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3대 발레단으로 꼽히는 영국 로열발레단에서 주역으로 활약하고 있는 발레리나 최유희(26)는 국립발레단의 '백조의 호수' 공연에 참여하기 위해 29일 방한, 30일 연합뉴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이런 바람을 전했다.
일본 후쿠오카에서 태어나 한국에서는 한 번도 살아본 적이 없지만, 그는 한국 국적을 지닌 재일교포 4세다. 어렸을 때 한국어를 배웠지만 10여년간 유럽 생활을 하면서 쓰지 않다보니 거의 다 잊어버렸다고 한다. 이날 인터뷰에서 그는 가장 편한 언어라면서 영어로 얘기했지만 한국말을 거의 알아들었다.
"다섯 살 때 동네 발레학원에 갔다가 연습하는 모습을 보고 반했습니다. 그때부터 발레에 모든 것을 걸고 살아왔어요."
그는 일본에서 중학교를 마치고 프랑스 파리오페라발레단에 들어가겠다는 꿈 하나로 파리로 떠나 일본인이 운영하는 파리의 한 사설 학원에서 발레를 배웠다.
그러던 중 2000년 프랑스 파리 콩쿠르에서 은상을, 2002년 스위스 로잔콩쿠르에서 1위로 입상하며 국제 무용계에서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다. 이후 로잔콩쿠르 입상자에게 주는 기회로 영국 로열발레단에서 1년간의 연습생 기간을 거쳤고 2003년 '아티스트' 등급으로 정식 입단했다.
그가 세계적인 발레콩쿠르인 로잔콩쿠르에서 1위를 차지했을 때 재일교포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일본은 물론 국내에서도 큰 관심을 받았고 2008년 '퍼스트 솔리스트'로 승급했을 때는 국내 발레 팬들이 더 흥분했다. 퍼스트 솔리스트는 로열발레단의 5개 등급 중 최고 등급인 '프린시펄' 바로 아래 등급으로 이 발레단에서 10명에 불과하다.
세계적인 발레단에 동양인으로서 입단하는 것 자체도 힘든데다 100여명에 달하는 쟁쟁한 무용수들 사이에서 퍼스트 솔리스트로 승급하기란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최유희에게도 그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다고 했다.
"연습생 기간이 끝나고 나서 발레단 감독님에게 정식으로 계약할 수 있는지 물어봤더니 처음엔 안 된다고 했어요. 몇 번이나 얘기했지만 거절당해서 정말 힘들었어요. 그때가 인생에서 가장 힘든 때였던 것 같아요. 다행히 감독님이 생각을 바꿔서 입단을 허락해줬는데, 아무래도 유색 인종을 고용하는 데 한계가 있는 것이겠죠. 하지만 입단 이후에는 잘 적응했고 이제는 저를 지지해주는 사람들이 많아 편안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치열한 경쟁 속에서 그는 최고가 되겠다는 꿈을 이루기 위해 갑절의 노력을 하고 있다.
"연습 시간을 세어 보지 않아서 몇 시간이라고 말할 수는 없어요. 항상 무대 위에서 최고의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생각으로 살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늘 다른 무용수들보다 연습을 더 많이 하게 되더군요."
지난해 초 '라 바야데르'의 니키아 역으로 로열발레단에서 주역으로 데뷔한 뒤 그는 '호두까기 인형' '고집쟁이 딸' '신데렐라' 등 주요 작품에서 잇따라 주역을 따냈다. 그는 특히 음악과 조화를 이루는 섬세한 연기로 유럽 무대에서 호평받고 있다.
한국에 오기 전날까지도 런던에서 '신데렐라'의 주역을 연기했고 오는 12월 10일 국립발레단의 공연을 끝내고서도 다시 런던으로 돌아가 '신데렐라' 공연 일정을 소화해야 한다고 했다.
이렇게 바쁜 와중에 굳이 한국에서 공연하게 된 이유를 물었다.
"한국은 제 뿌리가 있는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피할 수 없는 사실이지요. 그래서 이번에 국립발레단이 '백조의 호수' 주역으로 초청했을 때 정말 기뻤어요. 오데트ㆍ오딜 역은 발레리나라면 누구나 꿈꾸는 역이고 저 역시 마찬가지거든요. 한국 무대라서 더 특별하기도 하고요."
그는 오데트ㆍ오딜 역을 연기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으로 '스텝(발동작)'을 꼽았다.
"스텝은 모든 의미를 갖고 있어요. 미묘한 움직임의 차이로 의미가 달라지는데, 무용수가 그것을 잘 전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의 한국 방문은 이번이 3번째지만, 주역으로 국내 무대에 서는 것이 이번이 처음이다. 2003년에 개인적으로 친척들을 만나기 위해 처음 왔고 2005년 영국 로열발레단의 내한공연에서 군무로 참여했었다.
한국 무용수 중에는 독일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에서 활동하고 있는 강수진과 네덜란드 국립발레단에서 활동했던 김지영(현 국립발레단 주역무용수)을 알고 있다고 했다.
먼 훗날 한국에서 활동할 생각이 있느냐는 질문에 그는 "한국에 올 수도 있겠지만 미래는 아무도 모르는 거라 뭐라 얘기하기 어렵다"며 "지금은 그저 현재를 즐기며 살고 싶다"고 했다.
최유희는 한국 관객들과의 만남을 앞두고 무척 설렌다고 했다.
"저는 무용수이기 이전에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관객들이 제 공연을 보고 그냥 괜찮은 공연이었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마음이 따뜻해지는 느낌을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감동을 주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가 주역을 맡는 '백조의 호수'는 오는 12월 8일과 10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된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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