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재원의 Now&Future] 노벨상이 예고한 'AI 문명의 이중 대전환'…과학과 자본주의가 동시에 바뀐다

곽재원 논설위원장
[곽재원 논설위원장]
 

 
2026년 노벨상 발표가 끝났다. 해마다 이맘때면 세계의 시선이 스웨덴 스톡홀름으로 쏠린다. 누가 수상의 영예를 안았는지, 어떤 연구가 인류의 지식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는지가 관심의 대상이다. 그러나 올해 노벨상을 지켜보면서 필자의 머릿속에는 조금 다른 질문이 떠올랐다. 수상자들의 업적을 하나하나 살펴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들을 한데 묶어보면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의 거대한 변화가 보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특히 생리의학상과 물리학상, 화학상 등 세 과학상과 경제학상을 함께 놓고 보면 흥미로운 그림이 나타난다. 한쪽에서는 인공지능(AI)이 과학을 바꾸고 있고, 다른 한쪽에서는 AI가 자본주의의 작동방식을 바꾸고 있다. 과학과 경제라는 서로 다른 두 세계가 AI라는 하나의 기술을 중심으로 연결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새로운 기술이 등장했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인류가 지식을 만들어내는 방식과 부를 창출하는 방식이 동시에 달라지는 사건이다. 필자는 이를 'AI 문명의 이중 대전환(Double Transformation)'이라고 부르고 싶다.
 
돌이켜보면 2024년 노벨상은 AI 시대의 도래를 알리는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물리학상은 인공신경망과 기계학습의 기초를 세운 존 홉필드와 제프리 힌턴에게 돌아갔다. 화학상에서는 단백질 구조 예측의 난제를 AI로 해결한 데미스 허사비스와 존 점퍼, 새로운 단백질 설계에 기여한 데이비드 베이커가 수상했다. AI가 과학의 도구를 넘어 과학적 발견의 중요한 주역으로 등장했음을 보여준 것이다.

당시 세계 과학계에서는 'AI for Science'라는 말이 널리 회자됐다. 말 그대로 과학을 위한 AI다. 과거에는 과학자가 가설을 세우고 실험을 반복하며 오랜 시간에 걸쳐 답을 찾아야 했다. 이제 AI는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하고, 복잡한 분자구조를 예측하며, 인간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연구의 가능성까지 제시한다. 과학자의 능력이 AI에 의해 확장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불과 2년 뒤인 올해 노벨 과학상은 또 다른 메시지를 던졌다. 생리의학상은 빛으로 신경세포의 활동을 조절하는 광유전학 연구에, 물리학상은 우주에서 날아오는 고에너지 중성미자의 관측에, 화학상은 분자의 비대칭 합성과 자기촉매 반응을 규명한 연구에 돌아갔다. 모두 자연의 근본적인 작동 원리를 이해하려는 기초과학의 성과다.
 
2024년이 AI의 가능성을 보여줬다면, 2026년은 그 AI를 더욱 발전시키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다시 생각하게 했다. AI가 과학을 도와주는 시대에서, 과학이 AI의 새로운 발전을 가능하게 하는 시대로 시야를 넓혀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Science for AI', 곧 AI를 위한 과학이라고 부를 수 있다.

물론 올해 노벨상 수상자들이 모두 AI 개발을 직접 목표로 연구한 것은 아니다. 노벨위원회가 AI를 위한 과학이라는 새로운 방향을 선언한 것도 아니다. 다만 올해의 수상 업적을 AI 시대라는 관점에서 다시 읽어보면, 기초과학의 중요성이 오히려 더욱 커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이는 당연한 일이다. 아무리 뛰어난 AI라도 반도체와 전력 없이 작동할 수 없다. AI가 인간의 뇌처럼 적은 에너지로 복잡한 판단을 하려면 신경과학의 도움이 필요하다. 더 빠르고 효율적인 반도체를 만들려면 물리학과 신소재 연구가 뒷받침돼야 한다. AI가 신약을 설계하더라도 실제 생명현상을 이해하고 검증하는 일에는 생물학과 화학이 필수적이다.

