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독자들은 다 말랑말랑한 이야기를 좋아하는 여성이라고 하지만, 저는 피땀이 철철 나면서도 인생의 깊은 문제를 다루는 작품으로 우겨보고 싶습니다."
소설가 김탁환(42) 씨가 새 장편 '밀림무정'(전2권ㆍ다산책방)을 펴냈다. 무협물 같은 느낌의 제목을 붙인 이 소설은 그야말로 야성이 뚝뚝 흐르는 남성적 작품이다.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교수직을 던지고 오로지 작가의 길에만 매달려 쓴 첫 장편에서 김씨는 1940년대를 무대로 한 인간과 호랑이의 필생의 대결을 그렸다.
극한까지 치닫는 그들의 승부를 담고자 작가는 구상부터 퇴고까지 18개월 동안 '끝까지 쏟아부으며' 숨 막히는 모험담을 완성했다.
출간에 맞춰 9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이 소설은 끝까지 가보고 싶다고 생각한 작품"이라며 "지금까지는 16세기 여성을 화자로 한 '나, 황진이'를 제일 힘들었던 작품으로 꼽았는데 이번에 더 힘들었다"고 말했다.
"5년 전에 이 소설을 생각했는데 호랑이의 시선으로 바람 소리, 냄새와 같은 자연을 그려낼 자신이 없었어요. 이번에 그런 기운을 표현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밀어붙였고, 다른 어떤 작품보다 몰입도가 높았습니다."
작품에서는 조선 최고의 포수 '산'과 개마고원 일대를 지배하는 백호 '흰머리'의 7년에 걸친, 고독하고도 처절한, 지독할 만큼 광기 어린 대결이 펼쳐진다.
백호에게 아비와 동생을 잃은 산은 아비의 유품인 총 '밀림무정'을 들고 단 하나의 적 백호를 찾아 설원을 누빈다. 제 암컷과 새끼를 산에게 잃은 백호에게도 산은 쓰러뜨려야 하는 적이다. 작가는 이들의 승부에서 이 시대 가장의 모습을 본다.
"소설을 쓰고 나서 넘어설 수 없는 적을 상정하고, 넘어서려고 노력하는 게 지금 이 시대 가장의 모습은 아닐까 생각을 해봤습니다. 이 소설은 가장이라는 같은 역할을 가진 한 인간과 짐승이 충돌할 때 벌어지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이들이 백두산 정상에서 만나기까지의 긴박한 추격전과 함께 조선의 맹수들을 제거하려는 일제의 해수격멸대, 산과 사랑에 빠지는 생물학자 주홍 등이 어우러져 한 편의 영화처럼 생생한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밀림에서 전개되던 산과 백호의 대결은 경성으로 무대를 옮겨서까지 계속된다.
작가는 "이번 작품처럼 박진감 있는 문체의 강력한 이야기가 내 소설의 본령"이라며 "40대에 이런 소설을 세 편 쓰고 싶고, 그 중 이게 첫 편"이라고 덧붙였다.
"요즘에는 적과 싸우기 전에 자기 자신을 위로하고 그런 상황을 피해가는 책들이 많아요.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이 어떤 적과 싸워야 하고 어떤 어려움을 이겨야 하는지 생각하면서, 틀을 벗어나 진정 자기가 원하는 것을 추구했으면 좋겠습니다."
이번 소설의 강력한 힘 중 하나는 철저한 자료 조사와 함께 직접 러시아까지 오가며 호랑이의 습성과 서식지를 파악한 작가의 치밀한 답사와 이를 바탕으로 한 세밀한 묘사에 있다.
작가는 "호랑이가 지나간 지역을 따라가며 답사하고 맹수들의 생태에 대해 철저한 감수를 받았다"며 "교수를 그만두고 18개월 동안 오로지 작가로서 24시간을 온전히 가지고 원 없이 썼고, 앞으로도 계속 원 없이 쓸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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