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공공기관을 109개 줄이는 기능개혁 방안을 발표한 뒤에야 통합에 드는 비용 추계에 착수한 것으로 나타났다. 비용 절감을 주요 비전으로 제시했지만 구체적인 절감 효과는 산출하지 못한 것이다. 개편 성과를 평가할 기준과 기관별 이행 일정도 추가로 구체화해야 하는 상황이다.
정부는 4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공공기관 기능개혁 관련 사후 브리핑에서 전날 대책 발표를 계기로 지정유보 기관의 인건비와 복리후생 수준을 조사하고, 통합에 필요한 비용을 산출하는 작업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정부는 앞서 발전 5사와 한국석유공사·한국가스공사를 각각 통합하고, 한국토지주택공사(LH)를 개발과 주거복지 기능으로 분리하는 등의 개편안을 발표했다. 유사·중복 기능 일원화와 자회사·소규모 기관 통합 등을 통해 전체 기관 수를 109개 줄인다는 계획이다.
◇절감 효과 산출 못 해…LH 분리해도 부채 감소 보장 안 돼
조직·전산시스템 통합 등에 필요한 초기 비용과 중장기적인 절감 효과를 묻는 질문에 정부 관계자는 "비용 절감에 정책의 주안점을 두고 있지 않아 구체적으로 산출된 수치는 없다"고 말했다.개혁의 기대효과를 뒷받침할 검토가 충분했는지도 의문이다. 전날 발표 자료에는 글로벌 경쟁력 강화, 국민만족도 향상과 함께 '비용 절감 등을 통해 재정 지속가능성 제고'가 3대 비전 중 하나로 명시됐다.
정부는 비용 절감 효과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개편의 핵심은 인공지능(AI) 대전환과 복합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기능 재편이라고 설명했다. 소규모 기관의 중복 임원 보수 등은 줄일 수 있지만 기존 직원의 인위적인 구조조정을 통해 비용을 절감하려는 취지는 아니라는 입장이다.
성과평가 체계도 구체화가 필요하다. 정부는 핵심성과지표(KPI)를 5개가량 검토했다고 밝혔지만 세부 내용과 목표치는 공개하지 않았다. 정부 관계자는 "단순히 기관 수가 줄어든다고 효율적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며 "협업과 융합의 성과를 평가할 지표를 구체화해 평가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부채 감축 방안은 별도로 관리한다는 방침이다. LH 분리와 관련해 정부 관계자는 "분리를 통해 부채를 확실하게 줄일 수 있다고 담보할 수는 없다"며 이번 개편에서 부채를 얼마 줄이겠다는 목표를 세운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LH의 구체적인 분리 방식과 인력 배치, 이행 일정 등은 국토교통부가 별도 개혁 방안을 통해 발표할 예정이다.
◇신규채용 유지 목표…임금격차는 차등 인상 검토
정부는 임원을 제외한 기존 직원의 고용승계를 보장하고, 통합 때문에 신규채용이 줄어들지 않도록 지원한다는 방침도 제시했다. 중복 인력은 재배치하되 AI·신기술 분야 등에서는 인력 확충을 뒷받침하겠다는 것이다.정부 관계자는 "기존 중복 인력을 재배치하더라도 AI와 신기술 관련 인력을 적극적으로 확충할 수 있도록 해 신규채용이 줄어들지 않도록 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기관 간 임금격차는 총인건비 인상률을 차등 적용해 좁히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임금이 낮은 기관에 더 높은 인상률을 적용하는 방식이다. 다만 기관별 평균 임금뿐 아니라 직무·직렬별 차이도 고려해야 하는 만큼 주무부처와 협의해 세부 기준을 마련할 계획이다.
정부가 설명한 정규직 범위에는 일반직과 무기계약직이 포함된다. 기간제 계약직에 대해서는 인원 변동과 사업비 편성 방식 등을 고려해 별도로 살펴봐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통합 후에도 기존 지역에 본부 체제를 상당 부분 유지할 것으로 내다봤다. 석유공사와 가스공사를 예로 들면 울산과 대구 중 한 곳은 본사, 다른 곳은 본부 역할을 맡는 방식이다. 어느 지역에 본사를 둘지는 아직 미정이다.
지역인재 채용은 본부별 채용을 활용해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정부 관계자는 "본부별 채용을 통해 지역인재 채용에 문제가 없도록 조치하겠다"고 말했다. 본사 통합에 따른 지역 세수 변화는 구체적인 조직 형태가 마련된 뒤 추가로 검토할 예정이다.
◇감축해도 지정기관 수 늘 수 있어…입법·노조 협의 남아
정부는 '109개 감축'이 현재 지정된 공공기관만을 기준으로 한 수치가 아니라는 점도 설명했다. 지정유보 기관까지 포함한 524개를 기준으로 개편 이후 기관 수를 415개로 줄인다는 것이다.이 과정에서 공식적으로 지정된 공공기관 수는 오히려 늘어날 수 있다. 유사한 업무를 수행하는 소규모 지정유보 기관들을 통합한 뒤 공공기관으로 지정해 관리체계에 편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를 통해 공시·관리 사각지대를 해소하겠다는 입장이다.
개편 일정은 입법 과정에 달려 있다. 정부는 개편 대상의 80% 이상이 법 개정을 필요로 한다고 설명했다. 기관별 내부 목표 일정은 있지만 국회 심의와 법률 통과를 전제로 하는 만큼 공식적인 완료 시점을 제시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발전 5사 통합은 관련 법 개정 없이 추진할 수 있는 사례로 언급했다.
노동조합과의 협의도 과제로 남았다. 정부는 상급 노동단체와 다섯 차례 노정협의를 진행했으며, 노조가 가장 중요하게 요구한 사안은 정책 결정 과정에 대한 실질적인 참여였다고 설명했다.
다만 발표 당일 오전 노조를 상대로 상세 내용을 설명하려던 일정은 진행되지 않았다. 정부 설명에 따르면 노조는 공식 발표 직전의 촉박한 설명만으로는 실질적인 참여가 어렵다는 취지의 문제를 제기했다.
정부는 다음 주 상급 노동단체와 추가 협의를 진행하고, 주무부처와 개별 기관 노조 간 협의도 병행할 계획이다. 정부 관계자는 "정책 발표로 협의가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정기적으로 노동조합과 협의를 지속하겠다"며 "개별 기관의 구체적인 이행 계획을 마련하는 과정에서도 노조와 협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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