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유환 칼럼] 연내 북미정상회담 개최 가능성과 한계

고유환 동국대 명예교수 전 통일연구원장
[고유환 동국대 명예교수·전 통일연구원장]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북한을 ‘핵보유 세력(nuclear power)’이라고 부르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만남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해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계기에 북미정상회담을 추진했지만 불발됐다.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정상회담 성사를 외교적 성과로 내세우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의 환심을 사기 위해 진행 중이던 한미군사연습(UFS·을지 자유의 방패)을 한미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축소하고, 북한이 “57개의 매우 강력한 핵무기를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트럼프는 북한이 북미대화의 전제조건으로 내건 핵보유국 지위 인정과 적대시정책 철회와 관련한 전향적 조치를 취하고 북한의 호응을 기다리고 있다.

북한은 지난 2월에 열린 9차 당대회에서 “만일 미국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헌법에 명기된 우리 국가의 현 지위를 존중하며 대조선적대시정책을 철회한다면 우리도 미국과 좋게 지내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밝히며, “조미관계의 전망성은 미국 측의 태도에 전적으로 달려있다”고 주장했다. 북한은 “평화적 공존이든 영원한 대결이든 모든 것에 준비되어 있다”며 그 선택을 미국에게 넘겼다. 이란전쟁의 수렁에 빠진 트럼프가 북한이 내건 대화의 전제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 북한에 대해서는 호의적인 발언을 이어가고 있는 반면, 한국에 대해서는 이란 관련 군사 지원 요청을 거절했다며 “기억해 두라”고 공개적으로 불만을 표시했다.

트럼프의 한미군사연습 축소 지시와 북미 양국지도자들 사이의 소통 주장에 대해 북한은 김여정 노동당 부장의 입장발표(8월 19일)를 통해서 “며칠 전 미국대통령이 돌연 발표한 미한합동군사연습 축소에 대해 말한다면 우리는 그에 대하여 평할 가치도 없다고 보며 전혀 흥미를 느끼지 않는다”고 말하고, “훈련의 규모나 기일이 줄어든다고 해서 도발적, 공격적 성격의 군사연습의 본질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다”고 평가절하 했다. 김여정은 북미 양국지도자들 사이의 소통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하는 일이며 아마도 우리 최고지도부의 대외정책과 관련하여 내가 알지 못하고 있는 유일한 사안일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의 진위는 알 수 없지만 김여정 부장이 이를 부정하지 않고 “우리 국가수반이 트럼프에 대하여 개인적으로 좋은 추억과 감정을 가지고 있다”며 “두 지도자들의 관계는 의연 훌륭하다”고 말했다. 김여정의 입을 빌어 북한이 밝힌 입장은 북미 사이의 적대관계는 여전하지만 정상들 사이의 신뢰가 돈독하여 조건이 맞으면 언제라도 만날 수 있다는 속내를 내보인 것이다.

핵무기 개발을 저지하기 위해 이란전쟁을 수행중인 트럼프가 핵 보유를 고집하는 김정은과의 친분을 과시하며 정상회담을 추진하는 것은 이란전쟁 수행의 ‘오판’을 만회하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과 북한에 대해 서로 다른 접근을 하는 것은 핵개발의 수준, 지정학적 파급효과, 리더십의 차이, 국내 정치적 변수 등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행정부는 핵개발 단계에서 북한 핵개발을 저지하지 못한 데서 교훈을 찾아 이란 고농축 우라늄(HEU) 핵개발 프로그램 제거를 위해 많은 전비를 쏟아 부으며 전쟁을 수행하고 있다. 이란 핵무장은 중동질서 재편과 핵확산방지체제(NPT)의 붕괴를 가져올 것으로 보고 이스라엘과 함께 전쟁을 수행하지만 유럽연합(EU) 등 미국의 우방들은 전쟁에 참여하길 주저하고 있다. 최근 EU가 미국의 이란 경제고립작전에 동참하기로 했고, 한국도 비전투병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미국이 이란전쟁에서 알리 하메네이 최고지도자와 지도부를 제거했지만 후계자로 지명된 그의 아들 모즈타바 하메네이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으며, 종교적 신념을 앞세운 무장정파들이 끝까지 항전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어 종전시기를 예측할 수 없다. 트럼프가 재집권하면 하루만에 끝낸다던 러-우전쟁이 5년째 지속되고 있고, ‘짧은 기간’에 끝낼 것이라고 장담했던 이란전쟁은 6개월째로 접어들었다. 한국전쟁을 73년 동안 끝내지 못한 데서 알 수 있듯이 지정학적 이해관계가 얽힌 전쟁은 쉽게 끝낼 수 없다. 이란전쟁에서 많은 국력을 소진한 트럼프는 지상군 투입을 피하고 ‘경제 왕따 작전(Operation Economic Outcast)’을 지속하면서 김정은과의 정상회담을 성사시켜 국면을 전환하려고 한다.

