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소영의 우.다.세] 노인을 위한 나라는 있을까 - 영화 '사람과 고기'

  • 고기 한 점이 쓸쓸한 이들에게 건네는 위로

▲ ‘다양성 영화’는 단순히 장르를 뜻하기보다 상업 중심의 주류 영화와는 다른 시선·형식·주제를 가진 영화를 포괄하는 개념이다. 다양한 국적, 장르, 소수성 등을 포함하는 범주를 갖고 있다. 누군가는 불편하다며 외면했던 이야기들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고 마주하는 역할을 기대해본다. '우'리들의 '다'양한 '세'상을 위해. ※ 이 글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사진영화 사람과 고기 스틸컷
[사진=영화 '사람과 고기' 스틸컷]

돈이 있어야 먹을 수 있고 혼자 먹기에는 어딘가 쓸쓸한 음식. 영화 ‘사람과 고기’에서 고기는 그저 한 끼 식사가 아니다. 누군가에게는 평범한 저녁 메뉴일 뿐인 고기가 누군가에게는 사치가 된다. 영화에서 고기는 잊고 있던 삶의 감각을 되찾게 하는 특별한 음식이다. 고기를 둘러싼 세 노인의 조금은 황당하고 때론 씁쓸한 여정을 따라가보자.

영화 ‘사람과 고기’는 세 노인의 연대기를 다룬다. 번듯한 양옥집에 살고 있지만 아들과 연락이 끊긴 채 홀로 살아가며 폐지를 줍는 형준(박근형)과 가족 없이 말기 암에 걸린 채 살아가는 우식(장용), 젊은 시절 한 남자의 첩으로 살다 딸 내외를 사고로 잃고 손주를 키우며 시장 한 구석에서 채소를 파는 화진(예수정)이 등장한다.

영화의 주인공은 폐지를 주우며 살아가는 형준(박근형)과 우식(장용), 그리고 골목에서 채소를 팔며 살아가는 화진(예수정)이다. 형준은 번듯한 양옥집에 살고 있지만 아들과 연락이 끊긴 채 홀로 살아간다. 집 역시 아들 소유여서 마음대로 처분할 수도 없다. 우식 역시 가족 없이 폐지를 주우며 하루를 버틴다. 화진은 딸과 사위를 사고로 잃은 뒤 홀로 남은 손주를 키워냈다. 서로 다른 삶을 살아온 것 같지만 세 사람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모두 혼자였고, 넉넉하지 않았으며, 사회의 중심에서 조금씩 밀려나 있었다는 것이다. 넉넉하지 않은 형편 속에서 기댈 곳 하나 없이 삶의 무게를 홀로 견디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들은 서로의 외로움을 알아볼 수 있었고 그것은 자연스러운 연대로 이어졌다.

이들의 연대는 소고기뭇국에서 시작된다. 우식은 마트에서 자신이 키우는 고양이에 줄 2000원 남짓한 우유는 살 수 있어도 자신이 먹고 싶은 고기는 먹을 수 없다. 폐지를 주워도 하루에 벌 수 있는 돈은 한정적이고 비싼 고기를 사 먹기란 너무 어려운 일이다. 그런 우식은 폐지를 주우며 싸우다 친해진 형준에게 소고기 뭇국을 먹자고 한다. 형준도 문득 아내가 끓여주던 따뜻한 소고기뭇국이 먹고 싶다고 말하고 우식은 고기를 구해오겠다며 나선다. 형준은 채소를 사기 위해 화진을 찾아가 소고기뭇국을 끓이는 법을 물어본 뒤 자리를 함께하자는 제안을 한다. 
 
[사진=영화 '사람과 고기' 스틸컷]
[사진=영화 '사람과 고기' 스틸컷]

결국 소고기 뭇굿으로 뭉친 세 사람은 형준의 집에서 한 식탁에 둘러앉게 되고 낯설었던 세 사람 사이엔 어느새 따스한 온기가 감돈다. 거창한 사건도 특별한 대화도 없었다. 그저 소고기뭇국을 함께 먹었을 뿐이다. 하지만 이 한 끼는 이들에게 전혀 다른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지겹게 느껴지던 이들의 삶에 생기가 감돌기 시작한다.
 
이후 세 사람은 고기를 먹으러 다니기 시작한다. 문제는 돈이 없다는 것. 우식은 삼겹살집에서 고기를 실컷 먹은 뒤 돈을 내지 않고 도망치자는 제안을 한다. 처음에 당황하던 형준과 화진도 결국 우식과 함께 식당을 빠져나온다.

