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당신이 전세사기를 당한 임차인이고, 경찰서에 고소장을 제출한 뒤 수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고 가정해 보자. 담당자가 바뀔 때마다 피해 경위를 다시 설명하고, 사건 검토를 기다려야 한다. 송치된 뒤에도 검찰의 처분을 기다려야 하고, 보완수사가 필요하다는 연락을 받으면 자료를 챙겨 제출한다. 수사는 기약 없이 이어지지만, 대출이자는 매달 빠져나가고 새로 찾은 거처의 월세도 내야 한다. 피해자에게 수사 지연은 생활을 버티는 현실적 비용과 고통이 켜켜이 쌓이는 일이다.
오는 10월 2일 78년간 이어져 온 검찰청 체제가 막을 내리고 공소청과 중대범죄수사청이 출범한다. 수사와 기소의 분리는 한국 형사사법체계의 역사적 전환이다. 권한의 집중을 완화하고, 각 기관의 전문성과 책임성을 높이려는 당초의 취지가 국민의 권리 보호로 이어질 수 있을지를 두고 여러 의문점이 제기된다.
예를 들어 국민권익위원회가 공개한 한 고소 사건에서는 검사의 두 번째 보완수사 요구 후 담당자가 변경될 때까지 약 1년 동안 수사기록이 약 다섯 차례만 확인되었다. 그중 약 6개월은 어떠한 수사기록도 확인되지 않았다. 보완수사를 요구하는 제도가 존재하더라도 필요한 수사가 제때 이루어지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기다림의 부담은 피의자에게도 돌아간다. 횡령 혐의로 고소된 사업자가 해명 자료를 제출하고도 수사 지연으로 오랫동안 판단을 받지 못하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수사 사실을 안 거래처가 계약을 미루고, 사업자는 방어에 시간과 비용을 쏟아야 한다. 뒤늦게 혐의를 벗더라도 잃어버린 거래와 신뢰까지 되돌리기는 어렵다. 신속하고 충실한 수사는 피해자와 피의자 모두에게 필요하다.
이러한 수사 지연을 경찰수사관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는 것은 간단하고 편리할 것이다. 그러나 제도가 감당해야 할 부담을 일선 수사관에게 떠넘긴 뒤 그 결과를 개인의 무능이나 태만으로 설명하는 것은 무책임하다.
기관 개편에는 인력과 사건의 재배치, 기록 인계, 새로운 절차에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수사기관과 공소기관 사이에 추가 수사의 범위를 둘러싼 이견도 생길 수 있다. 그 시간이 국민의 사건에 얼마나 더해지는지 살펴야 한다. 증거 확보가 늦어져 영상이 지워지고, 참고인의 기억이 흐려진다면 나중에 처리 속도를 높여도 돌이키기 어렵다.
우선 충분한 수사 인력을 확보해야 한다. 경찰도 인력 재배치와 충원을 추진하고 있다. 다만 인원을 배치한다고 곧바로 수사 역량이 확보되지는 않는다. 자금 흐름을 추적하고 디지털 증거를 분석하며 상반된 진술을 검증하는 능력에는 교육과 경험이 필요하다. 신규 인력의 양성과 숙련된 수사관의 유지, 전문 인력 확충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경찰이 늘어나는 업무를 감당할 인력과 전문성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개편이라면 시기상조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이미 사건이 쌓인 수사관에게 더 많은 업무를 맡기면서 처리기한을 줄이겠다고 외쳐 봐야 수사가 기계적으로 빨라질 수는 없다. 기한을 맞추기 위해 수사의 질을 희생해서도 안 된다.
수사 역량의 확충과 함께 수사권에 대한 실효적인 견제도 필요하다. 수사는 개인의 신체와 재산, 명예와 생계에 깊숙이 영향을 미치는 막대한 국가권력이다. 수사 대상과 확보할 증거, 사건의 종결 시점에 관한 판단은 한 사람의 삶을 바꿀 수 있다. 어느 기관이 권한을 행사하든 오류와 남용을 점검하고, 바로잡아야 한다. 수사와 기소의 분리가 상호 견제와 보완으로 작동해야 하는 이유다.
개정 형사소송법은 보완수사요구권을 유지하면서 원칙적인 1개월의 이행기한과 이행 관리 절차를 두고, 일정한 경우 다른 수사기관을 지정해 보완수사를 요구할 수 있도록 했다. 이러한 장치가 제 기능을 하려면 요구의 이행 여부와 수사의 충실성을 확인하고, 지연이나 부실을 시정할 수 있어야 한다.
공소기관은 보완할 쟁점과 이유를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수사기관은 검토 과정과 결과를 충실히 설명해야 한다. 이견은 신속하게 조정하되 각 기관의 판단을 검증할 수 있도록 기록을 남겨야 한다. 견제의 실효성은 잘못된 판단을 얼마나 정확하고 신속하게 바로잡았는지로 평가해야 한다.
새 제도가 안착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면 그동안 국민의 권리를 어떻게 보호할지도 개편의 일부여야 한다. 충분한 수사 인력과 실제 작동하는 견제·보완 장치를 갖추는 일은 국가의 책임이다. 기다려 달라는 말만으로 그 사이 국민이 잃는 시간과 기회를 설명할 수는 없다. 개편의 성과는 국민이 더 정확하고 신속하게 권리를 구제받는지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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