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 정부가 정년 연장을 추진함에 따라 은행이 그간 추진해온 인력 구조조정 계획을 전면 수정해야 할 상황에 놓였다. 이재명 대통령이 후보 시절부터 제시해 온 65세 정년 연장 공약이 연내 입법화 등 단계적으로 추진될 것으로 예고됐기 때문이다. 이에 지난 4년간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에서만 3조원 넘게 쓰인 희망퇴직금은 매몰비용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7일 금융권에 따르면 하나은행은 이날까지 일주일 동안 하반기 준정년 특별퇴직(희망퇴직) 신청을 받았다. 희망퇴직 대상자는 오는 31일 기준 만 15년 이상 근무, 만 40세 이상인 일반 직원이다. 이번에 퇴직하는 임직원은 특별퇴직금으로 최대 28개월 치 평균 임금을 받게 된다.
이처럼 은행의 희망퇴직은 이미 2000년대 중반부터 정례화돼 왔다. 특히 전통은행은 일반 예금이나 대출 신청 등 업무 처리 전반에 있어 비대면을 활용한 영업이 높은 비중을 차지하게 되자 큰 금액의 희망퇴직금을 부담하고서라도 인력 구조조정을 매년 진행하는 상황이다. 인건비 등 고정적으로 나가는 비용을 중장기적으로 줄이려는 목적에서다.
이에 따라 지난 4년간 5대 은행이 희망퇴직으로 쓴 비용만 3조1296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연도별 5대 은행의 총 희망퇴직금을 보면 △2021년 7216억원 △2022년 8562억원 △2023년 8558억원 △2024년 6960억원 등이다.
이처럼 이미 대규모 비용을 쓴 상황에서 새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정년 연장 정책은 은행업 흐름과 상반된다.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주요 공약으로 법정 정년에 대해 단계적 연장을 제시했다. 법정 정년을 현재 60세에서 65세로 늘린다는 게 핵심이다. 이를 위해 ‘회복과 성장을 위한 정년연장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고, 연내 입법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인력 구조조정을 진행하고 있는 은행 사이에서 당혹스럽다는 반응이 나오는 이유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호봉제인 은행 특성상 희망퇴직과 신입 채용만으로도 인건비 절감 효과가 생긴다”며 “그런데 정년을 연장하게 되면 법적으로 고용을 보장해야 하기 때문에 부담스러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에 은행들은 그간 수립해 놓은 인력 구조조정 계획도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또 그간 인력 구조 슬림화를 위해 쓴 희망퇴직금도 자칫 매몰 비용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정부가 정년 연장 등으로 고용을 늘리는 방향으로 정책을 펴겠다고 하면 은행으로선 사실상 이를 거부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디지털화가 빨라지고 인터넷전문은행이 등장하는 등 전통은행이 인력을 감축하고 있는 건 경영 환경 변화에 따른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며 “정년 연장이 은행에 또 다른 경영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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