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힘은 미술관> 미술관은 (기업)기부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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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2-02-28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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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욕미술관 탐방> 기증과 기부로 무료입장 할인제도 풍성..비싼예술 감상 기회 활짝

뉴욕 53번가 도심 한복판에 위치한 모마미술관은 밤이 되자 거대한 전광판으로 변했다. /사진=박현주기자

모마미술관 서점 입구./사진=박현주기자


(뉴욕=박현주 기자) 지난 2월 7일 방문한 미국 뉴욕미술관(이하 MoMA)은 오전 10시 문을 열기전부터 북적였다. 세계 각국에서 온 다양한 인종이 한데 섞여 입장료를 사고, 줄지어 서 전시장안으로 빨려 올라갔다.

MoMA의 로비 안내데스크에서 감격했다. 12개국 언어로 표기된 미술관 소개서가 비치되어 있는 데스크엔 놀랍게도 한글 안내서가 상단의 맨 첫 번째에 꽂혀 있고 크기도 가장 많이 차지하고 있다. 안내서에는 미술관의 전반적인 시설, 갤러리 소개, 카페, 기념품 가게 등의 정보가 들어있다. 올해 1월 초 영화배우 송혜교씨가 새로운 한국어 안내서 제작비용 후원으로 이뤄진 놀라운 결과다.

모마미술관 안내데스크등에 비치되어 있는 한국어 안내서./사진=박현주기자

 전 세계 수백 개의 국가에서 방문한 수많은 관람객에게 공용어인 영어보다 한국어가 더 먼저 더 많이 그들을 맞이하고 있다는 사실에 묘한 흥분감이 앞섰다.

 더욱이 PRESS가 찍힌 기자증을 내밀자 입장료는 공짜였다. 한국에서 13시간 비행기를 타고 온 보람을 느꼈다. 

 국내 전업작가협회에서 국내 미술관 박물관 무료입장할 수 있게 해달라는 주장이 떠올랐다. 3000원, 1만원이라는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작가로 인정해주는 자부심을 느낄수 있는 기본적인 제도를 마련해달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런 시스템은 정부나 미술관에서 홀로 할수 없는 일임을 뉴욕의 미술관에서 다시한번 느낄수 있는 기회였다.

낯선땅 MoMA에서 기죽지 않고 설렘과 자부심으로 작품을 여유있게 감상할 수 있을 수 있게 된 것은 '기부' 때문이라는 사실은 새삼 각인됐다. 

모마미술관 입구 왼쪽벽에는 기부자 명단이 빼곡히 박혀있다. 미술관에 미술품을 기증한 사람들의 이름이다./사진=박현주기자
모마미술관 후원업체 명단도 미술관입구에 로고와함께 적혀있다.

◆미국을 지탱하는 힘은 미술관

MoMA(The Museum of Modern Art New York)에서 눈길을 끈 것은 기부자명단이었다. 전시장 입구에는 미술관 컬렉션에 기부한 명단이 한쪽 벽에 붙여있다. 또 한 쪽벽에는 미술관을 후원하는 업체 로고가 박혀있다. 현대카드, 한진해운등 국내업체도 붙여있었다. 모마미술관을 움직이는 원동력들이다.

MoMA의 뮤료입장은 유통업체인 타겟에서 그만큼 기부해줬기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런 덕분에 세계 각국에서 온 기자는 물론 학생들에게 공짜로 유명 예술품을 언제고 마음놓고 감상할수 있게 됐다. 사립미술관들 대부분 입장료는 20달러나 됐다.

하지만 모마미술관뿐만 아니라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구겐하임같은 세계적 미술관은 만 12세미만은 무조건 무료다. 그리고 대학에 따라 그 대학이 해당기관에 기여한게 있을 경우 그 학교 학생은 다 무료로 해준다는 사실. 예를들어 뉴욕시에 기부를 했기때문에 뉴욕 시립대학 학생들은 무료 입장혜택을 받는다. 
모마미술관은 특별기획전으로 디에고 리베라의 뉴욕시절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대학생들이 작품을 감상하기전 설명을 듣고 있다.

세계적인 미술관으로 입지를 굳힐 수 있었던 이면엔 미국 정부나 기관이 아닌 순전히 기업 후원의 힘이 컸다. 기업과 미술관, 둘은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

“경제적 관점에서 볼 때, 미술에 대한 참여는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이득을 의미할 수 있다. 이는 큰 명성과 광고 효과, 더 밝은 대중적 명예와 발전된 기업 이미지를 회사에 제공할 것이다. 또 소비자와 더 나은 관계를 구축하고, 회사의 상품들을 더욱 쉽게 수용하도록 할 것이며, 상품의 질에 대한 우수한 평가를 손에 거머쥐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미술의 후원은 직원들의 도덕성을 증진시킬 수 있고, 훌륭한 자질을 갖춘 이들의 관심을 끄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미국의 은행가이자 자선사업가인 데이비드 록펠러가 체이스 맨해튼 은행의 회장 시절인 1966년 전국산업회의 임원단(National Industrial Conference Board)에서 발표했던 연설문의 내용이다. 데이비드의 어머니인 애비(Abby) 록펠러가 바로 MoMA의 창립자 중의 한 명이었으며, 1948년 어머니가 사망한 이후엔 그가 그녀의 이사 자리를 승계해 회장직을 역임했다. 데이비드의 이 연설내용은 미국 사회에서 기업이 미술계를 왜 후원해야 하며 그것은 어떤 사회적 의미가 있는지에 대한 새로운 기업 철학의 시작인 셈이었다.