AI가 발전할수록 과학이 덜 필요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깊은 과학이 요구되는 역설이 나타나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변화가 시작된다. 과거에는 과학이 새로운 기술을 낳고, 그 기술이 산업에 응용되는 일방향의 흐름이 강했다. 앞으로는 AI가 과학적 발견을 가속하고, 그렇게 발전한 과학이 다시 AI의 성능과 효율을 높이는 순환이 강화될 것이다. 과학과 AI가 서로를 진화시키는 '공진화(共振化)'의 시대다.

이러한 변화는 대학과 연구소의 역할도 바꿀 것이다. 지금까지 AI 경쟁의 주역이 빅테크 기업과 컴퓨터공학자들이었다면, 앞으로는 물리학자와 화학자, 생물학자, 뇌과학자들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질 수 있다. AI의 다음 도약은 거대한 데이터센터뿐 아니라 대학의 실험실과 기초과학 연구소에서도 시작될 것이다.
 
그렇다면 경제의 세계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올해 노벨 경제학상은 미국의 로버트 홀과 마이클 우드퍼드에게 돌아갔다. 두 경제학자는 가계와 기업의 의사결정이 경제 전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분석하고, 정부와 중앙은행이 경기변동을 안정시키는 데 필요한 이론적 기초를 발전시켰다. 경제가 충격을 받을 때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를 설명한 연구다.

흥미로운 것은 지난해 노벨 경제학상과 연결해 볼 때다. 2025년 경제학상은 기술혁신과 창조적 파괴가 어떻게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이끌어내는지를 설명한 연구에 주어졌다. 새로운 기술이 기존 산업을 무너뜨리면서 새로운 산업과 부를 창출한다는 슘페터의 문제의식과 맞닿아 있다.
 
지난해의 화두가 혁신을 통한 성장이었다면, 올해는 그 성장 과정에서 나타나는 경제적 충격과 불안정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떠올리게 한다. 이 두 가지를 AI 시대에 적용하면 하나의 새로운 경제질서가 보인다. 바로 'AI 자본주의'다. AI 자본주의란 단순히 AI 기업들이 돈을 많이 벌고 주가가 오르는 현상을 뜻하지 않는다. AI가 자본주의의 생산방식과 경쟁질서, 부의 축적과 분배구조까지 바꾸는 체제를 의미한다. 그 핵심은 '지능의 자본화'에 있다.
 
산업혁명 이후 자본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생산자산은 기계와 공장이었다. 정보화 시대에는 데이터와 디지털 플랫폼이 새로운 부의 원천으로 떠올랐다. 이제 AI 시대에는 인간의 지적 노동을 보완하거나 일부 대신할 수 있는 지능 자체가 경제적 자산이 되고 있다.

예를 들어 과거 기업은 생산량을 늘리려면 공장을 확장하고 사람을 더 고용해야 했다. 그러나 AI 시대에는 같은 인력과 설비를 가지고도 AI를 활용해 설계하고, 생산을 최적화하며, 고객을 관리하고, 새로운 제품을 개발할 수 있다. 기업의 경쟁력이 얼마나 많은 노동력을 보유하고 있는가에서 얼마나 뛰어난 지능을 활용할 수 있는가로 이동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AI가 로봇과 결합하면 이러한 변화는 컴퓨터 화면을 넘어 공장과 물류창고, 병원과 농장으로 확산된다. 이른바 피지컬 AI의 세계다. 산업혁명이 인간의 육체노동을 기계로 확장했다면, AI 혁명은 인간의 지적 능력을 기계와 시스템 속으로 확장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이 Science for AI와 AI 자본주의가 만나는 지점이다. 과학은 더 효율적이고 뛰어난 지능을 만들어내고, 자본주의는 그 지능을 생산자산으로 활용한다. AI가 만들어낸 경제적 부는 다시 반도체와 데이터센터, 전력시설, 기초과학 연구에 투자된다. 과학과 지능, 자본이 서로를 강화하는 거대한 순환이 형성되는 것이다.

