 초기 일본산 부품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자전거 제조의 현실을 비판하며 기술 독립에 힘썼다. 그는 "남의 나라 부품을 가져다 조립만 하는 건 진짜 제조업이 아니다"라며 "기술을 구걸하지 말고 스스로 일어서자"고 말했다. 이는 1952년 최초의 국산 자립 기술로 탄생한 자전거 '삼천리호'로 이뤄졌다. 김 회장은 '아시아(亞)에서 일어서겠다(起)'라는 거대한 포부를 담아 사명을 기아산업으로 변경했다.
기아산업은 1960년대부터 일본 마쓰다 자동차와의 기술 제휴를 계기로 자동차 제조사로 체질 개선을 선언했다. 기술 독립을 향한 직원들의 열망으로 1962년 국내 최초의 삼륜 화물차 'K-360' 개발에 성공했고, 1974년에는 한국 최초의 승용차인 '브리사' 개발로 큰 성공을 거뒀다. 1980년대 전두환 정권이 들어서면서 '자동차공업 합리화 조치'로 승용차 생산에 철퇴를 맞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기아는 승용차 대신 화물차만 생산할 수 있다는 페널티를 극복하고 승용차와 화물차의 개념을 합친 '봉고' 출시를 통해 대가족과 소상공인의 폭발적 수요를 이끌어낸다. 1987년 정권 퇴진으로 규제가 해제된 후 마쓰다·포드와 합작해 출시한 소형차 '프라이드'는 국내에서만 88만대(글로벌 누적 634만대) 판매를 기록하며 최초의 '소형 국민차' 반열에 올랐다.
김 회장은 사업 확장과 고난의 시기마다 임직원들에게 '도전 정신'을 주문했다. 창업한 직후 6.25 전쟁으로 영등포 공장이 전부 불에 타 폐허가 됐을 때, 또 자전거 부품 회사에서 자동차 제조사로 체질을 개선하면서 직원들의 거친 반대에 부딪힐 때마다 용기가 기업의 원동력이라고 강조했다.
"돈을 잃는 것은 적게 잃는 것이오, 신용을 잃는 것은 많이 잃는 것이다. 그러나 용기를 잃는 것은 전부를 잃는 것이다" 김 회장의 창업 정신은 아직 남아 기아의 도전 DNA로 살아있다.
◆글로벌 자동차 역사상 가장 성공한 M&A...현대차 품에서 '제2의 전성기'
기아는 1998년 현대차그룹에 인수된 후 '제2의 전성기'를 맞는다. 지금은 글로벌 자동차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인수합병(M&A) 사례로 평가되지만 인수 당시에만 해도 현대차는 "기아 인수로 동반 부실해질 것"이라는 우려를, 기아 역시 "현대의 서브 브랜드로 전락할 것"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기아는 플랫폼 공유를 통한 체질 개선, 디자인 경영, 성공적인 전동화 전환 등 3박자를 모두 완성하면서 화려한 부활에 성공했다.
기아를 인수한 현대차그룹의 정책은 철저한 '한 지붕 두 가족'으로 요약된다. "플랫폼과 엔진은 같이 쓰되, 디자인과 마케팅은 철저히 경쟁한다"는 정의선 회장의 원칙에 따라 독립 경쟁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자동차 개발에서 가장 돈이 많이 드는 뼈대(플랫폼)와 심장(엔진) 공유를 통해 생산 비용을 획기적으로 낮추고, 2006년 세계 3대 자동차 디자이너로 꼽히는 독일 출신의 거장 피터 슈라이어를 영입한 후 구축한 '호랑이 코(Tiger Nose)' 그릴을 바탕으로 K5·스포티지·쏘렌토·카니발 등을 연달아 성공시켰다. 최근에는 글로벌 완성차 기업 중 가장 빠른 전동화 속도를 나타내며 미래 모빌리티 '퍼스트 무버'로 활약하고 있다.
이는 실제 성과로 드러난다. 기아는 올 상반기 국내 29만 5779대·해외 133만 2473대·특수 2736대 등 총 163만 988대 판매를 기록하며 1962년 자동차 판매 시작 이래 역대 상반기 최다 판매 실적을 기록했다. 과거 상반기 최다 기록은 2025년(158만 7536대)이다. 올해 상반기 글로벌 시장에서 가장 많이 판매된 차량은 스포티지(30만 3203대)이며, 셀토스(17만 7148대), 쏘렌토(12만 5283대)가 톱3위를 기록했다.
기아의 전동화 속도는 글로벌 톱 티어 수준이다. 올해 상반기(1~6월) 국내 전기차 판매량은 7만 2078대로, 역사상 최대 실적이다. 이는 직전 최다 판매 기록인 2025년 상반기(2만 8706대) 대비 151.1% 증가한 수치다. 이미 지난해 연간 전기차 판매량(6만 820대)도 넘어섰다. EV3가 1만 8431대로 가장 많이 팔렸고, 이어 EV5(1만 5965대), PV5(1만 5000대) 순을 기록했다.
기아 관계자는 "국내·외 전기차, 하이브리드 모델 판매 호조에 힘입어 역대 최대 상반기 판매를 기록했다"며 "하반기에도 전기차 풀 라인업과 SUV 하이브리드 모델을 앞세운 지역별 맞춤형 전략으로 판매 확대를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르포] 중력 6배에 짓눌려 기절 직전…전투기 조종사 비행환경 적응훈련(영상)](https://image.ajunews.com/content/image/2024/02/29/20240229181518601151_258_161.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