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요다 일가의 대정봉환(大政奉還)… 1년도 안돼 '흔들'

글로벌 대기업들에 있어 도요타는 교과서와도 같았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대량 리콜 사태는 더욱 큰 충격이었다.

‘저스트 인 타임(Just In Time, 적기 부품공급)’ ‘간반(看板, 재고 줄이기 위한 생산)’ ‘가이젠(改善, 혁신 활동)’으로 대표되는 도요타의 생산방식(TPS)은 미국 하버드대의 정식 수업으로 채택되기도 했다.

한국도 마찬가지였다. 국내에 현재 시판되는 도요타와 관련 책도 100권이 넘는다. 현대.기아차는 물론 삼성, LG, 포스코 등 많은 대기업들이 도요타의 시스템을 도입하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도요타는 지난 수 년간 무리한 확장 정책으로 ‘도요타 쇼크’와 ‘대량 리콜 사태’라는 연이은 악재를 맞았다.

◆14년 만에 도요다 가문 ‘구원투수’ 등장

   
 
 
지난해 취임한 창업주 기이치로의 손자 아키오 사장은 사상 첫 적자를 막기 위한 ‘구원투수’였다.

도요타는 지난 2008년 70년 만에 처음으로 4610억 엔(회계연도 기준)의 적자를 기록했다. 적자를 기록했던 1938년은 회사 창립 2년째였던 만큼 이번이 사실상 최초의 적자다.

이른바 ‘도요타 쇼크’로 불린 이 위기는 도요다 일가의 경영 복귀를 촉발시켰다.

도요타는 지난 1996년 아키오 사장의 숙부였던 다쓰로 전 사장이 퇴임한 이래 14년 째 전문경영인이 경영을 맡아 왔다.

이후 오쿠다 히로시(1995~1999년), 죠 후지오(1999~2005년), 와타나베 가쓰아키(2005~2009년)로 이어지는 전문경영인 체제 하에서, 전 세계적 고속 성장을 이어갔다.

특히 지난 2002년 조 후지오 사장은 2010년에 전 세계에서 1000만대를 판매, 세계 1위로 올라서겠다는 목표를 세웠고 매년 사상 최대의 판매·이익·점유율 기록을 갈아치웠다.

지난 2008년에는 마침내 세계 역사상 최대 자동차 판매량(897만대)을 기록하며 미국 제네럴모터스(GM)를 누르고 세계 최대 자동차 회사로 등극했다.

하지만 이 같은 팽창 정책이 이번 사태를 낳았다. 일본 언론들은 지난해 아키오 사장의 취임시 “‘도요타 쇼크’는 전문경영인들이 실적 지향의 경영을 했기 때문”이라며 도요다 가문의 복귀를 반겼다.

도요타의 팽창 정책은 또 다른 부작용도 낳았다. 이번 사태로 직결된 품질 저하 문제다.

도요타는 지난해 초 경기 침체 및 엔화 강세(엔고)에 따른 수출 부진과 과잉 생산설비라는 이중고를 겪었다. 연산 1000만대 규모로 확대된 생산 설비에서는 재고가 쌓여만 갔다.

그 결과 재고량을 최소화하는 도요타 고유의 생산방식인 TPS도 유명무실해졌다. ‘마른 수건에서도 물을 짜 내듯’ 협력사에 무리한 납품단가 인하를 요구하며 품질 저하는 가속화됐다.

도요타의 해외 생산 비중이 늘어난 것도 이를 부추겼다. 부품사와의 수직계열화 및 원만한 노사관계를 갖춘 일본과 달리 해외 공장은 도요타 특유의 생산방식이 잘 먹히지 않았다.

이같은 일련의 위기가 장인 정신으로 똘똘 뭉친 도요다 일가의 복귀를 촉발하게 된 것이다.

◆위기관리능력 시험받는 아키오 사장

하지만 아키오 체제는 시작부터 방황하고 있다. 우선 이번 사태에 대한 위기관리 능력이 도마에 올랐다. 늑장 대처로 사태를 더욱 키웠기 때문이다.

리콜은 잘 대처할 경우 브랜드의 신뢰도를 높일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도요타는 ‘은폐 의혹’까지 겹치며 브랜드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었다.

아키오 사장은 리콜 사태 초기 수수방관만 했다. 사태가 일파만파 퍼져나가자 그제서야 연이어 기자회견을 열었지만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였다. 도요타의 이미지는 이미 떨어질 대로 떨어진 뒤였다.

이에 도요다 가문이 그룹 내에서 더 이상 힘을 발휘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도요다 가문은 그룹 지분이 2%에도 못 미친다. 하지만 70년이 넘도록 도요타 그룹의 구심점 역할을 해 왔다. 다시 말하면 도요다 가문이라고 해서 경영상 실책이 용납되지 않는다는 의미다.

실제 도요타자동차는 1937년 창업 이래 도요다 가문과 전문경영인이 번갈아 가며 경영을 맡아 왔다.

창업주인 기이치로는 1950년 노동쟁의에 대한 책임을 지고 전문경영인인 이시다 다이죠에게 사장 자리를 넘겼다.

이후 1967년부터 1995년까지 창업주 기이치로의 사촌 동생이자 도요타자동차 원년 멤버였던 에이지와 기이치로의 장남 쇼이치로, 다쓰로 사장이 연이어 취임했으나 그 이후 다시 전문경영인 체제로 돌아섰다.

아키오 사장은 지난해 6월 25일 취임사를 통해 “향후 2년 동안 어려운 상황은 계속될 것”이라며 “조기 흑자 전환을 통해 강한 도요타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번 대량 리콜 사태로 인해 금전적 피해에 이미지 실추라는 악재를 더했다. 게다가 품질 강화와 상충하는 수익성 높이기도 당분간 어려워지게 됐다.

뿐만 아니다. 도요타의 수출은 감소 추세에 있는 일본·미국·유럽 위주(약 70%)여서 향후 중국·인도·남미 등 신흥 국가 위주로 급속히 재편중인 세계 자동차 시장에 뒤쳐져 있다는 점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지난해 세계 최대 시장으로 등극한 중국에서의 도요타 점유율은 5위에 불과하다. 현대·기아차에도 뒤져 있다.

이번 사태는 도요타와 함께 도요다 일가가 맞는 최대 위기다. 아키오 사장이 향후 어떻게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지 업계 관계자들의 이목이 집중된다.

아주경제= 김형욱 기자 nero@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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