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승달이 뜬 야심한밤, '밀당'을 주고받는 혜원 신윤복의 '월하정인'(사진)은 정말로 한밤중에 그려졌을까?.
조선시대 풍속화가 혜원 신윤복 작품 월하정인을 그릴 당시 부분월식이 일어났다는 관측이 제기됐다.
2일 이태형 충남대 천문우주과학과 겸임교수는 "혜원의 ‘월하정인’ 속 ‘달’의 모양과 위치 등을 근거로 추정한 결과 이 그림은 1793년 8월21일 밤 11시50분께 그려졌다"고 추정했다.
어떻게 신윤복 월하정인이 그려진 날짜와 시간을 알 수 있었을까.
당초 국보 135호 혜원전신첩에 실린 신윤복 월하정인은 그림이 그려진 정확한 시점이 알려지지 않았다.
이태형 교수등에 때르면 첫 번째 단서는 그림 속 달의 볼록한 면이 위를 향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 달 주기로 달이 차고 이지러지는 과정에서는 결코 볼 수 없는 현상이다.
달이 지구 그림자에 가려지는 월식이 있을 때만 신윤복 ‘월하정인’ 속 달의 모양을 볼 수 있다는 것.
또 그림 속 글을 읽어보면, 시간대가 ‘夜三更(야삼경)’으로 적혀 있다. 이것은 밤 12시 전후의 ‘자시(子時)’를 말한다. 월식이 일어나는 날은 보름달이 뜨는 날이며, 보름달은 자시 무렵에 가장 하늘 높이 떠오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림 속 달이 겨우 처마 근처에 걸려 있다는 것은, 달의 남중고도(南中高度)가 낮은 여름이라는 뜻이다.
월식에는 달이 지구 그림자에 완전히 가려지는 개기월식과 일부만 잠식되는 부분월식, 두 종류가 있다. 여름철 한밤중에 펼쳐지는 개기월식은 달의 왼쪽부터 가리기 시작해 오른쪽으로 진행하기 때문에 ‘월하정인’ 속 달 모양은 불가능하다.
이 같은 추정을 바탕으로 이 교수는 신윤복이 활동한 것으로 추정되는 18세기 중반부터 19세기 중반까지 약 100년 사이에 있었던, 서울에서 관측 가능한 부분월식에 대한 기록을 조사했다.
그 결과 1784년 8월30일(정조 9년, 신윤복 26세)과 1793년 8월21일(정조 18년, 신윤복 35세) 두 차례의 부분월식이 확인됐다.
그러나 1784년의 경우 8월29일부터 31일까지 서울 지역에 3일 내내 비가 내렸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월식이 나타났어도 관찰할 수 없었다는 얘기다.
반면 1793년 8월21일(음력 7월15일)에는 오후에 비가 그쳐 월식 관측이 가능했다. ‘승정원일기’에도 “7월 병오(丙午·15)일 밤 이경에서 사경까지 월식이 있었다”고 기록돼 있다.
이 교수는 “‘월야밀회(月夜密會)’, 정변야화(井邊夜話)‘ 등 다른 그림의 달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신윤복은 사실과 무관한 상상의 달을 그리지 않았다”며 “특히 ’월하정인‘의 위로 볼록한 달은 일상에서 거의 볼 수 없는 것인 만큼, 임의로 그런 달을 그렸다고 생각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