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찬 총리, 점심이나 한 번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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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0-07-06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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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경제 김지성 기자) “언제 식사 한 번 하시죠”. ‘국문법’상으로 함께 하자는 청유형이다. 하지만 이 말이 의례적인 ‘인사치례’에 다름 아니라는 것을 한반도 거주민들은 대체로 알고 있다. 보릿고개로 대표되는 굶주림을 오랫동안 겪었던 한반도 거주민들은 아침인사도 “식사 하셨어요”였다. 

   
김지성 <산업부 차장>
 
올해 1월 세종시에 투자하겠다고 방침을 밝힌 기업들도 세종시 수정안 추진 이야기가 처음 나왔을 때에는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정부에서 세종시 계획의 수정 추진방침을 밝힌 지난 해 9월 이후 석 달이 넘도록 이들 기업은 ‘검토중’이라는 공식적인 입장표명에서 한 걸음도 더 나가지 않았다는 것이 방증하고 있다.

아마도 그때는 정부가 “기업경영 힘드시죠”라고 인사치례 정도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정부에서 정책 한 두 번 세웠나. 우린 (나름대로) 대책만 세우면 되지”라는 심정도 한 자락 깔았을 수 있다. 이미 많은 진통 끝에 여야 합의로 통과된 세종시 원안을 수정한다는 게 쉽지 않을 것이란 기업들의 판단은 오히려 자연스러웠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심상치 않아졌다. 11월말에 이명박 대통령이 세종시 수정안 추진을 표명하고, 대선공약 파기에 대해 공식적으로 대국민 사과를 했다. 정부에서 수정안을 발표한 1월에는 이명박 대통령의 사돈이 회장으로 있는 전국경제인연합회에서 주요그룹들에게 세종시 투자결정을 강하게 설득하고 있다는 말들이 사실처럼 회자됐다.

재계 1위인 삼성그룹은 이건희 회장의 복귀와 맞물려 상당한 규모의 투자 안을 구체적으로 검토하고 있다는 소문도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정운찬 총리가 1월11일 발표한 세종시 수정안에는 삼성을 비롯해 국내 대기업 4곳과 외국기업 1곳의 투자 확정내용이 포함됐다.

삼성은 태양전지, LED, 바이오헬스케어 부문 등 5개 계열사를 입주시켜 내년부터 2015년까지 2조500억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한화는 2020년까지 에너지 분야에 1조3200억원을, 웅진은 화학과 에너지연구에 9000억원, 롯데는 식품연구와 바이오에 1000억원 투입 계획을 밝혔다.

지난달 29일 세종시 수정법안은 국회 본회의에서 부결됐다. 기업들의 의욕에 찬 투자계획도 도루묵이 됐다.

삼성, 웅진, 롯데, 한화 등 4대 투자 기업들은 세종시 수정법안의 본회의 부결 후 세종시 투자 계획을 시작부터 재검토하거나 대체부지 등 대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 이현석 대한상공회의소 상무는 “수정안의 부결로 해당기업들의 세종시 투자가 어렵게 됐다”고 말했다. 기업들의 투자계획 철회를 기정사실화 한 것이다.

세종시 총리로도 불렸던 정운찬 총리는 지난 3일 대통령에게 사의를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어 5일 세종시 대안 심의 기구로 지난해 11월16일 출범했던 세종시 민관합동위원회는 마지막 회의를 열고 해체됐다. 이날 정운찬 총리는 “우리가 제기했던 문제의식은 순수하고 용기 있는 것”이라며 세종시 수정안의 당위성을 피력했다.

때로 정치인은 떠남으로써 훗날을 기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정부의 ‘정책의지’를 믿고 세웠던 대단위 투자계획을 원점으로 돌린 기업들은, 결국 ‘자체적으로 대책’을 마련할 수밖에 없게 됐다.

아마도 투자 계획을 밝혔던 기업들의 수장은 떠날 준비를 하고 있는 정 총리에게 이런 말을 하고 싶을 지도 모르겠다. “정 총리, 언제 점심식사나 한 번 합시다”.

lazyhand@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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