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의 선행자" 재평가…둥젠화 홍콩 초대 행정장관 별세

  • 1997년 홍콩 반환 후 초대 행정장관

  • 사스·국가안보법 추진 '정치적 위기'

  • IT·전략산업 육성.디즈니랜드 유치

  • 퇴임 후 '정책 선견지명' 재평가

둥젠화 홍콩 초대 행정장관 별세 사진로이터연합뉴스
둥젠화 홍콩 초대 행정장관 별세 [사진=로이터연합뉴스]

둥젠화(董建華) 전 홍콩 행정장관이 별세했다. 향년 89세.

1997년 영국에서 중국으로 홍콩의 주권이 반환된 이후 초대 행정장관을 지낸 둥 전 장관은 8일 별세했다고 둥젠화 전 장관 사무실이 9일 새벽 성명을 통해 밝혔다.

사무실은 성명에서 "둥젠화 선생은 한결같은 신념과 고결한 품성을 지닌 인물로 국가를 위해 온 마음을 다해 헌신했다"며 "그의 숭고한 인품과 정신은 영원히 우리의 마음속에 남을 것"이라고 밝혔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명보 등에 따르면 둥 전 장관은 전날 밤 홍콩의 한 요양병원에서 별세했으며, 당시 가족들이 곁을 지킨 것으로 전해졌다.

1937년 7월 7일 상하이에서 홍콩 해운재벌인 둥하오윈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1940년대 가족과 함께 홍콩으로 이주한 그는 1982년 가업을 물려받아 홍콩 해운회사 오리엔트오버시스컨테이너라인(OOCL)을 경영했다.

1996년 기업 경영에서 물러나 1997년 홍콩 반환을 앞두고 실시된 초대 행정장관 선거에 출마했다. 당시 400명으로 구성된 선거위원회에서 320표를 얻어 행정장관에 당선된 그는 중국 중앙정부가 홍콩 반환 이후 초대 지도자로 낙점한 인물로 평가받았다.

취임 초기에는 홍콩 주민들의 지지와 중국 정부의 후원을 받으며 순조롭게 출발했지만 아시아 금융위기로 경제가 타격을 받으면서 정치적 입지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2002년 연임에 성공했지만 2003년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사태와 국가안보법 제정 추진이 겹치면서 위기를 맞았다. 기본법 제23조에 따른 국가안보법안에 반대해 약 50만명이 거리로 나서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고, 정부는 법안을 결국 보류했다.

둥 전 장관은 2005년 건강상의 이유로 사임했으며 후임으로 쩡인취안(도널드 창)이 취임했다. 이후 중국 정부에 의해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부주석으로 임명됐다.

둥 전 장관은 2021년 7월 영화 시사회에 참석한 이후 공개석상에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같은 해 10월 수술을 받은 사실이 알려졌으며 이후 자택에서 요양해 왔다.

SCMP는 그를 "시대보다 앞선 구상을 가진 지도자"라고 평가했다. 그가 추진한 정책 가운데 정보기술 산업 육성을 위한 사이버포트 건설은 초기 토지 배정 방식을 둘러싸고 논란이 됐지만 훗날 홍콩의 스타트업 육성 인큐베이터 역할을 했다고 평가받는다. 또 홍콩에 디즈니랜드 리조트를 유치하는 데에도 역할을 했다.

홍콩01은 그가 "8년 집권 동안 전환기의 고통을 견뎌냈고 국가안보법안 입법 좌절이 그의 정치적 입지를 흔들었다"면서도 최근 홍콩이 혁신기술 발전과 금융·해운 중심지 위상 강화를 추진하는 상황에서 되돌아보면 그가 개혁의 선행자였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고 전했다.

량전잉 홍콩 전 행정장관은 추모사에서 "일국양제(一國兩制)·홍콩인에 의한 홍콩 통치(港人治港)·고도의 자치"를 실현했고, 홍콩의 장기 발전과 구조적인 민생 문제 해결을 내다보는 식견을 갖췄다고 평가하며 "마음이 어질고 이치로 사람을 설득한 사람이며 우리 세대의 모범"이라고 추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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