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물건은 일정한 비용을 지불하면 구매자 소유다. 그러나 거의 유일하게 예외인 것이 있다. 바로 미술품이다. 내 돈 내고 구입해도 그 그림은 100% 소비자 소유가 아니다.
화가의 작품은 판매가 되어도 그 ‘이미지에 대한 권한’은 화가에게 있다. 이미지는 저작권 보호를 받기 때문에 사후 50년까지는 화가 몫이다.
작품을 이용해 인쇄물을 만들어 배포․판매하는 것은 당연히 불법행위다. 비록 상업적 용도가 아니더라도 책자로 만들거나 인터넷 사이트에 이미지를 올리는 것도 제한된다.
이미지를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예는 작품을 판매하기 위해 한시적으로 노출시킬 때다. 옥션에서 경매에 출품된 작품을 알리기 위해 도록을 제작․배포하고, 또 작품 이미지를 인터넷 사이트에 올리는 것이 좋은 예다. 대신 경매가 완료되거나 작품이 판매되면 바로 이미지를 내려야 한다.
그렇다면 작품 자체에 대해서는 소유권이 완전 이전되는 것인가? 이미 판매된 작품은 소장자가 남에게 선물을 하든, 다시 되팔든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일까?
미술품 재판매시장인 ‘오픈아트’에는 소장자가 개인적인 이유로 소장품을 다시 되팔려고 내놓은 작품들이 많다. 주로 경제적인 이유다. 사업이 어렵거나 급전이 필요할 때 소장품중의 일부를 다시 되팔려고 내놓는 것이다. 작품이 마음에 들지 않거나 이사를 가거나 집을 줄여야 할 때도 작품이 나온다.
그런 만큼 작품가격은 시중가보다 싸다. 마음이 급한 사람 중에는 형편없는 가격에라도 빨리 팔아버리고 싶어한다. 그러다 보니, 시중가격의 절반 이하도 적잖다.
그런데 가끔 화가들로부터 항의 전화가 온다. ‘내 그림값이 얼마인데 그렇게 터무니없이 팔면 어떡하느냐’는 불만이다. ‘전시회를 준비 중인데 그 가격으로 팔아 전시를 망칠 셈이냐’고 따지기도 한다.
화가들로서는 참으로 난처하고 자존심 상하는 일로 비치는 것 같다. 시중가 200만원 짜리가 70만원에도 팔리니 어이가 없을 법도 하다. 그래서 화가더러 그 가격에 바로 매입하면 어떻겠느냐고 물어봤다. 그랬더니 작품 하나를 더 팔기도 바쁜데 이미 판 작품을 어떻게 사들이느냐고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전시가 끝날 때까지라도 작품을 내려달라고 언성을 높였다.
과연 화가는 작품을 팔고 난 뒤에도 자신의 작품에 대해 이러한 관여를 하는 게 합당한가? 화가의 입장에서는 이해가 가지만, 개인사정으로 작품을 팔아야만 하는 소장자 입장에서는 얼토당토 않는 얘기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 심한 얘기로 소장가가 그림을 찢어버리던 불에 태우던 그것은 순전히 소장자 권리다. 마찬가지로 200만원에 구입한 그림을 300만원에 팔든, 30만원에 팔든 그 역시 전적으로 소비자 판단에 맡겨질 일이다. 화가는 애초 자신의 작품을 200만원에 구입해준 것만으로 감사하게 생각해야 한다. 그 작품을 귀하게 모셔두고 감상하며 오래토록 소장하면 더욱 좋은 일이기는 하지만.
오픈아트와 같은 재판매시장에 나오는 그림은 이를테면 ‘급매물’이라고 보면 된다. 그 가격은 소장자가 특별한 이유로, 그렇게 밖에 팔 수 없는 특별한 사례다. 그것을 굳이 정상적인 가격과 비교하는 것 자체가 무리다. 크게 보면 시장논리의 한 부분이기도 하다.
이런 불편한 관계는 우리네 미술시장이 화가의 작품을 팔기에만 급급했지, 이미 팔린 작품의 재판매에 대해서는 너무 무관심한데서 기인한다. 한번 구입한 작품은 제값 받고 팔기는 커녕 ‘똥값’이라도 파는 것 자체가 거의 불가능하다. 옥션에서 다뤄주는 일부 작품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그렇다.
그림을 구입한 사람은 그림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한번 그림을 사본 사람은 더 좋은 그림을 사고 싶어한다. 몇 점 사다보면 눈도 높아지고, 욕심도 더 커지고 해서 보다 양질의 비싼 작품에 현혹된다.
소장품을 어느 시점에 정리할 수 있는 길이 보편화된다면, 미술시장 또한 더 확대되고 활성화될 것이다. 재판매로 생긴 여윳돈으로 새로운 작품을 구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림도 돌고 돌아야 한다.
내 몸에서 난 자식도 결혼시키고 나면 부모마음대로 되지 않는 일인데, 하물며 제값 받고 판 그림까지 관여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다.
박상용:미술품가격정보연구소장, 오픈아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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