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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년의 역사’ 창덕궁 신선원전’, 베일을 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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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0-12-08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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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경제 윤용환 기자)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는 ‘동산문화재 지정학술조사’ 사업의 일환으로 2009년부터 2년 동안 조사한 창덕궁 신선원전(新璿源殿) 결과를 ‘최후의 진전 ­ 창덕궁 신선원전’으로 발간했다.

1921년에 세워진 신선원전은 역대 진전(眞殿) 중 최후에 건립된 어진(御眞) 봉안처로, 조선왕조 어진봉안과 제례의식 전통을 마지막까지 계승한 역사적 의미를 지닌 곳이다. 본래 조선 태조에서 순종에 이르는 총 12국왕의 어진 48본이 봉안돼 있었으나, 한국전쟁 동안 대부분 소실됐다.

이번 조사를 통해 그 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신선원전의 여러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어진을 걸어 두었던 12개 감실(龕室)은 1900년대 의궤도설(儀軌圖說)과 일치해 왕실의 전통적인 법식을 충실하게 계승됐음을 보여준다.

반면 현존 유물은 대한제국 이후 변화된 시대상을 뚜렷하게 간직하고 있다.

감실을 비롯한 당가(唐家), 용상(龍床), 각답(脚踏) 등 가구와 시설물은 주칠(朱漆)이 아닌 황색(黃色)으로 개칠됐다. 가구들도 건립 당시의 것이 아니라 영희전, 구선원전, 의효전 등의 전각에서 옮겨온 사실을 확인했다.

또한, 감실 뒤편에 배치돼 육안으로 확인이 어려웠던 모란병(牧丹屛)을 비롯해 감실 내 오봉병(五峯屛), 매화병(梅花屛), 어진교의(御眞交椅) 등 회화와 공예품을 통해 새로운 화학안료의 사용과 19세기 도상의 적용 등 신․구 전통이 공존한 19~20세기 초 궁중미술의 경향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번 도록에는 그간 외부에 공개되지 않은 신선원전의 내부 및 의효전, 괘궁정, 몽답정 등 주요 부속건물의 주변 경관까지 수록했다. 아울러 미술, 건축, 제례 등 분야별로 신선원전을 조명한 연구논문, 1920년대 관련 신문자료 등도 발굴․수록해 다양한 측면에서 조선시대 진전의 전통을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신선원전의 빗장을 열고 그 모습을 본격적으로 공개한 이번 도록 발간은 조선왕실 의례공간으로서 종묘에 버금가는 신선원전의 가치를 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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