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67년이 됐지만 동아시아는 아직도 전시(戰時)상황이다. 화합의 길로 가는 적잖은 성장통을 겪었던 한국·중국·일본 3국이 결국 파열음을 내고 있다.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미래지향적'을 부르짖던 최고지도자들의 대외 리더십은 강경기조로 변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독도에 이어 위안부 문제까지 거론하며 일본에 강공을 펼친 데 이어 동중국해 댜오위다오(釣魚島·일본명 센카쿠(尖閣)열도)의 주권이 중국에 있다고 주장하는 홍콩 활동가들이 15일 댜오위다오에 상륙해 중·일관계도 냉각기류에 합류했다.
◆ 1라운드…한·일戰
이명박 대통령은 독도 방문에 이어 '일왕'을 거론하며 과거사 문제 사과를 요구하고, 위안부 문제를 전시 여성인권 문제로 확대하면서 일본에 대한 '초강수' 조치를 취했다. 이에 일본도 거세게 반발하고 나섰다.
일본은 자국에서 '성역'으로 받아들이는 일왕에 대해 사과를 요구한 것을 문제 삼으며 서울과 도쿄의 외교채널을 통해 공식적으로 항의했다.
이에 정부 당국자는 "독도 방문 직후의 항의 이후 공식 채널을 통해 온 항의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일본이 8월 말 개최 예정이던 한·일 재무장관 회의를 연기하자고 지난주 통보한 데 이어, 통화스와프 협정의 재검토까지 거론하면서 우리 정부를 압박하고 나서 양국간 외교에 이어 경제분야까지 냉각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16일 "한·일 통화스와프는 일방적으로 일본이 우리나라에 시혜를 베푸는 게 아니고, 서로의 필요성 때문에 이뤄진 것"이라며 "일본이 실제로 통화스와프 재연장을 재검토하고 나설지 두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3000억 달러 이상의 우리 외환보유액과 중국과의 통화스와프도 있는 등 외환시장 안정책이 겹겹이 되어 있다"고 덧붙였다.
설령 일본이 재연장을 중단한다고 해도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은 거의 없다는 얘기다.
현재 우리나라는 일본과 700억 달러, 중국과 560억 달러의 통화스와프 협정을 맺고 있고, 치앙마이이니셔티브 다자화체제(CMIM)기금 2400억 달러 중 위기 시 384억 달러까지 인출할 수 있어 총 1644억 달러의 외화비상금을 보유한 셈이다.
한·일 양국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전후해 30억 달러 수준이던 통화스와프 규모를 일시적으로 200억 달러로 늘렸다가, 지난해 10월 정상회담을 통해 다시 700억 달러까지 확대했다.
외교통상부도 '역사문제는 타협할 수 없는 부분'이라는 입장이다.
조태영 외교부 대변인은 "한·일관계에 있어 타협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바로 역사문제다"라며 "역사를 직시하는 가운데 양국관계를 발전시켜 간다는 기존의 입장 또한 변화가 없다"고 밝혔다.
또 일본에서는 반한(反韓) 여론이 감지되고 있고, 한국에서는 반일(反日) 감정이 쌓여가는 등 양국 정부·지도자 간 갈등이 국민 감정싸움으로 확산일로를 걷고 있다
◆2라운드…중·일戰
때마침 중국과 갈등을 빚고 있는 동중국해 영규권 문제도 가열되고 있다. 일본의 과거 군국주의 상징인 야스쿠니 참배도 매년 광복절마다 반복돼 한국과 중국을 분노케 하고 있다.
이 대통령의 독도 방문이 있은 직후 홍콩 시위대가 댜오위다오(센카쿠열도)에서 상륙을 시도하다 일본 당국에 체포됐다. 이 사건과 관련해 중국 정부는 주중 일본대사를 초치해 항의하는 등 양국간 외교갈등도 격화되고 있다. 대만 역시 체포된 홍콩 시위대를 석방하라고 일본 당국에 촉구했다.
일본은 자국이 실효지배 중인 센카쿠(댜오위다오)에 대해서는 자위대의 출동 지침을 마련하는 등 강경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올해로 국교정상화 40주년을 맞는 중·일 양국은 영토분쟁과 일본 관료의 난징대학살 부정 발언을 둘러싼 과거사 문제 등으로 인해 감정의 골이 깊어진 상태였다.
일본이 댜오위다오(센카쿠열도)에 상륙한 홍콩 시위대를 재판에 넘기지 않고 곧바로 강제송환하는 쪽으로 검토 중이라고 요미우리신문 등 일본 언론이 16일 보도했지만, 야당인 자민당은 일본 국내법으로 재판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어 양국의 외교 파장은 더욱 더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한 일본 전문가는 지난 2010년 9월 일본 경비정과 중국 어선이 센카쿠열도에서 충돌한 뒤 중국 어선 선장이 체포됐을 때 당시 중국이 희토류 수출 중단 등의 조치를 통해 입본에 압력을 가해 결국 석방된 것을 거론하며 "일본은 당시 중국의 강경대응 효력을 확안해 이번에 상대국(한국과 중국)에 초강경대응을 하는 걸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러한 갈등관계에도 불구하고 경제적 교류는 증가 추세다. 중국과 일본의 지난해 무역은 14.3% 증가했다. 중국은 한국의 제1 교역국이다.
전문가들은 세 나라의 경제협력관계가 동아시아의 충돌 위기를 억제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들 전문가는 또 한국과 중국, 일본 등 동북아 3국 간의 갈등이 격화되고 있는 양상이 당분간은 불가피하겠지만 장기적으로는 회복될 여지가 있다고 진단하고 있다.
이원덕 국민대 교수는 "일시적으로는 한·중·일 분쟁이 최고조에 달해 단기적으로는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면서도 "한·일관계는 경제·문화적 측면에서 서로 도움이 되는 측면이 많아 나름대로의 구심력이 작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로이터통신은 "3국이 역사문제 때문에 과거로 가고 있다"고 평가했다.
통신은 교토의 스탠퍼트 센터장 앤드루 호밧의 말을 인용해 "과거에 대한 공통된 인식 부재가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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