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성어로 세상 읽기] (78) 입장 바꿔 생각하라 - 역지사지(易地思之)

유재혁 칼럼니스트
[유재혁 칼럼니스트]
제목부터 범상치 않은 영화 '암살자(들)'이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암살자(들)'은 1974년 광복절 경축식장에서 발생한 박정희 대통령 저격사건을 모티브로 하여 각색한 팩션이다. 팩션(faction)이 사실(fact)과 허구(fiction)의 합성어인 데서 알 수 있듯, 팩션 영화는 어느 정도의 영화적 상상력을 필요로 한다. 사실과 허구를 여하히 잘 섞고 개연성 있게 만들어 영화적 재미를 극대화하느냐에 영화의 흥행 여부가 달려있다 보니 감독은 사실과 허구의 경계를 위태롭게 넘나들 수밖에 없다. '암살자(들)'이 비판을 받는 이유는 간명하다. 영화적 재미를 위해서 용인되는 상상력의 한계를 넘어 확인되지 않은 가설과 자의적 해석을 남발하여 조작에 가까운 왜곡을 했기 때문이다. 사회적 파장이 워낙 크다보니 이럴 때 전가의 보도처럼 내미는 '창작의 자유'라는 말로 퉁치고 넘어가기 어렵게 됐다.

영화는 두 시간 조금 넘는 러닝타임 내내 사건의 배후에 중앙정보부가 있다는 것을 직간접적으로 암시한다. 당시 나는 새도 떨어뜨릴 만큼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중정은 대통령이 수족처럼 부리던 기관 아니었던가. 사실과 허구를 뒤섞고 사건과 관련된 영상·사진·문구들을 곳곳에 삽입하는 다큐멘터리식 연출 기법으로 인해 어느 게 사실이고 어느 게 허구인지 분간해 낼 재간이 없는 관객들은 자연스레 "아, 정치적 필요 때문에 대통령이 중정을 시켜 꾸민 음모였구나. 그렇다고 마누라를 죽이다니. 에이~ 천하에 몹쓸 ×같으니."라고 욕하면서 영화관을 나서게 된다. 그럼에도 "중정 윗선과 박 대통령을 분리해서 생각했다"며 사건의 배후에 박정희 대통령이 있다고 설정하지도 않았고, 관객들이 그렇게 생각할 거라곤 예상하지 못했다는 허진호 감독의 변명은 구차하고 비겁하다. 육영수 여사 시해를 박정희 대통령의 사주로 단정한 북한 영화 '민족과 운명'과 판박이라는 탈북민들의 증언은 허 감독의 입장을 더욱 궁색하게 한다. 훗날 김대중 정부는 이 사건을 사례 연구한 후 '총체적 경호 실패'로 규정했다. 음모론이 근거 없음을 확인했다는 의미다.

2003년 출간된 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가 베스트셀러가 된 이래 팩션은 하나의 문화예술 장르로 자리를 잡았고 이내 영화와 드라마, 게임으로까지 확대되었다. 역사적 사실에 상상력을 덧붙인 팩션 영화는 새로운 시각으로 역사를 재해석함으로써 역사성과 오락성을  함께 즐길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2005년 개봉하여 천만 관객을 동원한 '왕의 남자'가 좋은 예다. 영화의 핵심 캐릭터인 광대 공길에 대해선 조선왕조실록에 단 한 줄 언급되어 있을 뿐이다. 이 짧은 기록에 깊은 상상력이 더해져 걸작 '왕의 남자'가 탄생했다. 

그러나 상상력의 범위를 넘어 역사를 왜곡하는 위험성이 상존한다는 게 팩션 장르의 문제다. 정치적인 의도가 깔려 있다는 의구심까지 들면 최악이다. 대중적 파급력이 큰 영화는 특히 그렇다. 정치적 호불호가 첨예하게 갈리는 팩션 영화가 개봉될 때마다 커다란 논란과 비판에 휩싸이는 이유다. 한국 영화계의 역사 왜곡 이력은 길다. 문화적 헤게모니를 강조한 그람시의 '진지전(陣地戰)' 이론을 실천이라도 하듯 문화예술계의 주도권을 장악한 좌파 진영에게 팩션 영화는 유용한 프로파간다의 도구로 기능한다. 몇 가지 사례를 들어보자. 

