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을 받은 소설가 최제훈(37) 씨의 첫 소설집 '퀴르발 남작의 성'(문학과지성사)에 등장하는 범상치 않은 캐릭터들이다.
책에는 시공간을 넘나들며 퍼즐처럼 엮인 독특한 이야기 여덟 편이 실렸다. 소재나 배경의 경계를 완전히 무너뜨린 낯선 이야기들이지만, 각 작품들은 작가의 기발한 상상력으로 어우러지며 묘한 조화를 이룬다.
표제작에서는 1993년 서울, 1932년 미국 뉴욕, 2004년 일본 도쿄, 1697년 프랑스 크뢸리까지 각기 다른 시간대의 6월9일에 있었던 12개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이들은 퀴르발 남작이라는 인물과 그에 대한 소문이 사람들의 필요에 따라 어떻게 다르게 해석되며 전해지는지 보여준다.
'셜록 홈즈의 숨겨진 사건'은 홈즈가 추리 소설가 코넌 도일의 의문의 죽음을 파헤치는 과정을 그린다. 작가가 만들어낸 인물이 작가의 죽음을 추적한다는 설정만으로도 흥미로운 이 작품에서, 홈즈는 코넌 도일의 죽음 앞에서 탐정 인생 최대의 난관에 처한다.
"왓슨, 그간 우리는 인간의 복잡성에 대한 많은 사례를 접해왔지만 이 사건은 그중에서도 매우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할 걸세. 작가가 자신이 창조한 인물에 대한 열등감으로 그를 죽이고, 다시 부활한 그가 복수를 하듯 작가를 실제 죽음으로 내몬다. 생각하면 참으로 무익하고 서글픈 순환이 아닐 수 없구먼."(74쪽)
그런가 하면 이혼한 드라마 촬영 감독 성민이 우연히 만난 대학 여자후배 수연과 데이트를 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마리아, 그런데 말이야', 광고디자이너 차화연이 오래된 친구 성호에 대한 사랑을 깨닫고 그가 연인과 헤어지도록 음모를 꾸미면서 겪는 사건에 대한 '그녀의 매듭' 등 지금 시대를 배경으로 한 작품들도 있다. 그러나 이들 역시 전통적인 서사를 뒤엎고 현실인 듯, 환상인 듯 오묘하다.
작가는 "첫 소설집이다 보니 자유롭게 쓰고 싶은 이야기들을 풀어냈다"며 "그런데 묶어놓고 보니 환상과 현실, 시대 등의 경계를 교란하는 이야기들인 것 같다"고 말했다.
304쪽. 1만1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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