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거래소가 요즘 시끄럽습니다. 최근 금융위원회로부터 통보받은 '2025년도 경영평가 성적표'를 두고 내부 직원들의 동요와 불만이 들끓고 있습니다. 거래소는 그간 경영평가에서 최우수(S)나 우수(A) 등급을 받아왔던 곳입니다. 그런데 이번 평가에선 무려 두 단계나 떨어진 'B등급'을 받았습니다. 거래소가 B등급을 받은 것은 2016년 이후 9년 만입니다.
등급 하락의 여파는 큽니다. 당장 직원들의 성과급은 기존 기본급의 200% 수준에서 100%로 반토막이 났고, 기관장 및 임원진의 연봉도 수천만원씩 깎이게 됐습니다. 안 그래도 지난 2021년 정부 통제로 물가 상승률조차 제때 반영받지 못하던 직원들은 "가뜩이나 당국 눈치 보느라 묶여있는데 성과급까지 반토막이 났다"며 사기가 바닥으로 떨어진 상태입니다. 어찌 된 사연일까요.
◇ 11년째 이어진 금융위의 통제
현재 지배구조상 거래소는 공기업이 아닌 민간 주식회사입니다. 주요 증권사 등 금융회사들이 주주입니다. 그런데 17년 전인 2009년 이명박 정부 당시 정부는 거래소가 방만 경영을 한다는 이유로 준정부기관으로 지정했습니다. 민간 주식회사인 거래소 입장에서는 각종 규제와 제약이라는 족쇄가 채워진 셈이었습니다. 이후 끊임없는 지정 해제 요구 끝에 거래소는 11년 전인 2015년, 드디어 공공기관에서 공식 해제됐습니다.문제는 그 대가였습니다. 당시 금융위는 공공기관을 해제해 주는 대신 거래소와 별도의 '경영협약'을 맺었습니다. 이름은 협약이었지만 실상은 금융위가 거래소의 예산 사용과 임직원 인건비, 조직 운영 전반을 통제하는 강력한 장치였습니다.
◇ 석연치 않은 등급 하향 배경
더 큰 문제는 이번 'S→B 강등'을 둘러싼 석연치 않은 배경입니다.금융위 측은 지난해 3월 발생한 유가증권시장 전산 장애(약 7분간 거래 중단 및 일부 종목 매매 정지) 등 인프라 안정성 문제를 감점 요인으로 꼽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거래소 안팎에서는 "전산 장애 감점은 수긍하더라도, 연결 당기순이익이 전년 대비 67%나 늘어난 7089억원을 기록한 상황에서 두 단계나 강등시킬 사안인가"라는 의문이 꺼지지 않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금융투자업계에서는 평가가 한창 진행되던 올해 초 불거진 단일종목 레버리지 논란이 영향이 줬다는 말도 나오고 있습니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단일종목 레버리지가 국내 증시 변동성을 키웠다는 비판이 거세지자, 평가 주체인 금융위가 부담을 느끼고 거래소의 정성평가 점수를 대폭 깎아버린 것 아니냐는 해석입니다.
문제는 '시간의 정합성'과 '책임의 귀속'입니다. 이번 성적표는 '2025년도' 성과에 대한 평가입니다. 그런데 평가가 진행 중이라는 이유로 '2026년' 들어 발생한 단일종목 레버리지 논란이 사후 반영됐다면 이는 움직이는 성적표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게다가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장과 제도 도입은 거래소가 독단으로 한 것이 아니라 금융위 및 증권선물위원회의 승인을 거쳐 추진된 정책 과제였습니다.
일각에서는 정책은 금융당국과 합의해서 만들어놓고, 사후에 여론이 악화되니 그에 따른 경영평가 덤터기와 성적표 감점은 거래소 혼자 다 뒤집어쓰는 꼴이라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금융위는 "단일종목 레버리지와 등급 하락은 무관하다"며 블라인드 평가를 강조하고 있지만 구체적인 감점 사유를 투명하게 밝히지 않다 보니 소문과 불신만 증폭되는 모양새입니다.
◇ "글로벌 경쟁 치열한데 손발 다 묶였다"
과거 거래소가 국내 시장을 100% 독점하던 시절에는 정부의 강력한 견제와 감독 명분이 작동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다자간매매체결회사(ATS)인 넥스트레이드가 지난해 3월 본격 출범하면서 국내 거래소 시장도 본격적인 복수 경쟁 체제에 돌입했습니다. 나아가 샌프란시스코, 도쿄, 싱가포르 등 글로벌 거래소들과의 인공지능(AI)·데이터·파생상품 주도권 싸움도 치열합니다. 우수 인재를 끌어오고 유연하게 조직을 돌려도 모자랄 판에, 11년 전 맺은 낡은 '경영협약'과 깜깜이 '경영평가'라는 밧줄에 묶여 손발이 다 잘린 셈입니다.
거래소 노조 역시 "독점 체제에서 맺은 경영협약은 금융 경쟁력을 해친다"며 개정 및 폐지를 요구하고 있지만 당국의 문턱은 여전히 높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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