인권변호사 노무현을 다룬 영화 '변호인'은 노무현을 미화하다 못해 사실을 왜곡했다는 집중 공격을 받았다. 2018년 개봉한 '국가부도의 날'은 1997년 그 긴박했던 시절, 구제금융을 받지 않아도 되는데 재벌과 결탁한 정부가 대기업에 유리하게 한국경제를 재편하기 위해 일부러 IMF에 손을 내밀었다는 음모론을 제기한다. 심지어는 세계가 찬탄한 '금 모으기 운동'도 대기업을 위한 것이었다고 비튼다. 애국심 하나로 참여한 국민들에 대한 모독이다. IMF 배후에 미국의 탐욕이 있다는 설정도 빼놓지 않으며 의도적으로 반기업·반미 정서를 부추긴다. 2022년 초에 개봉한 영화 '킹메이커'는 김대중 전 대통령과 그의 선거 참모 엄창록을 모티브로 한 작품이다. 엄창록은 60,70년대 '선거판의 여우', '마타토어의 귀재'로 불린 인물이다. 시대적 배경이 그러한지라 필연적으로 박정희 정권이 등장한다. 하지만 김대중을 도덕과 정의의 신봉자로 미화한 반면 박정희와 그 정권의 행태를 과도하게 악마화하는 등 선악 구도가 너무 선명해 영화의 리얼리티를 크게 떨어뜨렸다. 

김훈은 정치와 거리를 두려는 작가다. 그가 쓴 소설을 2017년 스크린에 옮긴 영화 '남한산성'도 정치편향과는 거리가 멀다. 그럼에도 정치권에서는 어김없이 공방이 벌어졌다. 당시 여권이 병자호란의 원인으로 '외교력 부족'을 앞세워 북핵 위기에 대한 외교적 해결을 강조하자 야권에선 '군주의 무능'에 초점을 맞춰 문재인 정권의 안보 무능을 비판했다. 현대영화사에 큰 족적을 남긴 프랑스 감독 장뤼크 고다르에게 영화는 곧 정치다. 그는 "(관객을 정치적으로 변화시키고 싶다면) 정치적인 영화를 만들지 말고 영화를 정치적으로 만들라"고 했다. '남부군', '남영동 1985' 등을 연출한 정지영 감독은 "모든 영화는 정치적"이라고 단언했다. 영화와 정치 사이의 거리는 멀지 않다. 

팩션 영화에 사실과 허구의 경계는 모호하다. 관객들은 모든 것을 팩트로 인식하고 열광하기 일쑤다. 불순물이 섞인 불량식품이 입맛을 더 당기듯 사실과 허구를 적당히 섞어서 가공한 팩션의 힘이 오히려 사실보다 강하다. 대중들의 뇌리에 사실과 다른 거짓을 주입시켜 초래되는 인식의 혼란은 누가 책임질 것인가. 영화의 힘을 지나치게 과대평가하는 거 아니냐고 할지 모르겠다. 과연 그럴까? 원전의 위험을 과장한 비과학적인 영화 '판도라'가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탄생시켰다는 사실을 상기해보라. 영화의 정치적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 생생하게 보여주지 않는가. 팩션 영화는 으레 영화 시작 전 한 줄 자막을 띄운다. "본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했으나 사실과 다른 부분도 있습니다"라고. 의례적인 자막 한 줄이 왜곡의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하물며 '암살자(들)'의 자막은 한발 더 나아갔다. "본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창작되었다." 대놓고 조작하겠다는 암시로 읽힌다면 과한 해석일까? 

