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사설│기본·원칙·상식] IMF의 재정 권고, 미래대응기금 설계에 새겨야

박홍근 기획예산처 장관이 8일 국회에서 열린 재정경제기획위원회 기획예산처 국정감사에서 기관 보고를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박홍근 기획예산처 장관이 8일 국회에서 열린 재정경제기획위원회 기획예산처 국정감사에서 기관 보고를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국제통화기금(IMF)이 기술산업 호황 등의 수혜국에 추가 세입을 신중하게 쓰라고 주문했다. 10월 세계경제전망에서 호황기에 지출까지 늘리는 행태를 경계하며, 예상 밖의 수입을 비축하거나 재정 여력 보강, 수익성 높은 투자에 활용하라고 권고했다. 한국을 따로 지목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반도체 수요가 전쟁의 충격을 압도한다는 평가와 함께 한국의 올해 성장률을 3.3%로 전망한 만큼 우리도 이 권고를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국내에서는 미래대응기금이 정쟁의 대상이 됐다. 정부는 내년 162조3000억원 규모의 기금을 신설해 청년·성장동력·지방·교육 및 인재 분야에 45조4000억원을 투입할 계획이다. 12조5000억원은 국채 신규 발행을 줄이는 데 활용하고, 104조4000억원은 여유자금으로 남긴다는 구상이다. 전액을 당장 쓰겠다는 계획은 아니지만 거액을 별도 기금으로 관리해야 하는 이유는 충분히 입증돼야 한다.

문제는 반도체 호황으로 늘어난 세수가 얼마나 지속될지다. 일시적인 수입을 바탕으로 해마다 지출해야 하는 사업을 벌이면 호황이 끝난 뒤 일반회계나 국채로 빈자리를 메우게 된다. 정부는 장기 추세를 웃도는 추가 세입의 산정 근거와 업황 악화 때의 수입·지출 전망부터 공개해야 한다. 미래 투자라는 이름보다 사업 종료 시점과 후속 재원 마련 계획이 중요하다.

기금의 대안도 따져야 한다. 추가 세입의 일정 몫을 채무 감축에 우선 배분하고, 연구개발·인재 양성·기반시설 투자는 일반예산과 중기 재정계획에 반영하는 방식이다. 해마다 국회 심사를 받으면서도 장기 투자 계획을 세울 수 있다. 현행 국가재정법이 세계잉여금 일부를 채무 상환에 쓰도록 한 취지도 살려야 한다. 기존 예산과 기금으로 같은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면 별도 기금의 행정비용과 중복 사업을 늘릴 이유가 없다.

기금을 도입한다면 재정안정용 적립금과 사업 투자금의 경계를 분명히 해야 한다. 정부안의 금융성·사업성 계정을 나누는 데 그치지 말고 적립 비율과 인출 요건, 연간 지출 상한을 법으로 정할 필요가 있다. 연간 운용계획 심의에 더해 연중 변경에 대한 통제도 촘촘해야 한다. 세수 감소에 대비한 돈을 평상시 사업 확대에 쉽게 옮겨 써서는 안 된다. 대규모 사업 증액과 계정 간 이전은 국회 사전 승인을 받도록 통제를 강화해야 한다.

자산 운용도 목적에 맞춰야 한다. 정부는 여유자금을 운용해 국채이자율 이상의 수익을 목표로 한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불황기에 꺼내 쓸 돈이라면 수익률보다 안전성과 현금화 가능성이 우선이다. 세수가 줄 때 투자자산 가격까지 떨어지는 상황을 견딜 수 있어야 한다. 추가 채무 감축으로 아낄 이자와 기금 운용의 위험·비용을 같은 기준으로 비교해 공개해야 한다.

사업 선정은 독립적인 전문가 검증과 이해충돌 방지 절차를 거치고, 선정 근거와 집행 내역, 성과를 정기적으로 공개해야 한다. 단기 수익이 낮아도 필요한 기초연구와 인재 투자는 공공성과 장기 효과로 평가하되 성과가 부진하거나 기존 사업과 겹치면 조정해야 한다. 일정 기간마다 기금 존치와 사업 지속 여부를 재심사하는 장치도 필요하다.

반도체 호황은 미래를 준비할 기회다. 그 기회를 살리는 길은 불황에도 버틸 재정과 다음 성장동력을 함께 확보하는 데 있다. 여야는 기금의 이름을 둘러싼 공방을 접고, 얼마를 남기고 어디에 쓰며 누가 책임질지 합의해야 한다. 호황의 과실을 미래 세대에 남기려면 투명한 배분과 엄격한 통제가 뒷받침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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