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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글은 역사의 기록 아닌 보완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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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0-05-17 1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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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경제 이미호 기자) "특정한 시대를 기록해야 한다는 의무감은 없었어요. 만약 어떤 필요성이 존재했다면 그건 내면으로부터 연유한 불가피함이었을 거에요."

   
 
 
지난해 노벨문학상을 받은 독일 작가 헤르타 뮐러(57)가 국내 문예 계간지 문학동네와의 인터뷰에서 루마니아 독재 정권에 억압받은 자신의 삶과 작품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털어놨다.

뮐러는 1953년 루마니아에서 태어나 독일계 소수민족 가정에서 자랐다. 그의 아버지는 2차대전 당시 나치 무장친위대로 징집됐다 돌아왔고 어머니는 우크라이나의 강제수용소에서 5년간 노역했다.

그는 "글 쓰는 일을 신비화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며 "글 쓰는 것도 일일 뿐이지만 나 스스로 가진 이런저런 갈등을 극복하고 다룰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다"고 말했다.

뮐러의 최신작 '숨그네'는 우크라이나 강제노동 수용소에서 5년을 보낸 시인 오스카 파스티오르(1927~2006)의 체험을 바탕으로 했다. 그는 그동안 루마니아 독재 정권의 인간성 말살과 정치적 망명자의 불우한 삶을 형상화했다.

뮐러는 "문학에 의무란 없다. 문학은 어떤 면에서 사학(史學)적인 기록을 보충하고 문학으로 표현될 수 없는 것들은 사학자들이 보완해준다"며 "내 글은 역사의 철저한 기록이 아니라 '보완의 의미'를 갖는다"고 말했다.

'숨그네' 출간 전 몇 년간 공백기를 지닌 그는 "나는 글을 쓰지 않을 때도 기꺼운 마음으로 산다"며 "사실 글을 쓰지 않을 때 기분상태는 더 좋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수많은 작품을 발표했고 노벨문학상 외에도 아스펙테문학상, 로즈비타 문학상 등 독일의 주요 문학상을 휩쓸었다.

"차우셰스쿠 정권하에서 하루하루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겪었고 그 때문에 내가 얼마나 살고 싶어하는지를 알게 됐어요. 사실 책 한 권 끝낼 때마다 다시는 글을 쓰고 싶지 않기도 하지만 그만 쓴다고 하면서도 돌아보면 어느새 또 글을 쓰고 있죠."

뮐러는 글쓰기를 시작한 데 대해 "운명이란 너무 거창한 말"이라며 "그보다는 우연이었다"고 말했다.

"책은 내게 일종의 발견이었어요. 나는 처음부터 책이 사람을 도울 수 있다는 걸 알았죠. 책을 통해 사람은 실제 생활에서 머리와 발로 경험할 수 없는 것들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는 루마니아 차우셰스쿠 독재정권에 반대하는 작품을 썼으며 1982년 루마니아 정부가 금서 조치한 '저지대'로 문단에 데뷔했다. 루마니아 비밀경찰의 감시와 압박을 받던 그는 1987년 독일로 망명했다.

독일에서의 삶에 대해 그는 "글을 계속 썼다. 수색도 당하지 않고 내가 없을 때 내 집에 들어오는 사람이 없다는 것은 큰 안도감이었다"며 "보통 사람들에게는 당연한 일이겠지만 나는 그 때문에 드는 힘과 수고를 크게 덜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런 경험 탓에 뮐러가 느끼는 북한의 부정적 이미지는 남다를 수밖에 없다.

그는 "북한에 비하면 루마니아는 역사의 작은 오점에 불과하다는 생각조차 든다"라며 "북한은 역사와 문명에서 하차했다"고 강력 비판했다.

이어 "그 공포와 가난의 규모와 양태를 상상할 수도 없을 것 같다"며 "어쩌면 북한은 거대한 강제수용소나 다름없지 않을까"라고 덧붙였다.

'숨그네'는 그의 데뷔작인 '저지대'와 함께 문학동네의 세계문학전집 시리즈로 번역됐다. 뮐러와 함께 이번 인터뷰에 참여한 박경희씨가 두 작품을 번역했다.

miholee@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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