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김신회 기자) 만성적인 재정적자와 디플레이션으로 고전하고 있는 일본이지만 국제 외환시장에서 엔화에 대한 투자 열기는 잦아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엔화는 올 들어 달러화에 대해 5% 가까이 올랐다. 엔·달러 환율은 지난주 86.94엔을 기록, 연중 최저치를 달성했다. 유로와 파운드화에 대해서는 각각 20%, 12% 치솟았다. 실효환율로 따지면 엔화는 최근 14년래 최고치 언저리를 맴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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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기준 단기 공공부채 규모(위·1000억달러)/엔화 실효환율 추이) <출처:FT> |
엔화 가치가 뛴 데는 중국의 기록적인 일본 국채 매입세도 한몫했다. 중국은 올 들어 지난 4월까지 58억달러 어치의 일본 국채를 사들인 데 이어 5월에는 그보다 많은 83억달러 어치를 매입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13일 일본 경제가 재정적자와 디플레이션이라는 악재를 떠안고 있는 상황에서 엔화가 강세를 유지하고 있는 데 대해 "놀랍다"고 했다. 유럽이 재정위기에 휩싸이면서 유로화 가치가 급락한 데 반해 엔화는 전혀 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본의 공공부채 규모는 전체 경제 규모의 두 배에 달한다. 재정적자 규모도 국내총생산(GDP)의 10% 수준으로 재정위기를 겪고 있는 유로존(유로화를 쓰는 16개국) 국가들과 비교해도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그렇다면 올 들어 유로화가 급락하는 사이 엔화가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비결은 뭘까.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투자자들의 위험회피 심리에서 이유를 찾고 있다. 사이토 유지 크레디트아그리콜 외환부문 이사는 "엔화가 강세를 띠고 있는 것은 위험회피 심리 탓"이라며 "달러화 수준의 유동성을 가진 통화 중 믿을 것은 엔화밖에 없다"고 했다.
일본이 기준금리를 0.1%로 묶어 두고 있는 탓에 고수익을 기대할 수는 없지만 유럽의 재정위기나 경제 지표 악화로 인한 더블딥 우려로 미 국채 금리가 떨어지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외환시장에서 그나마 믿을 수 있는 게 엔화뿐이라는 설명이다.
FT는 금융위기를 맞아 전 세계적으로 확산된 저금리 기조도 엔화의 가치 상승을 부추겼다고 지적했다. 자금 조달 비용이 준 만큼 투자자들이 환헤지 부담을 덜게 돼 엔화 매도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일본 정부가 떠안고 있는 부채의 95%가 국내에 묶여 있다는 사실도 주목할 점이다. 활발한 기업 활동에 따른 경상흑자와 가계저축 덕분에 국채를 대거 매도하는 자금 이탈 위험이 상대적으로 적다는 것이다.
FT는 끝으로 일본 경제가 유럽이나 미국 경제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건실하다고 했다. 글렌 머과이어 소시에테제네랄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중국을 중심으로 늘고 있는 아시아지역의 수요와 자본지출에 대한 기대감이 엔화가 강세 행진할 수 있는 배경이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각국 중앙은행이 외환보유고를 다변화하는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엔화를 사들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중앙은행들은 미국 달러화의 대체 통화로 원자재와 연동된 캐나다달러나 호주달러화에 관심을 기울였지만 유동성이 제한돼 엔화로 눈을 돌리게 됐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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