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증시 체질 개선을 위한 금융당국과 한국거래소의 퇴출 칼바람이 거세다. 강화된 상장폐지 요건에 따라 주가 1000원 미만인 '동전주' 수십 곳과 시가총액 요건(코스닥 200억원)을 충족하지 못한 기업들이 무더기 관리종목 지정 및 퇴출 위기에 처했다. 당장 이달 중순부터 본격적인 관리종목 지정이 시작되는 가운데 12일 기준 코스닥 전체 상장사(1820곳) 중 9.8%에 달하는 178곳이 시총 미달로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일부 중소형 상장사들과 시장 일각에서는 "이례적인 시장 상황(증시 급락)에서 기준을 바로 적용하는 것은 지나치게 가혹하다"며 유예기간이나 제도 완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그러나 이들의 하소연을 바라보는 투자자들의 반응은 냉담하다. 실책과 방치로 스스로 자초한 자업자득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연간 매출이 30억원 수준에 불과한 일부 코스닥 소형사들의 실태는 처참하다. 이들은 상장(IPO)이나 자금 조달이 급할 때만 투자자를 찾아다니는 딜 로드쇼(Deal Roadshow)에 열을 올리며 화려한 미래 청사진을 제시한다. 그러나 정작 투자금을 확보하고 상장을 마친 뒤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 기업설명회(IR) 자체를 접어버린다.
최근 1년간 코스닥 상장사 10곳 중 6곳(59.9%·1089곳)에서 증권사 분석 보고서가 단 한 건도 나오지 않았을 만큼 시장 전반의 정보 사각지대도 심각하다. 시총과 매출이 영세한 소형사일수록 이러한 'IR 절멸' 현상은 더욱 도드라진다. 평상시 투자자와 소통하는 논딜 로드쇼(NDR)나 공모 이후 기업설명회는 자취를 감추고, 오히려 전환사채(CB) 발행과 유상증자를 남발하며 주주 가치를 훼손한다.
홈페이지에는 기본적인 보도자료나 공시 계획조차 없고 공시 및 IR 담당자는 수시로 바뀌어 소통 창구마저 닫히기 일쑤다. 회삿돈으로 접대 골프를 치고 유흥을 즐기는 데는 아까움이 없으면서 주주를 위한 최소한의 비전 공유와 소통에는 담을 쌓는 행태를 보이는 곳도 숱하게 많다. 회삿돈을 대주주 개인 주머니쯤으로 여기는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의 전형이다.
해외 선진 증시와 비교하면 코스닥의 현실은 더욱 씁쓸하다. 미국 증시에서는 당장 적자를 내는 기업이라도 적극적인 콘퍼런스콜을 통해 주주들에게 성장 로드맵을 설득한다. 일본은 주주를 단순한 투자자가 아닌 '소비자이자 충성 고객'으로 대우하며, 장기 보유 주주에게 자사 제품이나 서비스 쿠폰을 지급하는 주주우대제도를 통해 주가 부양과 주주 환원에 적극 나선다. 반면 우리 하위 코스닥 기업들은 주가 부양 노력은커녕 제도가 가혹하다며 떼를 쓰는 게 전부다.
한국거래소가 코스닥 시장 저평가와 정보 비대칭 해소를 위해 IR 활성화 및 단계적 의무화를 검토하고 나선 것도 이러한 맥락이다. 증권사 분석 보고서가 가뭄에 콩 나듯 하는 상황에서 기업마저 입을 닫으니 우량기업과 부실기업이 구분되지 않고 코스닥 전체가 할인받는 악순환이 이어지는 것이다.
가장 치명적인 문제는 퇴출의 피해가 온전히 개미 투자자들에게 전가된다는 점이다. 상장을 통해 투자금을 챙긴 대주주와 경영진 중 일부는 상장폐지가 되면 오히려 '공시 의무에서 벗어났다'며 입을 싹 닫고 안도하는 기현상마저 벌어진다. 시장의 분노가 과장이 아닌 이유다.
시가총액이 미달하고 주가가 동전주로 추락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제도를 탓하고 억울함을 호소하기 전에 스스로에게 먼저 물어야 한다. 자금 조달을 위한 딜 로드쇼 말고 주주들에게 미래 청사진을 제시하고 적극적으로 소통해 본 적이 단 한 번이라도 있는가. 주가 부양을 위한 노력을 제대로 한 적 있는가.
진정한 밸류업은 제도 완화 요구가 아니라 주주에 대한 최소한의 책임감과 지속적인 소통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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