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이정화 기자) "백조 알죠? 겉으로 보기엔 우아하게 물 위에 떠있지만 물밑에서는 발 구르고 있는 백조. 요즘 대기업들이 그렇습니다. 상생방안 마련하느라 줄회의에요"
한 대기업 임원이 최근 정부의 상생 강화 요구와 관련해 속내를 드러냈다. 최근 이명박 대통령이 상생협력을 채근하면서 대기업들은 정부의 요구 수위를 맞추기 위해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이 대통령은 대기업들을 직접 질책하며 강하게 상생협력을 주문하고 있다. 이달 들어서는 중소기업 대표들을 청와대로 불러 고충을 들었고, 이후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을 비롯한 대기업 총수들을 불러 상생에 대한 인식을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의 논리는 옳다. 제도와 규정만으로는 상생을 이룰 수 없고 근본적인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 총수들도 이에 수긍했다.
하지만 대기업들의 인식 변화가 대통령의 주문 한번에 쉽사리 바뀔 수 없기에 이번 회동은 단순한 친서민 정책 생색내기가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실제로 대기업들은 이번 상생협력에 대해 불쾌한 심정을 드러내고 있다. 최근 전경련 정병철 상임부회장은 "납품단가 연동제는 불가능하며, 가격이 맞지 않으면 해외로 (거래선을) 옮기는 수밖에 없다"며 거세지는 상생요구에 대해 속내를 보였다.
대기업 임원들 역시 그간 해외 선진업체들과 치열한 경쟁을 통해 정상에 섰는데 그 성과가 평가절하되고 있다며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중소기업들도 가격경쟁력을 키우고 기술을 개발해야 하는데 대기업들의 상생에만 의존하려 한다는 비판의 소리도 나오고 있다.
이같은 인식을 감안하면 상생요구가 어느 정도 수면 아래로 사라질 경우 대기업의 상생 움직임도 흐지부지될 가능성이 있다.
때문에 중소기업들은 최소한의 법과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고 있다. 정부가 대기업들이 내놓은 상생 방안들이 실현가능성이 있는지를 검토하고, 이 방안들이 단기적 처방에 그치지 않도록 기초적인 환경을 만들어 줘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는 '인식의 변화'라는 모호한 기준만을 제시하며, 대기업들이 추가적인 상생방안을 내놓을 것을 압박하고 있다. 때문에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는데 전력을 다해야 할 기업들이 유독 상생에 매달리는 기현상이 한 달 넘게 지속되고 있다.
차라리 정부가 최소한의 법과 제도를 마련해 기업들에게 상생 관련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기업인들은 경영에 충실할 수 있도록 하는게 현실적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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