이러한 순환이 앞으로 상당 기간 지속된다면 세계는 어떤 모습으로 달라질까. 우선 과학의 지도가 달라질 것이다. 지금까지 세계의 과학기술 경쟁은 반도체, 통신, 소프트웨어 등 개별 기술 분야를 중심으로 전개됐다. 앞으로는 물리학과 화학, 생명과학, 수학, 컴퓨터공학이 긴밀하게 연결되는 융합연구가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AI는 연구자들이 서로 다른 학문을 연결하는 공통의 도구가 되고, 기초과학은 AI의 한계를 돌파하는 새로운 원천이 될 것이다. 대학과 연구소, 기업의 경계도 지금보다 훨씬 유동적으로 바뀔 가능성이 크다.

산업의 지도 역시 크게 달라질 것이다. 자동차 기업은 단순한 자동차 제조업체가 아니라 이동하는 지능형 시스템을 만드는 기업으로 변모할 수 있다. 제약회사는 AI와 생명과학을 결합해 신약개발의 시간과 비용을 줄이려 할 것이다. 전력회사는 AI 산업의 성장에 필요한 핵심 인프라 기업으로 부상하고, 반도체 기업은 연산 능력뿐 아니라 에너지 효율까지 경쟁해야 할 것이다. AI 산업과 비AI 산업의 구분 자체가 점차 의미를 잃을 수도 있다.

자본주의의 모습도 달라진다. 지금까지는 자본을 많이 가진 기업이 대규모 생산설비를 확보하고 시장을 지배하는 경우가 많았다. 앞으로는 뛰어난 AI 모델과 연산 인프라, 데이터를 확보한 기업이 다른 산업의 생산과 유통, 소비 과정에까지 영향력을 행사할 가능성이 커진다. AI 플랫폼을 소유한 기업이 산업 전반의 지능을 공급하고 그 대가를 받는 새로운 경제구조가 형성될 수 있다. 지능이 새로운 생산요소가 되는 동시에 새로운 시장지배력의 원천이 되는 셈이다.
 
여기에는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이 공존한다. AI를 이용해 생산성이 높아지고 의료와 교육, 과학기술의 혜택이 더 많은 사람에게 돌아갈 수 있다. 그러나 지능을 소유한 기업과 그렇지 못한 기업, AI를 자유롭게 활용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사이의 격차가 커질 위험도 있다. 노동의 일부가 AI로 대체되면서 고용과 임금, 소득분배를 둘러싼 갈등이 심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바로 여기서 올해 노벨 경제학상이 던지는 질문이 중요해진다. 혁신은 성장의 원천이지만 성장의 과실이 저절로 공정하게 분배되는 것은 아니다. 더욱이 AI 투자가 특정 기업과 산업에 집중되고, 전력과 자본이 부족한 나라들이 경쟁에서 뒤처진다면 세계경제의 불균형은 한층 심해질 수 있다. AI 자본주의에는 슘페터의 혁신론만큼이나 경기 안정과 사회적 조정을 중시하는 거시경제학의 지혜가 필요하다.