문화강국론을 주창한 백범 김구의 취지가 무색하게 못난 후손들이 벌이는 문화전쟁이 일상적이다. '암살자(들)'을 두고도 여야는 첨예하게 입장이 갈린다. 국민의힘은 '패륜 행위'라고 맹비난하고 민주당 쪽에선 표현의 자유를 내세우며 뭐가 문제냐고 두둔한다. 표현의 자유, 물론 중요하다. 그렇다면 민주당 의원들은 다음과 같은 질문에 "그렇다"고 답할 수 있어야 한다. "DJ와 노무현 전 대통령을 소재로 영화적 상상력을 발휘해도 괜찮나?" "5·18 북한군 개입설을 모티브로 해서 영화를 만드는 것도 창작의 자유 아닌가?" 표현의 자유는 '우리 편만의 자유'가 아니다. 2030이 주도하는 온라인 공간에는 이미 '영부인(들)', '미는자(들), ‘아수라: 공소취소' 등 '암살자(들)'을 패러디하는 미러링(되갚기) 콘텐츠가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다. '불공정'을 극혐하는 그들의 주장은 단순명쾌하다. 스타벅스 탱크데이, 배재고 야구부 사태 때와 똑같은 잣대를 적용하라는 거다. 왜 5·18 관련해서는 입도 뻥끗 못하게 하면서 새삼 표현의 자유 운운하느냐는 거다.

공자가 우, 직, 안회를 칭찬했다. 우(禹)는 황하의 치수를 성공적으로 해낸 중국 고대의 성군이고, 직(稷)은 앞선 순 임금때 논밭의 경작을 책임졌던 대신으로 농사의 신으로 불린다. 안회(顏回)는 공자가 가장 아낀 제자로 청빈하게 살다 요절했다. 맹자가 공자의 평가를 인용한 후 이렇게 말했다. "우, 직, 안회는 같은 길을 간 사람들이다... 서로 처지를 바꾼다 해도 모두 그러했을 것이다.(禹, 稷, 顏回同道...易地則皆然)" 모름지기 처지가 바뀌어도, 입장이 달라져도 한결같아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역지즉개연(易地則皆然)'이 오늘날 '처지를 바꿔서 생각해 보라'는 성어 '역지사지(易地思之)'가 되었다. 중국에서는 ‘역지이처(易地而處)’가 널리 쓰인다. 90년대 가요계를 풍미한 김건모가 1993년 발표한 메가히트곡 '핑계'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내게 그런 핑곌 대지 마. 입장 바꿔 생각을 해 봐. 니가 지금 나라면 넌 웃을 수 있니."

누구나 알지만 아무나 실천하지 못하는 게 있다. 역지사지도 그렇다. 그렇다보니 너도나도 아전인수와 내로남불의 늪에서 허우적댄다. "사람이 그러면 안되잖아요. 진보 보수를 떠나서 그냥 인간이라면 사람이라면 이런 걸 갖고 장난치고 폄훼하고 그러면 안되는 거잖아요." 요즘 '암살자(들)' 성토의 최전선에서 분투하는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의 말일까? 아니다. 민주당 한병도 원내대표가 지난 6월 배재고 야구부의 스타벅스 응원 구호 논란이 벌어졌을 때 한 말이다. 입장 바꿔 생각하라. 그러면 답이 보인다.

영화를 정치적 프로파간다의 도구로 삼는 자들은 말한다. 영화는 영화일 뿐이라고. 책임을 회피하는 상투적인 변명이다. 영화의 정치성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그들 자신부터 내심 그 말을 1%도 믿지 않을 것이다. "영화의 시청각적 체험은 두 시간 안팎의 시간과 함께 사라지지만, 반드시 우리의 내면에 어떤 흔적을 남겨 놓는다." 영화에 대한 책 서평에서 건진 말이다. 영화 '암살자(들)'이 정치적 의도와 결부된 팩션 영화의 폐해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유재혁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사회학과 졸업 △제일기획 근무(1985~2008) △'한국산문' 등단 (2019)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댓글0
0 / 300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