록펠러의 제안에 따라 100여개의 기업들이 지지하고 나섰으며, 그 결과 1967년 ‘기업예술위원회(BCA, the Business Committee for the Arts)’가 출범하였다. BCA는 첫 해에 총 2천2백만 달러의 예술 지원금을 출자하였고, 1982년에는 5억 달러 지원을 달성하면서 ‘기업들에게 예술 지원 기부금을 출감케 하는 봉사기관’의 역할을 도맡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1973년엔 기업대표와 예술기관 대표들로 구성된 ‘예술과 기업협의회(ABC, New York Arts and Business Council)까지 창설되어 예술과 기업과의 상호 연계 봉사활동까지 일어난다.

결국 한 기업인의 소신이 BCA와 ABC 결성으로 이어져 미국에게 ‘기업 중심의 가장 성공적인 문화 지원 국가’라는 영예를 안겨준다. 마치 피렌체의 메디치 가문 등 일부 거상(巨商)들이 19세기 유럽의 문화부흥을 견인했던 것처럼, 100년 후에 보다 발전된 ‘미국식 미술관 지원시스템’을 만들어낸 것이다.

미국의 현대 미술관들인 MoMA(1929), 휘트니미술관(1931), 구겐하임미술관(1937) 등은 정부 차원의 후원으로 형성된 유럽의 공공미술관과 달리 주로 대기업과 부를 축적한 개인 후원자들이 경제적 지원 혹은 자신들이 수집한 미술작품의 기부로 설립되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뉴욕 어퍼이스트 사이드에 위치한 구겐하임미술관. 도로 바로옆에 위치해있다.

◆한국 기업의 성공적인 글로벌 아트마케팅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아티스트로 꼽히는 이우환 화백(1936~)이 작년에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특별 초대전을 가져 크게 화제가 됐었다.

물론 이 전시는 이우환 화백의 뛰어난 작품세계가 국제적으로 공인받은 것이기도 하지만, 그 이면엔 또 다른 결정적 역할도 숨어 있다. 바로 구겐하임의 글로벌 스폰서로 참여하는 두 기업 중의 한 곳이 삼성전자라는 점이다. 삼성은 아시아계 기업으로는 유일하게 독일의 도이치뱅크와 함께 글로벌 파트너로 활동하고 있다. '삼성'의 마크가 붙여있는 구겐하임미술관 데스크 앞에서 과연 삼성의 기업 후원 없이 이우환 특별전이 가능했을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미국에서 기업의 가장 중요한 사회적 역할 중의 하나가 미술품 컬렉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광산과 제철로 막대한 부를 손에 쥔 할아버지와 금융업으로 부를 확장한 아버지로부터 막대한 재산을 물려받은 페기 구겐하임(Peggy Guggenheim)의 결단이 오늘의 구겐하임 미술관을 만들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전문적인 기업 컬렉션의 형성을 주도했던 것은 바로 현재 3만 여점이 넘는 컬렉션 규모를 자랑하며, 이 작품들로 세계 450여개의 지점에 전시하고 있는 체이스 맨해튼 은행의 데이비드 록펠러 회장이다. 

 하지만, 개인을 넘어 IBM이 1939년에 미국미술을 구입하기 시작했으며, 1940년대에는 펩시콜라, 홀마크, MGM, 애보트(Abbott Laboratories) 등 많은 기업들이 미술 후원에 나섰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대부분의 기업들이 미국의 동시대 미술을 적극적으로 후원했다는 점이다. 그 결과 미국의 현대미술은 오늘날 세계의 새로운 트렌드를 리드하는 중심에 서게 된 것이다.
구겐하임미술관 안내데스트 쪽에 붙어있는 후원업체 명단.


◆기업의 사회공헌 실천과 국가의 기업 지원제도

문화가 한 국가의 경제성장과 국가적 경쟁력을 높여 준다는 말은 더 이상 신선하지도 않다. 대표적인 예로 그 나라를 대표하는 미술관이 국가적 경쟁력까지 좌우한다는 말도 심심치 않게 흘러나온다. 가까운 중국만 해도 근시일 내에 국가 주도로 무려 1000여개의 미술박물관을 설립한다는 얘기도 있다. 미술관 정책, 이젠 남 얘기가 아니다. 이런 시점에서 소위 다른 문화선진국은 내실 있는 미술관을 보유하기 위해 어떤 묘책을 쓰고 있는 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부러워 할 만 한 문화선진국의 미술관들은 대개 국가 직속보다는 민간 소유인 경우가 많다.

