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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복남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윈원 |
베트남, 인도와 턴키 등에서 수주가 유력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일본과 프랑스 기업들에게 잇달아 패배하고 있다. 패배의 원인은 기술력보다 금융 동원 역량 탓으로 돌리고 있다. 금융 동원 역량이 주요 경쟁 요소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금융 동원 역량이 국제 경쟁 전체를 지배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중요하다. 국내 원전기술은 아직 원천기술을 확보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해외시장에서 검증받은 실증 기술도 없다. 정부도 이점을 인식했기 때문에 원전기술 개발에 막대한 재정을 투입할 계획이다. 국내 실적이 우수한 것은 사실이지만 해외 현장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이는 마치 국내에서는 한글과 국내 법제도, 고정된 생산구조와 공급체계에서 달성한 성과가 외국에서도 그대로 인정된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한국이 자랑하는 전자제품, 자동차와 조선은 국내에서 완제품을 생산하고 또 완제품을 수출한다. 즉, 제품은 수출되지만 서비스는 여전히 한국 땅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나 원전 수출은 부품과 서비스가 동시에 수출된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서비스는 수출 해당 국가와 지역, 언어와 법제도 등이 국내와는 전혀 다른 환경으로 인해 현지화되어야 생명력이 있다. 단적으로 한글이 국내에서는 완벽한 언어임에는 틀림없지만 해외에서는 아직까지 공용어로 사용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완성도 혹은 기술 역량 차이가 아닌 환경 차이로 인해 파급된 역량 준비가 안돼 있는 것이다.
국내 원전기술 개발에 투자하는 것 자체를 문제삼을 필요는 없다. 그러나 기술개발 대상을 선정하는 것을 보면 너무 큰 자만에 빠져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핵심 기자재 성능 개선과 신기술 개발 등 제품과 생산기술에는 기술개발의 가치를 인지하고 있으나 원전 건설사업을 계획하고 관리하는 발주자 역할, 즉 사업관리 역량 개선의 중요성은 간과하고 있다. 국내 원전산업 관계자 대부분이 마치 우리가 완벽하게 검증된 사업관리 역량을 갖추고 있는 것으로 자만하고 있다는 얘기다.
국내 원전사업관리 역량 수준을 자만하는 것은 마치 오케스트라에서 우수한 악기와 연주자만 있으면 세계 최고 오케스트라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자만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아무리 우수한 연주자와 악기라도 지휘자가 우수하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다. 오케스트라의 성공과 실패를 결정적으로 좌우하는 것은 개별 악기 혹은 연주자라가기보다 지휘자 역량이다. 지휘자는 악기배치에서부터 필요한 시기 등을 사전에 계획하고, 그 계획을 실행시킨다. 무대에서 연주자들은 지휘자가 요구하는 각본에 따라 음을 생산한다. 오케스트라에서의 지휘자는 원전의 경우 사업관리 역할이다.
해외원전에서 한국의 원전사업관리 역량은 실증된 경험이 없는 막연한 기대에 불과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 선진기업들에 비해 역량이 취약한 부문이 바로 사업계획 및 관리 분야라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원전산업 당사자들은 막연한 기대를 마치 확실한 것처럼 자만하고 있다. 아무리 우수한 연주자와 악기가 있어도 뛰어난 지휘자가 없이는 오케스트라가 성공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뛰어난 기술자와 성능이 우수한 기자재만으로 완벽한 원전 상품을 만들어 낼 수 없다. 그래서 정부와 원전산업계가 가진 한국식 사업관리 역량 자만심은 하루 빨리 버려야 한다. 동시에 세계시장을 겨냥한 사업관리 전문기술개발 능력을 키우는 새로운 작업에 들어가야 한다. 근거 없는 자만심은 실패와 아픔을 낳는 지름길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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