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꾼 박일호의 뒷북치기]경영의 출발점과 지향점을 다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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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0-05-04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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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학의 진리체계』/ 윤석철 지음, 경문사, 2001

 “경영학은 산업혁명 이후 기업이 발전하면서 생산, 판매, 인사, 조직, 재무 등 분야별로 필요해진 부분해법들이 모여서 오늘에 이르렀다. 그러나 요즘처럼 불확실성이 높아지고 풀어야 할 문제의 규모와 복잡성이 증대하면 부분해법만 가진 경영자는 자기한계에 봉착한다. 오늘의 경영자는 해결하려는 문제와 관련된 영역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넓은 지적 시야를 필요로 한다. 인간의 필요, 아픔, 정서에 대한 감수성으로 수요를 예측할 수 있어야 하며, 예측한 수요를 충족할 수 있는 수단으로서 과학과 기술을 이해해야 한다.”

한국의 피터 드러커로 불리는 윤석철 한양대 석좌교수의 『경영학의 진리체계』서문 중 일부다. 초판이 나온 게 2001년 이지만 지금 상황에 대입해서 읽어도 전혀 진부한 느낌이 들지 않는 것은, 여전히 비즈니스 중심에 인간이 있고 인간에 대한 이해 없이 제대로 된 경영이 불가능 하다는걸 더욱 실감하기 때문일까. 저자는 서울대 독문과에서 물리학과로 전과해 수석 졸업한 뒤 미국 펜실베니아대에서 전기공학을 공부하고 경영학 박사학위를 받는 등 인문사회과학과 자연과학을 자유로이 넘나들었다.

그의 책이 학문적 너비와 깊이를 갖고 경영학 분야에서 드물게 고전에 가까운 자리를 인정받고 있는 것도 양 분야를 아우르는 독특한 학문 역정에 기인한다. 저자는 경영학이 응용학문의 극단에 위치한 학문이므로 그 특성상 부분 해법의 방식으로는 경영학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음을 지적하며, 그동안 부분해법 조각모음 상태에 있는 경영학을 하나의 통일된 이론체계로 만들기 위한 시도를 계속했다.

『경영학적 사고의 틀(1981년)』에서는 경영의 문제를 시간, 공간, 인간 등 3차원으로 분해하여 접근하는 방법을 제시했고, 『프린시피아 매네지멘타(1991년)』에서는 생존부등식의 개념을 도입, 그것을 만족시키기 위한 체계적 노력을 경영의 본질로 파악했다.

『경영학의 진리체계(2001)』는 무한경쟁 속 적자생존의 고통과 아픔에 대한 실존주의적 이해에서 출발하여 인간사회에서 주고받음의 관계를 정립하기 위한 제약조건을 구명(究明)한다. 이 제약조건이 생존부등식으로 나타나고, 생존부등식을 만족시키기 위한 합리적 수단과 방법, 그리고 지식과 지혜의 구명으로 이어진다.

무한경쟁 속에서 진화한 생물과 마찬가지로 기업도 환경적응, 전략수립, 구조조정의 단계를 거치며 발전했는데 무한경쟁 체제에 직면한 개인이나 기업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생태계와 진화의 역사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오늘날 번성을 누리는 종(species)은 새로운 황무지를 찾아 개척하는 전략을 택했다. 이런 프런티어 정신의 반대는 ‘나도 남들 따라 하기’다.

과거 한국 기업은 경쟁 회사가 공장을 확장하면 나도 확장하고, 신규 분야에 진출하면 나도 진출하다가 과잉투자, 과잉경쟁으로 IMF 외환위기를 맞기도 했다. 물론 자본주의 사회를 움직이는 엔진은 경쟁이지만 경쟁에서 진정으로 이기는 길은 가급적 경쟁을 하지 않거나 경쟁을 피하는 방식을 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삶의 여러 가지 모형 중 너와 내가 모두 사는 길을 택하자는 전략이다. 한창 주목받던 블루오션 전략도 이 책의 주장과 맞닿아 있는 게 아닌지 짐작되는 대목이다.

만약 프런티어 개척이 어렵다면 남들이 기피하지만 인간의 역사에서 생존의 기본 방식이었던 3D 업종에서 경쟁력을 쌓는 것이 차선책일 수 있다. 3D 산업은 더럽고(dirty), 어렵고(difficult), 위험해서(dangerous) 회피 대상이다. 대신 ‘너 죽고, 나 죽고’식 과당경쟁이 없다. 그런데 의식주 등 필수품은 궁극적으로 여기서 나온다. 3D 산업은 인류가 존재하는 한 영원할 수밖에 없다.