아무래도 국가가 직접적으로 간섭하다보면 미술관의 수량에 비해 문화적 성향이 획일화될 위험이 있기도 하고, 특정 부문에 대한 세금의 ‘몰아주기식 지원’이라는 지적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점을 보완하기 위해 선진국일수록 정부를 대신해 미술관의 공공성에 걸맞은 질적 수준을 충족시켜주는 역할을 바로 기업이 대신하는 예가 많다. 이때 정부는 기업에게 그에 상응하는 충분한 지원책을 제공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수순이다.

미국은 1917년부터 “기부가 비영리단체를 통한 공공복지를 위해 쓰일 경우 세금을 대신한다.”는 원칙 아래 ‘기부금 세제지원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가령 개인이 미술관에 기부할 경우 소득의 30~50% 한도 내에서 기부가 가능하며 5년간 이월하여 공제를 해 주도록 하고 있다. 이는 1917년부터 1986년까지 세금감면효과가 평균 70%에 달했다.

법인의 경우 총 소득의 10%내에서 기부가 가능하며, 5년간 이월공제가 가능한데 1990년대 초부터는 미술품 기부를 활성화하기위해 분할기부제도(Fractional Gifts of Arts)를 도입했다. 이 제도는 기부자가 미술품을 일정비율로 나누어 기부함으로서 총 작품가중 기부한 비율만큼 세제혜택을 부여하는 방법으로 경우에 따라서는 작품가가 상승하면 공제혜택이 커지는 장점이 있다.

영국의 경우는 거의 모든 미술관 박물관이 비정부공공기관(NDPB, Non- Departmental Public Body)의 형태로 운영된다.

민간이 주도하지만 정부가 공동으로 설립과 관리 운영하는 셈이다. 영국은 1851년 열린 런던 대 박람회 이후 중앙과 지방정부가 미술관· 박물관을 지원하기 시작해 19세기말 관광산업의 중추로서의 미술관 기능에 착안 집중적으로 마케팅을 펼쳐 오늘날에 이르렀다.

메트로폴리탄박물관에서 만나 앤디워홀의 모택동.

1931년 박물관 도서관 문서고위원회(MLA, The Museums, Libraries and Archives Council), 1977년에는 영국사랍박물관협회(AIM, The Association of Independent Museums), 1988년부터 미술관ㆍ박물관 등록과 인증 평가를 실시하고, 2004년부터 인증 제도를 도입운영하고 있다. 또한 개인이 미술관에 기부할 경우 한도 없이 소득공제를 받을 수 있도록 장려하고 있다.

문화예술 전통국가 프랑스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 600여 년 동안 고집해온 중앙집권적 입장을 최근엔 민간부문으로 빠르게 전환하고 있다. 1980년대 까지 만해도 문화예술재원의 99%를 공공부문에서 조달했지만, 2003년부터는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세제혜택을 부여하는 메세나 법을 시행하면서 프랑스의 옛 영광을 찾고자 여념이 없다. 그리고 2002년부터 ‘미술관 공인제도’를 도입해 미술관으로 공인받으면 소장품 구입과 운영에 있어서 정부의 지원과 세제상의 혜택을 누리고 있다. 

뉴욕미술관에서 흔히 볼수 있는 풍경. 아이들이 교과서에나 볼수 있는 유명작품앞에서 수업을 받고 있다./사진=박현주기자

“중요한 것은 예술이 비즈니스 세계에서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는 점, 예술은 비즈니스를 포함한 인생의 모든 측면과 관련되어 있다는 점, 실제로 예술은 비지니스에 필수적이라는 점이다.” 미국 CBS 사장이었던 프랭크 스탠톤(Frank Stanton)의 말이다.

이처럼 예술은 현대사회를 지탱하는 모든 비즈니스의 필수적인 요소가 되고 있다. 따라서 예술을 후원하는 것이야말로 돈을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사례가 될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한국의 밝은 미래와 문화발전을 견인할 수 있는 ‘한국의 록펠러’가 필요한 시기이다. 록펠러는 혼자 태어나거나 만들어질 수 없다. 무엇보다 사회적 인식의 열린 전환과 정부의 현실적인 지원책이 관건이다.
19개의 전시관이 있는 메트로폴리탄박물관에는 고대 중세 르네상스 초현실주의 현대미술품 330만여점이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대부분 기증으로 이뤄진 작품들이다. 하루 관람으로 모든 작품을 감상하기는 어려운 전시장이다. /사진=박현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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