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누 재료 택한 건, 내가 이방인이었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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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0-07-28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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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누를 재료로 작품을 만드는 조각가 신미경은 비누야말로 가장 '언모뉴멘탈'한 재료라고 설명한다.

(아주경제 이미호 기자) 화가에게 아틀리에는 어떤 곳일까. 남들처럼 밥 먹고 잠자고 사랑하는 일상(日常)의 공간이자 사색하며 꿈을 꾸는 이상(理想)의 공간. 복잡한 현실을 떠나 영혼을 치유받는 장소. 하지만 때론 한계에 부딪혀 좌절하며 한없이 침전(沈澱)하는 곳. 그래서 다시 비상(飛上)도 꿈꿔 볼 수 있는 곳. 여류 화가에겐 침실보다도 더 보여주고 싶지 않은 비밀스러운 공간, 아틀리에를 찾았다.

[화가의 아틀리에②] 조각가 신미경

"비누는 실체이자 허상인, 존재하면서도 부재하는, 유령이나 그림자 같은 재료에요. 조각은 영원무궁하지만 비누는 사라져버릴수도 있다는 개연성을 포함하고 있죠. 그런점에서 '언모뉴멘탈(기념비적이지 않은)'에 가까운 것 같아요."

다음달 25일, 2년만에 재개하는 삼성미술관 리움의 기획전 '언모뉴멘탈(가칭)'에 참여하는 조각가 신미경은 비누를 이렇게 설명했다.

아틀리에 곳곳마다 차지하고 있는 커다란 그리스 시대 조각들과 인물상, 형형색색의 도자기와 불상들은 모두 비누로 만들어졌다.

그는 최근 가장 바쁜 행보를 걷고 있다. 올해 들어서만 참여한 전시회는 총 6개. 올해말까지 약 10개의 전시회가 잡혀있다. 

지난 25일에는 영국 사치갤러리에서 열린 '코리안아이(Korean Eye, 한국 신진미술작가들을 세계에 알리는 프로젝트)'를 마쳤다.

이후 현재 런던 시내에서 그룹전을 열고 있으며, 지난 5월 덕수궁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달은 오래된 시계다'展에 출품한 작품들도 불가리아 소피아를 거쳐 체코 프라하로 갈 예정이다.

청자와 달항아리 시리즈로 대영박물관에서 수차례 전시했으며, 청자 작품은 현재 미국 남서부 텍사스 주 휴스턴 박물관에 소장돼있다.

이번 리움 기획전에는 화장실 프로젝트 6점과 30여 점의 도자기 시리즈를 출품한다.

"그리스 조각과 도자기 등 박물관 유물들이 추구하는 가치를 다른 측면에서 접근하고 싶었어요. 특히 '화장실 프로젝트'는 우연의 요소를 반영하죠. 6개의 같은 비누 조각상을 각기 다른 장소에 보내면 시간이 흐르고 역사성이 쌓이면서 유일무이한 가치를 지니게 됩니다. 작품을 어떤 상황 속에 던져놓고 나중에 거둬들이면, 그 결과물은 스스로 자신의 정체성을 찾게되는 거죠."

그가 이처럼 비누에 의미를 부여하게 된 것은 처음으로 영국 유학을 떠나면서부터다.

29살 때까지 국내에서만 조각 공부를 하다가, 영국으로 건너가 미술사책에서만 접했던 조각들을 실제로 보게 된 것. 

"괴리감이 컸죠. 그동안 배웠던 것과 실질적인 것의 차이점, 동양과 서양, 그 간극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에 주목했어요. 서양만을 동경하면서 한 방향만을 쫓아간게 과연 옳은 건지에 대해서도 의심하기 시작했죠. 그래서 무엇을 이야기하는 게 나에게 가장 솔직한 건지 고민했어요. 그러다가 결심했죠. 차라리 모호한 이야기를 하자. 그 모호함이 당시 저의 정체성과도 같았어요. 비누라는 재료를 택하된 것은 결국 기념비적인 유물들을 이방인의 눈으로 바라봤기 때문이었어요."

   
 
아틀리에에서 작품 설명을 하는 신미경 작가.
서양조각을 그대로 카피(Copy)하는 상황을 비판적으로 해석하고 싶었다는 신 작가는 외형은 같은데 본질은 다른 것을 만들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돌을 비누로 해석해내고 싶었어요. 전통적으로 서양과 동양을 넘나드는 도자기 작업은 유리시리즈로 발전했죠. 현재는 도자기의 모양을 따왔지만 형태만 남아있고 의도한 색깔로 단순화 시키는 '고스트 시리즈'에 열중하고 있습니다."

한편 그는 아틀리에를 사색의 공간으로 해석하는 것은 너무 고답적인 발상이라며, 그저 일하는 작업실이라고 설명했다. 아틀리에는 가장 실용적이어야 한다는 것. 그는 현재 런던에만 작업실 2개를 갖고 있다.

"특히 제 작업실은 비누 재료와 조각작품을 보관해야 하기 때문에 실용성이 높아야 해요. 산업단지 쪽에 있는 이유도 화물엘레베이터도 있고 차로 옮기기도 쉽기 때문이죠."

한편 신 작가는 2012년 영국 런던올림픽이 열리기 전에 런던 시내에 공공미술 작품을 설치할 계획도 갖고 있다. 옥스포드서클 근처의 광장에 1900년대 사라진 기마상을 비누로 조각해 설치하는 프로젝트다. 

"영국 큐레이터 한 분이 제안했죠. 원형의 모습을 전혀 알 수 없지만, 가장 전형적인 의미의 기마상을 '비누'로 제작할겁니다. 런던 시내 한복판에서 거대한 비누를 보실 수 있을거에요(웃음)."

miholee@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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