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이재호 기자) 남유럽에서 시작된 재정위기의 여파가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위기 발생 초기에 한목소리를 내는 듯 했던 유럽 각국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균열 조짐을 보이고 있다.
국내 전문가들은 남유럽발 위기가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고 세계 경제에 '더블딥(경기 상승 후 재하강)'을 가져올 가능성에 대해 엇갈린 의견을 내놨다.
반면 유로화 약세가 한동안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동의했다. 국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일 것이라는 분석에도 공감했다.
◆ "더블딥 가능성 낮다" VS "위기 확산될 것"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그리스에서 시작된 재정위기가 유럽을 넘어 전 세계로 확대되지는 않을 것"이라며 "그리스가 유럽연합(EU)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기 때문에 현재 금융시장이 요동치는 것은 심리적인 영향이 크다"고 진단했다.
강 교수는 "위기가 스페인과 포르투갈, 이탈리아 등으로 확산될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되고 있지만 같은 경제권인 유로존 국가들이 팔짱을 끼고 있지는 않을 것"이라며 "통합 경제 체제인 점을 감안하면 적절한 조치가 취해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김필헌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도 "이번 위기는 국가 채무 변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비롯된 사태"라며 "다만 위기를 겪고 있는 남유럽 국가들이 관광산업에서 부를 창출하고 있는 만큼 유럽 및 세계 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주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 연구위원은 "미국에서 시작된 글로벌 금융위기와 같은 파급력은 없을 것"이라며 "영국 등 서유럽 국가에 미칠 영향도 제한적"이라고 덧붙였다.
반면 김상경 한국국제금융연수원 원장은 유럽연합의 구제 방안에 대해 의구심을 나타냈다.
김 원장은 "1조 달러 규모의 구제금융 방안이 발의됐지만 약효가 언제까지 지속될 지는 의문"이라며 "최근 유럽을 방문해 현지 금융계 인사들과 대화를 나눠 보니 유로존 탄생 초기와 달리 현재는 국가 간에 불편한 관계가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을 제기했다"고 전했다.
김 원장은 "이번 위기가 서유럽과 북유럽으로 번진다면 유로존 자체가 와해될 가능성도 있다"며 "유럽 각국이 서로 다른 통화를 사용할 때는 평가절하를 통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지만 현재는 모든 국가가 하나의 통화로 묶여 있어 극복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미국발 금융위기와 달리 이번에는 국가 자체가 흔들리는 것으로 영향력이 더 클 수 있다"며 "세계 경제에 더블딥을 가져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김홍달 우리금융지주 경영연구실 상무는 유로존 결성 자체가 패착이었다고 분석했다.
김 상무는 "남유럽발 위기를 풀기 위해서는 재정 적자를 해소해야 하는데 단기간에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며 "유로존에서 자금 지원에 나서야 하지만 이마저도 삐걱대고 있어 위기가 장기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환율은 물가나 경제 상황에 따라 움직여야 하는데 유로존 내 통화가 통합되면서 환율 자동 조절 기능이 없어졌다"며 "유로화로 통합한 것이 패착이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내부의 고통을 감내하며 긴축 재정 정책을 펼쳐야 한다"며 "다만 우리가 외환위기를 겪었던 것과 달리 이번에는 재정 적자 문제이기 때문에 1~2년 안에 바로잡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 국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
전문가들은 이번 위기가 국내 금융시장 및 국가경제에 심대한 타격을 주지는 않을 것이라는 데 동의했다.
김필헌 연구위원은 "단기적으로 주가와 환율 등에 영향을 미칠 수는 있겠지만 금융시장 전체가 흔들리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상경 원장도 "우리나라의 유럽 투자 규모가 크지 않은 데다 유럽에서도 국내에서 투자금을 쉽게 빼가지는 못할 것"이라며 "국내 금융시장이 잘 버티고 있고 환율 변동성도 과거보다 완화돼 국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라고 진단했다.
김홍달 상무는 "서방 금융기관들의 투자금이 남유럽에 물려 버려 국내에 투자할 여력이 줄어든 것은 악재"라며 "최근 주가 흐름을 보면 이 같은 현상이 뚜렷하다"고 말했다.
김 상무는 "다만 유로존 국가들이 남유럽의 디폴트를 내버려두지 않을 것으로 예상돼 파국으로 치닫을 가능성은 낮다"고 강조했다.
◆ 유로화 약세 이어질 것
김 원장은 "당분간 달러화 강세, 유로화 약세 기조가 지속될 수 있다"며 "금융시장의 특성을 감안하면 한번 트렌드로 자리잡으면 쉽게 바뀌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위기가 스페인이나 포르투갈로 확산되고 최악의 경우 독일이나 프랑스가 유로존에서 탈퇴한다면 유로화 가치는 더 떨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이 유로화 약세를 바라고 있다는 의견도 있어 달러화 대비 유로화 가치가 1대 1까지는 떨어질 것"이라며 "이 때문에 유로화 대비 원화 가치가 오르겠지만 국내 수출기업이 타격을 받을 수준은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김 연구위원도 "유럽연합이 구제금융 방안을 내놨지만 유로화 하락을 막기는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
김 상무는 "남유럽 국가들이 실제로 문제를 해결하기 전에 개선 여지만 드러내도 유로화가 상승 반전할 수 있다"며 "다만 이런 단계로 진입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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