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경영 포커스]불황에 소비자들 더 똑똑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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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0-05-06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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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경제 신기림 기자) 립스틱 판매고는 대표적인 불황지표로 꼽힌다. 불경기 때 소비자들은 립스틱과 같은 작은 사치품으로 위안을 삼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제 전문가들은 2008년 금융위기가 세계 경제를 강타한 뒤에는 사정이 달라졌다고 지적하고 있다. 경기가 나빠졌다고 기존에 쓰던 제품보다 저렴한 제품으로 갈아타거나 작은 사치품으로 위안을 삼기보다는 호황기에 누리던 좋은 품질의 제품을 구입하기 위해 시장조사와 예산조정을 통해 원하는 제품을 구입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 경제전문지 포춘은 최근 소비자들이 불경기에 저렴한 제품으로 갈아타거나 작은 사치품을 충동적으로 구입한다는 속설은 옛말이 됐다며 금융위기로 소비자들이 똑똑한 소비패턴을 보이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립스틱 판매실적을 근거로 경기를 진단하는 이른바 '립스틱지수'는 흔히 경기 불황의 척도로 애용돼 왔다. 싼 비용을 치르고도 눈에 잘 띄는 립스틱은 암울하고 칙칙한 상황에서 탈출하고자 하는 여성들의 구매 심리를 자극해 불경기일 수록 립스틱 매출이 증가한다는 것이다. 실제 2001년 9ㆍ11테러 직후 찾아온 불황 속에 립스틱지수는 큰 폭으로 상승했다.

그러나 소비자들은 이제 불황에도 립스틱과 같은 작은 사치품에 만족하지 않는 것으로 조사됐다. 시장조사업체인 NPD그룹에 따르면 전 세계가 금융위기로 휘청거리던 지난해 립스틱 매출은 전년보다 오히려 9.8% 감소했다.

미 주류정보업체인 베버리지인포그룹도 지난해 주류판매가 오히려 떨어졌다는 밝혔다. 사탕 등 군것질거리를 파는 업체들 역시 큰 수익을 내지 못했다.

세계적인 광고마케팅업체인 오길비앤매더의 그레이스앤 베넷 회장은 "경제가 어렵다는 이유로 소비자들이 가격표에 얽매여 소극적이고 단순한 구매를 일삼던 시대는 지났다"며 "소비자들은 오히려 시장에서 더욱 적극적으로 활동하며 심사숙고해 제품을 고르고 있다"고 말했다.

오길비의 최근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중 69%가 불황이 자신의 소비행동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기회가 됐다고 답했고 78%는 경기침체로 과거에 비해 좀 더 합리적으로 소비하게 됐다고 응답했다.

포춘은 경제 전반에 대한 인식수준이 높아지고 인터넷의 발달로 제품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취합할 수 있게 되면서 소비자들이 합리적인 소비패턴을 보이기 시작했다고 분석했다.

리서치업체인 민텔의 빌 패터슨 애널리스트는 "지갑이 얇아졌다고 소비자들이 가격이 싼 제품에 몰리는 것은 아니다"며 "소비자들은 주어진 예산 범위 내에서 최고의 가치를 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불황에도 유기농 식품시장은 성장세를 유지했고 애플의 아이폰은 전 세계 휴대폰 시장을 장악했다. 소비자들이 가격보다 제품의 혁신성이나 희소성 등 가치를 더욱 중시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교차적 소비(Cross-category behavior)'도 새로운 소비패턴으로 떠올랐다. 베넷 회장에 따르면 과거 소비자들은 제품을 선택할 때 수직적인 구매행태를 보였다. 가격이 곧 제품 선택의 기준이었다는 얘기다. 하지만 요즘 소비자들은 해당 제품의 가격뿐 아니라 교통비, 문화여가비 등 전체적인 비용을 꼼꼼히 따지며 제품을 구입하고 있다고 그는 설명했다.

오길비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스타벅스의 고객들은 경제여건이 나빠졌다고 해서 저가의 커피를 마시지 않는다. 오히려 의류와 같은 재량소비에 드는 비용을 줄여 자신들이 원하는 커피를 구입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울러 소비자들은 예산이 줄었다고 내키지 않는 저렴한 제품을 구입하기보다는 원하는 제품을 구입하는 빈도를 줄이고 있다고 포춘은 덧붙였다.

리서치업체인 캐리스앤코의 린다 볼튼 와이저 애널리스트는 헤어제품의 경우 미국시장의 전체 매출 증가율이 판매 증가율보다 높다고 지적했다. 소비자들이 구매빈도는 줄였지만 고가의 제품을 구입했기 때문이다.

kirimi99@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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