국가 간 경쟁의 성격도 바뀔 것이다. 과거에는 석유와 철강, 자동차와 반도체가 국가경쟁력을 좌우했다. 앞으로는 과학적 발견을 만들어내는 능력, AI를 개발하고 활용하는 능력, 이를 뒷받침할 전력과 컴퓨팅 인프라를 확보하는 능력이 함께 중요해진다. 과학기술 정책과 산업정책, 에너지정책, 경제안보 정책을 따로 생각하기 어려운 시대가 오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가 10년, 20년 지속된다면 세계경제는 지능을 만들어내는 나라, 지능을 산업에 적용하는 나라, 다른 나라가 공급하는 지능을 주로 소비하는 나라로 분화될 가능성도 있다. 물론 이 구분이 영구적으로 고착된다는 뜻은 아니다. AI의 비용이 크게 낮아지고 기술이 널리 보급된다면 후발국에도 새로운 기회가 열릴 것이다. 중요한 것은 AI를 얼마나 많이 사용하는가가 아니라, AI가 창출하는 새로운 가치에 얼마나 주도적으로 참여하는가다.
 
한국에는 이 모든 변화가 기회이자 도전이다. 세계적인 반도체와 제조업 기반을 가진 한국은 AI 자본주의의 중요한 생산기반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반도체를 공급하면서 정작 지능을 만들어내는 플랫폼과 서비스를 다른 나라에 의존한다면 새로운 부의 상당 부분을 해외에 넘겨줄 수 있다. 제조업 강국이라는 과거의 성공 경험이 미래의 경쟁력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한국의 AI 국가전략도 두 축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하나는 기초과학과 대학, 정부출연연구기관을 중심으로 ‘Science for AI’의 역량을 키우는 일이다. 다른 하나는 제조업과 서비스업 전반의 AI 대전환(AX)을 추진하면서 한국 기업들이 지능의 자본화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하는 일이다. 여기에 전력과 데이터센터, 반도체, 인재양성, 자본시장과 사회안전망을 연결하는 종합적인 설계가 필요하다.

특히 정부출연연구기관의 역할을 다시 생각할 때다. 대학이 새로운 과학적 원리를 탐구하고 기업이 이를 산업에 적용한다면, 출연연은 두 영역을 연결하는 국가적 가교가 될 수 있다. 기초과학의 성과를 AI 기술의 발전으로 연결하고, 산업 현장에서 발견된 문제를 다시 과학적 연구과제로 전환하는 역할이다. 한국이 가진 연구개발 체제를 AI 문명에 맞게 재편할 필요가 있다.
 
2026년 노벨상은 AI 문명의 도래를 공식적으로 선언한 사건은 아니다. 그러나 과학상과 경제학상을 함께 바라보면 한 시대가 어디로 움직이고 있는지 읽어낼 수 있다. 과학은 AI를 더욱 발전시키고, AI는 과학적 발견을 가속하며, 자본주의는 그 지능을 새로운 생산자산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이 세 흐름이 맞물리면서 인류의 지식 생산과 부의 창출 방식이 동시에 바뀌고 있다.

18세기 산업혁명이 인간의 근육을 기계로 확장했다면, 21세기 AI 혁명은 인간의 지능을 새로운 생산력으로 확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변화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인간이 만들어낸 지능이 다시 과학을 발전시키고, 그 과학이 더 뛰어난 지능을 탄생시키는 순환이 시작되고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의 세계는 단순히 AI를 잘 만드는 나라와 그렇지 못한 나라로 나뉘지 않을 것이다. 과학과 지능, 자본을 얼마나 조화롭게 연결하고 그 성과를 사회 전체의 번영으로 돌릴 수 있는가에 따라 국가와 기업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다.

2026년 노벨상이 우리에게 남긴 가장 큰 질문도 여기에 있다. AI가 얼마나 똑똑해질 것인가가 아니다. AI가 과학과 자본주의를 동시에 바꾸는 시대에, 인간은 어떤 새로운 번영의 질서를 만들어낼 것인가. 이제 그 질문에 답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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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주요 이력 

▷전 중앙일보 경제부국장, 도쿄특파원 ▷전 서울대 공과대학 초빙교수 ▷전 한양대 기술경영학 석좌교수 ▷전 경기도 경기과학기술진흥원 원장 ▷현 광주과기원 AI정책전략대학원 특임 교수, 가천대 초빙교수 ▷현 아주경제 논설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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