그날 이후 이들은 이른바 ‘무전취식 동호회’가 된다. 이들은 나름의 규칙을 세운다. 장사가 잘 되는 식당을 고를 것, 값비싼 음식 대신 저렴한 고기를 먹을 것 등이다. 잘못된 행동을 하는 것이 분명했지만 어쩐지 이상하게도 세 사람의 표정은 점점 밝아진다. 고기를 먹고 도망치는 짧은 순간, 이들의 무기력했던 일상에 긴장과 설렘이 느껴진다. 영화를 연출한 양종현 감독 역시 세 노인이 전력 질주하는 장면에서 이야기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돈이 없는 노인들이 왜 그렇게까지 뛰어야 하는지를 고민하다가 ‘고기’라는 소재에 닿았다는 설명이다.

그렇게 무전취식을 거듭하던 어느 날, 이들은 이미 자신들의 모습이 찍힌 CCTV 영상이 온라인상에 퍼진 것을 모른 채 또 다른 식당에서 무전취식을 감행했다가 결국 들켜 경찰에 연행된다. 세 사람은 법정에서 각각 벌금 300만 원에 처해지고 우식은 자신을 무시하는 듯한 판사의 말에 격분해 그의 집에 불을 지르고 만다. 이후 우식과 화진에게 자신의 방 보증금을 빼 벌금으로 쓰라며 남기곤 사라지지만 곧 그의 사망 소식이 들린다.

세 사람의 여정에서 볼 때 ‘고기’는 배고픔을 채우는 음식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사진=영화 '사람과 고기' 스틸컷]
[사진=영화 '사람과 고기' 스틸컷]

형준에게 고기는 가족의 온기를 떠올리게 하는 기억이었으며, 우식에겐 욕망이자 무기력한 일상에서 벗어나게 하는 자극이었다. 화진에게는 자신이 여전히 누군가와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매개였다.

다소 쓸쓸한 내용과 달리 영화는 세 사람의 욕망을 유쾌하게 바라본다. 세 사람이 고기를 먹기 위해 식당을 빠져나와 전력으로 달리는 장면은 한편으로는 우스꽝스럽다. 하지만 그들의 질주는 묘하게 뭉클하다. 하루 종일 폐지를 줍고, 채소를 팔고, 아무도 찾지 않는 집으로 돌아가던 사람들이 갑자기 젊은 사람들처럼 달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 순간만큼은 세 사람에게 ‘노인’이라는 이름이 사라진다.

‘사람과 고기’가 궁극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노년의 빈곤만은 아니다. 영화는 노년의 외로움과 빈곤, 가족으로부터의 단절, 사회적 고립을 보여주면서도 그들을 동정의 대상으로만 바라보지 않는다. 오히려 묻는다. 나이가 들었다는 이유만으로 우리는 누군가의 욕망을 얼마나 쉽게 지워버리고 있는지를.

먹고 싶은 것을 먹고 싶다는 마음. 친구와 웃고 싶다는 마음. 누군가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마음. 살아 있다는 것을 느끼고 싶다는 마음말이다.

이것들은 나이에 따라 사라지는 감정이 아니다.

세 사람이 고기를 먹기 위해 벌이는 일탈은 분명 옳지 않다. 그러나 그 일탈의 순간에 비로소 세 사람의 삶은 움직이기 시작한다. 무기력하게 흘러가던 하루가 ‘살아 있는 하루’로 바뀌는 것이다.

그래서 영화가 말하는 고기는 어쩌면 ‘삶’에 가깝다. 고기 한 점을 먹는 것이 대단한 일이 아닌 세상에서,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 한 점이 누군가와 함께 살아갈 이유가 될 수도 있다. 그리고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영화의 제목 ‘사람과 고기’는 조금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사진=영화 '사람과 고기' 스틸컷]
[사진=영화 '사람과 고기' 스틸컷]

누구든 나이가 들고 몸은 노화되고 사회적 영향력은 줄어든다. 노인이라고 해서 욕망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가난한 노인이기 전에, 여전히 무언가를 먹고 싶고 누군가를 만나고 싶고 웃고 싶은 사람이다.

어쩌면 우리가 그들에게 가장 먼저 건네야 할 것은 ‘도움’이 아니라 함께 앉아 고기 한 점을 구워먹을 수 있는 자리인지 모른다. 

고기 한 점이 세 사람을 친구로 만들었던 것처럼, 사람을 다시 사람답게 만드는 것은 거창한 것니다. 누군가와 마주 앉아 밥을 먹는 것, 오늘 하루 어땠느냐고 묻는 것, 그리고 아직 살아 있는 서로의 욕망을 인정해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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