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공계 기피현상, 숨겨진 진실

柳莊熙 (이대명예교수·대한민국 학술원 회원)

흔히 이공계 기피현상을 논할 때 젊은이들이 이공계대학에 잘 안 간다는 것을 염려하는데 사실 문제의 심각성은 다른 곳에 있다. 즉 이공계 대학진학 비율은 그리 크게 줄지 않았는데 졸업생 비율, 그리고 실제로 우수한 졸업생이 이공계에 진출하는 비율이 큰 폭으로 줄고 있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즉 이공계 위기가 양적 측면보다 질적 측면에서 심각하다는 점이다. 특히 우수학생 집단의 이공계 이탈현상이 나타나고 있는데 자연계열 우수학생이 의학·치의학·한의학 심지어는 법학·경영학 분야로 방향전환을 하는 학생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그 핵심적인 이유는 젊은이들로 하여금 과학·기술 분야에 장차 사회적 큰 수요가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주는 정책을 내놓지 못한 데에 있다. 이공계 인력의 수요가 취약함으로 시장에서의 현상은 이들에 대한 낮은 대우(연봉·승진·직업안정성·사회적 인정 등)로 나타나는 것이다. 젊은이들은 이를 제대로 감지하고 있고 따라서 기회만 있으면 졸업 후 좋은 대우를 받으며 여유 있는 삶을 향유할 수 있는 분야로 옮기고자 하는 것이다.

이러한 원인분석이 맞는다면 국가의 정책적 역점이 ‘수요’부문에 맞춰져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러면 수요를 확대할 수 있는 정책은 무엇일까? 지금까지 나온 학계의 정책 건의를 모아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기업과 관련한 정책 건의로는 이공계 졸업생을 채용하는 기업에 대한 세제 및 금융혜택, 이공계 석·박사 창업(벤처기업) 지원, 대덕에 몰려있는 연구 단지를 서울 및 기타 지방에 확대 설립, 기술계 직장인을 대상으로 한 재교육 프로그램 확대 등이 있다.

공공부문의 경우 이공계 출신 공무원의 채용을 확대하기 위해 공무원 임용 제도를 대폭 개선하고, 정당·사회단체 등을 설립할 경우 과학기술인력을 일정수준 채용토록 법률로 규정하는 방법이다. 또한 정부가 국가의 미래 산업구조를 위한 비전을 제시하고, 제시한 미래 성장 동력 산업과 연관된 과학·기술 분야의 인력이 타 분야의 인력에 비해 승진 및 승급이 유리하다는 구체적인 청사진을 제시해야 한다. 국방 분야의 경우 과학·기술 병과를 대폭으로 늘려 국방의 첨단기술화를 도모하는 동시에 과학·기술 분야를 전공한 젊은이들이 대폭적으로 군 분야에 진출할 수 있도록 새로운 병역제도를 시행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일반 국민 대상 정책도 중요하다.

즉 과학·기술에 대한 지식습득이 필수적이라는 내용의 캠페인을 통해 과학·기술이 평생교육 분야가 되도록 분위기를 쇄신하고, 이를 위한 담당 교사의 확충을 도모하는 것이다. 또한 각종 언론매체와의 협력을 통해 과학·기술 분야의 중요성을 확대하기 위한 일종의 과학 새마을 운동의 전개, 각종 문화 활동(문학, 연극, 영화, 드라마 등)에서 과학·기술을 주제로 한 콘텐츠를 개발하여 과학·기술을 문화의 일부분으로 인식하도록 하는 등의 정책을 펼칠 수 있을 것이다.

이상의 수요 진작정책에 비해 지금까지 나와 있는 한국정부의 주요부처의 과학∙기술 인력정책은 다분히 이공계 인력의 공급 진작정책들이어서 문제의 핵심에서 벗어나 있는 느낌이다. 교육과학기술부, 지식경제부의 정책이 주로 공급확대정책에 맞춰져 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나 수요부처로 알려진 환경부, 여성부 등에서 조차 수요보다는 공급정책을 펴왔음을 알 수 있다.

예를 들면 환경부와 여성부에서 2008년도에 시행한 사업내용은 다음과 같다. 환경부의 경우 환경기술전문인력양성지원사업, 산업체 재교육, 산학연 연계 인턴 십 프로그램을 통해 환경산업부문의 전문 인력 양성, 실무자들의 재교육, 미취업자 연수를 실시했다. 여성부는 우수여학생들의 이공계열 분야로의 진출을 유도하고, 우수 여학생의 이공계 대학 진학 및 우수여성과학 기술인으로의 성장을 지원하기 위하여 이공계 우수여학생 장학금 지급사업, 과학기술분야 여성인력양성의 정책을 펼쳐왔다. 이는 모두 인력양성 정책이지 수요확대 정책이 아니다.

결론적으로 젊은이들의 이공계 기피현상의 근본적 원인은 부지불식간에 이들을 수용할 수 있는 새로운 매커니즘 구축에 우리사회가 그 동안 게을리 해왔다는 사실이다. 이공계인력의 시장적 환경을 수요증진 방향으로 개선함으로써 이들에 대한 대우가 획기적으로 상향 조정되는 정책적 노력이 필수적이라 할 수 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고궁걷기대회_기사뷰_PC
댓글0
0 / 300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