고객과 직접 소통하기 위해 현장에 뛰어들면서 감수성이 ‘주고받음’의 제1의 필요조건이라면 두 번째 조건은 상상력이다. 상상력은 서로 무관한 것처럼 보이는 기존의 경험과 목표의식을 하나로 묶는 작업이다. 이를 바탕으로 제3의 필요조건인 탐색 시행을 지속할 때 고객이 원하는 것, 시장이 필요로 하는 것을 생산할 수 있다. 상상력은 모차르트나 아인슈타인 같은 천재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창조적 상상력은 오직 소수의 천재들에게만 가능한 것이라고 여기는 착각을 버려야 한다.

이러한 착각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상상력 발휘를 아예 포기해 버린다면 그것은 개인이나 사회 모두에게 큰 손실이 된다. 상상력과 열정으로 제주도 지하수를 개발한 사례가 있다. 1970년 농림부 산하 공무원 이었던 한규언씨는 쇠파이프 끝에 텅스텐을 붙여 모터로 회전시키며 용암 암반을 팠다. 관정(管井)이 뚫리면서 물이 콸콸 솟았다. ‘제주도에는 지하수가 없다’는 학계 의견을 뒤엎은 쾌거였다. 또 (주)농심이 어린이용 스낵을 개발하면서 상품명을 짓는데 고심하다 ‘이연연상’적 발상으로 ‘새우깡’이라는 이름을 짓게 된 흥미로운 사례도 소개하고 있다.

기업의 흥망성쇠에 대해서는 아놀드 토인비의 도전과 응전 이론을 이용하여 풀어볼 수 있다. 올바른 응전을 위해서는 항상 창조적 소수가 필요하다. 창조적 소수가 비전을 정립하고 이를 위한 능력을 배양하는 방법의 하나로 우회축적의 방식을 들수 있다. 한국전력이 고리원전 1호기를 건설할 때는 기술자립은 꿈도 꿀 수 없을 때라 외국에 젊은 엘리트 사원들을 파견하여 원전 건설과정에 필요한 품질관리기법을 배워와 특유의 QC기법을 도입한다.

‘제작 전 검사’ ‘제작 중 검사’ 등 품질 관리를 엄격히 하기 위한 절차와 제도를 완비하는 등 우회축적 노력을 했다. 한국전력이 작년말 UAE서 원자력발전소 4기를 수주해 세계를 놀라게 하는 등 오늘날 세계 정상급 품질을 인정받기까지에는 치열하게 우회축적을 한 노력이 바탕이 되었다. 

기존 상당수의 경영 관련서가 미국 이론을 그대로 직수입했거나 글로벌 스탠더드가 만능인 것처럼 주장하는 쪽에 치우쳐 있는데 반해, 이 책은 나무만 볼 것이 아니라 숲 전체를 보는 폭넓은 시야와 깊이로 경영의 기본 개념을 되새기게 해준다. 분명 경영학적 사고를 말하면서도 기존의 경영 서적과는 다르게 인간의 감수성이나 철학적인 부분을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

인문, 과학, 철학 등 학문의 경계를 넘나들며 종횡무진하는 통찰과 치밀한 지적 글쓰기가 돋보인다. 경영을 기업의 차원에서 삶과 인생의 문제로 한단계 끌어올린, 인간에 대한 따뜻함과 성찰을 담은 인문학적 경영철학서라고 할 수 있다. 천천히 음미해서 읽다보면 경영자에게는 비즈니스에 있어서 단순히 이윤을 추구하는 데 빠지기 쉬운 오류를 시정하고, 경영의 출발점과 지향점을 환기시키는 기회가 된다.

   
 
 
일반 독자들도 경영의 본질을 이해하고, 인간과 사회를 연결하여 비즈니스를 바라보는 새로운 눈을 갖게 될지 모른다. 다만 애초부터 경영학의 전체적 윤곽을 파악하는데 도움을 줄 목적의 대학교재로 쓰여진 책이라서 그런지, 중간중간 등장하는 수리모형이나 부등식과 세련되지 못한 편집은 가독성을 다소 떨어뜨리기도 한다.

혹시라도 그런 독자를 위해서라면 『경영·경제·인생 강좌 45편』을 권한다. 윤석철 교수가 신문에 쉽고 짧게 써서 연재한 글을 모은 책이다. 분량만 적지 내용은 별 차이가 없다. 저자는 10년마다 책을 내겠다고 밝힌적이 있는데 내년이 바로 그 10년이 되는 해다. 어떤 책이 세상에 나올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기획회의 269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기고)

<필자소개> 온라인 서평꾼 박일호

  학부와 대학원에서 무역학과 경제학을 전공하고 경제단체에서 회원 팀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책읽기와 글쓰기에 관심이 많아 ‘독서대학원 북코러스’등 책읽기 모임의 멤버로 활동하며 서평위주의 블로그(blog.naver.com/ik15 구름을벗어난달)를 운영중인 독서꾼입니다. 서평전문잡지에 서평을 고정적으로 기고하고 있으며, 언젠가 자신의 이름으로 묶여진 서평집을 내는 꿈을 갖고 있는 멋진 준프로 서평꾼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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