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희스타힐스

[과천인사이드] 실세次官과 고용長官

기자정보, 기사등록일
입력 2010-12-23 16:25
    도구모음
  • 글자크기 설정
  
<김선환 차장/정치경제부>
 
과천관가에 '몸 낮추기' 바람이 불고 있는 듯하다. 인사철도 지난 시절이라 뜬금없는 이야기처럼 들릴지 모르나 실상은 이렇다.

이른바 '왕차관'으로 불려온 박영준 국무총리실 국무차장이 최근 지식경제부 차관으로 발탁된 뒤 취임식 자리에서 한껏 몸을 낮췄다.

우리 경제를 이 만큼이나 이끈 데는 관료들의 헌신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라며 공무원들의 노고를 추켜 세웠다. 자신을 향한 항간의 곱지 않은 시선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그가 자신을 의도적으로 낮추고 관료들을 높여 준 것이다.

"공무원들에게는 영혼이 없다"는 어느 높은 분의 말에 격분했을 관료들도 일단은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모습이다. '오는 말이 고와야 가는 말이 곱다'는 옛말에 토를 달 사람은 없을테니 말이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박 차관의 겸양섞인 언사를 고지곧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얘기들이 적잖이 오가는  모양이다.

그를 공석에서 접했던 한 경제부처 국장급 간부는 "보고자를 하도 닥달하는 통에 옆에 있던 자신이 민망할 정도였다"고 박 차관에 대한 기억을 떠올렸다.

물론 타성에 젖어 변화를 거부해 온 관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면전에서 꾸짖음을 듣게 되는 당사자는 실세 차관의 불호령은 말그대로 '죽을 맛'일 게다.

늘상 그래 왔듯이 집권 후반기로 접어들면 항상 나오는 얘기가 공무원들의 '복지부동'이다. 반환점을 돈 게 아니라 아직 가야 할 길이 절반이나 더 남았다고 항변하겠지만 채찍질을 가하면 가할수록 움츠러드는 게 관료들의 습성이다.

그러지 않아도 실세차관의 입성으로 잔뜩 긴장하고 있는 마당에 허구헌날 불려가 혼쭐이 날 일을 생각하면 아예 가만히 앉아 세월이 흐르기만을 기다리는 게 더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요즘 경제부처의 수장격인 기획재정부는 날마다 새로운 대책을 내놓느라 눈코뜰 새 없이 바쁘다. 지난 주말에 나온 '8·29 부동산 활성화 방안' 조율이 끝나자 이번에는 비상경제대책회의 안건에 올릴 대·중소기업 상생방안'을 만드느라 밤잠을 설친다.

국제사회의 포괄적 이란 제재법 시행으로 대이란 수출업체의 피해 최소화도 여간 신경쓰이는 게 아니다.
추석을 앞두고 들썩이는 물가를 잠재워야 하는 일과눈앞에 닥친 과제다. 따라서 '구조적 물가안정방안' 마련에도 열을 올리고 있다.

이런 와중에 김태호 국무총리 내정자의 낙마까지 겹쳐 경제부처 수장의 골칫거리가 하나 더 늘었다. 총리 직무대행 기간이 길어지면서 더 늘어난 업무에도 신경을 써야 할 판이다. 물론 숙제를 풀어야 하는 사람들은 소속 부서 직원들의 몫이다.

정작 재정부가 하고 싶은 '영리의료법인(투자개방형 의료법인)' 도입은 권력의 또 다른 실세 장관인 진수희 보건복지부 장관의 취임으로 갈길이 험난해 졌다. 현 정부에 지분이 없는 '고용장관'에게 남겨진  해결난방 과제들이 산더미다.

이 때문인지 지난달 30일 진동수 금융위원장 모친 상가에 조문온 경제수장의 이마에는 주름살이 하나 더 늘어 보였다.

며칠 전 눈물 속에 부하직원을 하늘나라로 떠나보내야 했던 그가 일에 파묻혀 주변을 살피지 못했던 회한에 잠겨 있는 듯 했다.  

명예를 금과옥조로 여기고 있는 관료들에게 금전적인 보상은 애시당초 어려웠을 망정 꺾인 명예와 기를 되살리는 권력의 지혜가 필요한 때다.

shkim@ajnews.co.kr
[아주경제 ajnews.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실시간 인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