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나사, 그 거짓의 역사'라는 책에는 '고대 이집트 신앙의 콘텐츠가 기독교 교리의 원조'라는 주장이 등장한다.
대다수 사회과학자나 철학자들은 물론이고 많은 현대 신학자들은 '종교나 신앙은 통치 수단으로서 이데올로기에 불과하다'라고 단언한다. 특히 기독교의 유일신 사상과 교회 시스템을 권력자의 애장품이라고 못 박는 학자들도 많다.
게다가 기독교인들이 오류 없는 객관적 사실이라 믿어마지 않는 성서 속 이야기들이 대개 고대 중근동 지방의 옛 구전들이 기독교식으로 개작된 것이다라는 주장도 있다. 에덴 동산, 노아의 방주, 예수 탄생과 부활 이야기 등 대부분이 그렇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우주에 중력의 법칙이 있을 뿐 '신'은 없고 '신'이라는 '관념'이 존재할 뿐이며 이 관념은 권력자와 결탁해서 영구 지배의 수단이 된다는 스토리다.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의 저자 버트란트 러셀 뿐 아니라'무신론자'를 자처하는 거의 모든 지식인들이 이런 신념을 품고 있을 것이다. 이들에게 신은 상상이며 종교는 정신적 권력, 교리는 작위적인 스토리텔링이며 신앙은 대중들의 엔터테인먼트다.
상상이며 정신적 권력이며 스토리텔링이자 엔터테인먼트라고 폄하되기도 하는 '신'과 '신앙'은 때로 인간을 위대하게 만드는 강력한 동기가 된다. 지진으로 주저앉아 버린 지하 700m 갱도에 갇혀 있다가 69일만에 생환한 칠레 산호세 광산 광부들이 산증인들이다.
처음 17일 동안은 깜깜한 지하에서 불귀의 객이 됐을거라 짐작되던 그들이었다. 공기도 물도 음식도 생존의 가능성도 거의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살아 있었고 그것도 아주 낙관적이며 조직적이며 협동적인 공동체로 삶의 희망을 간직한 채 웃고 있었다. 어슴프레 흑백의 폐쇄회로(CC) TV 화면에 비친 수염 덥수룩하고 깡마른 몸뚱아리는 세계인들에게 진짜 아름다운 인간의 외모가 어떤 건지 말해주는 듯 했다.
특히 그들의 천진난만한 미소는 백만불짜리였다. 아름답다 못해 위대함마저 느끼게 만든 건 그들의 생활태도였다. 그들은 서로를 배려하며 똘똘 뭉쳐 있었고 흥겨운 노래를 흥얼거리며 기운을 복돋웠다. 카메라를 만난 순간 '이제, 살겠구나' 안도하는 기색도 잠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애국가를 열창했으며 '신이 도우셨다'며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
정신적 지도자 격이었던 62세의 마리오 고메스씨는 동료들이 신에게 의지하여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예배당을 만들어 놓았다고 한다. 예배 덕분인지 극단적인 절망에 빠진 동료들은 상황을 저주하며 서로를 원망하지 않고 신에게 기도하며 삶과 죽음을 초월한 모습을 보였다. 심지어 구조 캡슐이 도착하자 서로 먼저 나가라며 양보하고 배려했다.
무엇이 이들을 이렇게 만들었을까? 인간의 DNA에 원래 속해 있는 유전적 본성일까? 학습과 사회화 과정에서 터득한 습관일까? 아니면 신심의 작용일까?
전 세계가 감동하는 마당에 신의 존재 여부로 왈가왈부 논쟁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인간을 위대하게 만드는 동기는 단칼에 설명되는 게 아닐 거라는 말은 하고 싶다. 그 중에는 신에 대한 존재론적 믿음도 크게 한 몫 할 것임이 틀림없다.
생환한 칠레 영웅들에게 물어보라. "제 능력이 아니에요. 우리도 최선을 다했지만 신이 도우셨죠. 그게 다에요." 이렇게 대답하지 않을까? 지난 69일 동안 칠레 산호세 광산에 신은 살아 계셨다. 분명하다.
<트렌드아카데미 대표>
[아주경제 ajnews.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