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하이를 중심으로 한 창장(장강) 삼각주는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갖추고 있어 외국인들이 거주하기에 적합하다. 700~800명의 외국인 과학자는 이곳에서 마치 고국에서 일하는 듯한 느낌을 받을 것이다."
런정페이(任正非) 화웨이 회장은 2021년 9월 중앙연구원에서 열린 과학자와의 좌담회에서 상하이 롄추후(練秋湖) 연구·개발(R&D) 기지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실제 롄추후 R&D 기지는 런 회장이 2016년 자동차 여행 중 우연히 이곳을 지나다가 아름다운 자연 경관에 매료돼 전문 조사팀을 파견하고 반년에 걸쳐 심층 답사를 진행한 후, 상하이시 정부와의 논의 끝에 R&D 투자를 결정한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이르면 오는 하반기 정식 운영하는 상하이 롄추후 R&D 기지는 미국의 제재에 맞서는 화웨이의 글로벌 기술개발 핵심 R&D의 최전선 기지라 할 수 있다. 전 세계 기술 개발 인력을 ‘블랙홀’처럼 흡수하기 위해 지은 이곳은 광둥성 둥관의 쑹산후 기지에 이어 런 회장이 상상했던 ‘꿈의 직장’을 또 하나의 현실로 만든 것이다.
연초 이곳을 방문한 토마스 프리드먼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는 “세계의 미래는 미국이 아닌, 중국에 있다”고 표현했을 정도다. 그는 이곳을 “2019년부터 국가 안보 우려를 이유로 반도체를 포함한 미국 기술 수출을 제한함으로써 화웨이를 질식시키려는 미국의 시도에 대한 화웨이의 대응"이라고 표현했다.
화웨이의 한 관계자는 “미국 제재에 맞서 기술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며 "현재 연간 매출의 20% 이상을 R&D에 투입하는 등 매년 R&D 예산을 늘리고 화웨이 전체 직원의 절반을 R&D 인력으로 채우고 있다"고 설명했다.
축구장 226배 면적..."카페만 100곳이 넘는 이유"
중국 증권시보 등 현지 매체에 따르면 롄추후 기지는 상하이 최서단에 위치한 칭푸구 시링진에 위치해 있다. 지난 2020년 착공 후 5년에 걸쳐 100억 위안(약 1조9000억원) 이상을 투자해 조성한 이곳 면적은 축구장의 226배에 달하는 2400무(畝, 1무=약 667㎡)에 달한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미국 실리콘밸리의 애플 파크와 워싱턴주의 마이크로소프트 레드먼드 캠퍼스를 합친 것보다 넓다”고 소개했다.
강변, 언덕, 삼림, 도심, 대학 등 8개 테마별로 구역을 나누어 조성한 이곳엔 모두 104개 건축물이 들어서 있다. 기술자를 위한 연구 실험실은 물론 식당·카페·피트니스 센터를 비롯해 다양한 편의시설을 갖추고 있다. 기지 곳곳에 깔린 궤도를 따라 트램도 운행 중이다.
호수를 가로지르는 아치형 다리, 호숫가에 위치한 캡슐 모양의 컨벤션 센터까지, 모두 롄추후 기지의 랜드마크다.
이곳에 입주할 3만5000~4만명의 과학자 엔지니어를 위해 기지 인근에 총 6200호의 원룸과 5300호의 가정용 주택 등 화웨이 직원용 아파트도 건설 중이다. 상하이 훙차오역에서 출발하는 지하철 17호선 연장선은 롄추후 기지 바로 앞까지 연결돼 교통 편의성도 높였다.
특히 런정페이 회장이 심혈을 기울인 것 중 하나는 기지 안에 100개가 넘는 카페를 만드는 일이었다. 그는 과거 인터뷰에서 “거리, 호숫가에 위치한 예쁜 카페가 인재들을 사로잡을 것”이라며 “모든 카페는 모두 화웨이가 직접 설계 건설해, 서비스 전문가들에게 위탁해 운영을 맡김으로써 고급 전문 서비스를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런 회장은 “커피 한잔이 우주의 에너지를 흡수하여, 외국인들의 두뇌가 이곳에서 서로 충돌하며 새로운 폭발력을 만들어낼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커피 한잔이 우주의 에너지를 흡수한다”는 말은 런 회장이 즐겨하는 말이다. 커피가 무슨 특별한 작용을 한다는 뜻이 아닌, 서양의 ‘커피 문화’를 빌려 지식 아이디어의 개방·소통·교류의 중요성을 표현한 것이다.
"기초 연구가 뿌리" 매출의 20% R&D 투자
롄추후 기지는 자연 경관만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지리적 이점도 우세하다. 상하이를 중심으로 한 창장 삼각주는 예로부터 국내 반도체 산업의 주요 중심지로, 중국 반도체 산업의 약 60%를 차지하고 있다. 중국 반도체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기업인 SMIC·화훙반도체·상하이 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등도 모두 이곳에 위치해 있다.
상하이 동부에 위치한 푸둥 연구소와 비교해 롄추후 기지는 장쑤·저장성이 만나는 지점에 소재해 항저우·쑤저우 등 인근 산업 중심지와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고, 더 많은 인재를 흡수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롄추후 기지는 앞으로 화웨이 반도체, 무선네트워크, 사물인터넷 등 핵심 기술 R&D 부문에 집중하게 된다. 이미 포화 상태가 된 기존의 푸둥 연구소 인력들이 이곳으로 속속 옮겨오고 있다. 화웨이 반도체 자회사 하이실리콘을 비롯해 올해 말까지 3만명 기술 인력이 롄추후 기지에 입주할 예정으로 알려졌다.
사실 2019년 미국의 제재 이후 화웨이는 매년 R&D 투자를 과감하게 늘리며 미래 기술 혁신 성장을 이뤄내겠다는 의지를 내비쳐왔다. 화웨이는 지난해 약 1800억 위안(약 34조원)을 R&D에 투자했다. 우리나라의 삼성전자와 비슷한 액수다.
특히 R&D 예산의 약 3분의1에 달하는 600억 위안을 기초 이론 연구에 투자한 것이 눈에 띈다. 런정페이 회장은 앞서 관영 인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기초 연구는 5~10년 이상, 보통 10년, 20년, 심지어 그 이상 걸린다. 기초 연구를 하지 않으면 뿌리가 내리지 못한다. 아무리 잎이 무성하고 풍성하더라도 바람이 불면 쓰러진다”며 기초과학 연구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도 무관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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