트럼프가 지속적으로 김정은과의 개인적인 친분을 과시하며 만남을 희망하는 것은 ‘수령 중심의 유일체제’ 속성을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트럼프는 김정일과 담판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라고 판단하고 끊임없이 김정은과의 좋은 관계(브로맨스)를 강조한다. 김정은도 민주적 절차보다 지도자의 힘을 앞세우는 트럼프의 스트롱맨 리더십을 활용하여 오랜 적대관계를 해소할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트럼프 2기 출범 이후 지속적으로 핵·미사일 개발을 고도화하고 있지만, 미국을 자극할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 등 전략도발을 자제하면서 정세를 관리하고 있다. 지도자들 사이에 좋은 친분관계를 유지하는 트럼프 재임 중에 북미 적대관계를 해소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일 것이다.

북미정상회담이 성사되려면 여러 과제를 풀어야 한다. 첫째, 이란전쟁이 종식돼야 한다. 종전협상에 실패하고 간헐적인 군사충돌이 이어질 경우 북미정상회담 추진의 동력을 찾기 어려울 것이다. 둘째, 북한이 내건 대화의 전제조건인 핵보유국 인정과 적대시정책 철회와 관련한 미국의 입장이 정리돼야 한다. 하노이 노딜의 충격을 감안할 때 북한이 미국 국무부가 밝힌 ‘전제조건 없는 대화’에는 응하지 않을 것이다. 2018년 싱가포르 6·12 북미공동성명에서 합의했던 평화체제 구축과 완전한 비핵화를 교환하는 협상이 실패한 이후 북한이 핵무력 고도화를 가속화하고 핵보유국 지위 ‘절대불퇴’를 주장하고 있어 비핵화를 제외한 북미정상회담 의제설정이 쉽지 않을 것이다. 셋째, 러시아 파병으로 숨통이 트인 북한이 중국, 러시아와 관계를 돈독히 하고 있어 시간에 쫓긴 트럼프에게 높은 몸값을 요구할 것이다. 두 차례 북미정상회담과 한 차례 회동을 통해서 두 지도자들이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지만 의제설정에 그치고 거래를 성사시키지 못했다. 오랜 숙원관계를 청산하려면 치밀한 실무접촉을 통해서 합의문 초안을 만들어야 북미정상회담이 이뤄질 수 있을 것이다.

기대와는 달리 북미정상회담 개최는 높고 험한 산을 넘어야 한다. 지금의 마음이 급한 트럼프 김정은과 사진 찍는 것으로 만족할 수 있지만 김정은 그렇지 않다. 김정은 성과가 기대돼야 정상회담에 응할 것이다. 트럼프 1기 때 ‘화염과 분노’에 겁먹고 대화에 나왔던 김정은이 핵보유국의 지위를 내세우고 중국과 러시아를 든든한 뒷배로 생각하는 한 트럼프의 의도대로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필자 주요 이력
 
▷전 통일연구원장 ▷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전 청와대 안보실 정책자문위원장 ▷전 국회 한반도 평화외교정책자문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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