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전 대통령과 삼성 창업주인 호암 이병철 회장,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과 이건희 회장 간의 2대에 걸친 인연이 한국 경제 발전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 |
아주경제 이재호 기자= 매년 초가 되면 국내 대기업들이 새해 투자계획을 발표한다. 특히 삼성그룹이 내놓는 투자계획은 재계는 물론 정치권까지 관심을 기울이는 사안이다.
그 해 경제상황을 진단할 수 있는 바로미터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경기가 안 좋을 때는 더욱 그렇다. 삼성이 공격적인 투자 및 채용에 나서야 다른 대기업들도 덩달아 투자를 늘리는 '밴드왜건'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삼성이 경제 살리기의 첨병이 된 사연이 있다. 비단 매출과 순익이 국내 최고라서가 아니다. 선대 호암 이병철 회장이 강조한 국가 경제발전에 대한 책임감이 현재 이건희 회장으로 이어져 왔기 때문이다.
1960년 4·19 혁명이 일어난 후 부정축재자로 낙인 찍혀 일본으로 장기 외유를 떠났던 호암은 이듬해인 1961년 5·16 군사쿠데타가 터지자 귀국길에 오른다. 물론 자의는 아니었다. 경제인 11명이 부정축재 혐의로 구속된 후 국내 최대 재벌이었던 호암을 불러들여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1961년 6월 26일 호암은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부의장이었던 박정희 장군과 대면한다. 이 자리에서 호암은 기업인을 부정축재자로 전락시키는 현행 세법의 문제점에 대해 지적하며 "기업을 잘 키워온 사람을 처벌하면 누가 힘들게 기업을 하겠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서슬이 퍼렇던 군부독재 시대에 기업인으로서 입 밖으로 내기 힘든 말들이었다. 박정희 정권은 구속된 경제인들을 모두 석방했다. 이어 호암은 박정희를 두 번째 만난 자리에서 기업들에 부과된 벌금을 국가 기간산업에 투자하도록 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벌금을 내는 대신 그 돈으로 공장을 짓고 지분을 정부에 넘기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박정희 정권이 '투자명령'을 법으로 규정하게 된 배경이다. 호암은 "정부는 제철, 시멘트, 비료 등 투자 대상을 정하고 어느 분야에 투자할지는 기업들에게 선택권을 주자"고 주장했다.
이때부터 박정희 정권은 기업을 개혁의 대상으로 삼는 대신 동반자로 인식하게 됐다. 산적한 경제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기업이 긴밀히 협력해야 한다는 점을 깨달은 것이다. 호암은 그 해 8월 16일 한국경제인협회(전국경제인연합회의 전신) 초대 회장으로 추대됐다.
이후 경제인협회는 기업간의 중복투자를 조정하고 국가적으로 필요한 산업에 역량을 집중하는 한편, 외자유치를 위해 정부와 함께 뛰는 등 한국 경제의 성장을 이끄는 구심점이 됐다.
호암이 신변의 위협은 물론 삼성이라는 기업이 감당해야 할 대가에 굴복하지 않고 국가 경제발전이라는 대의를 위해 자기 목소리를 낸 결과였다.
그로부터 반세기가 지난 현재, 한국 경제는 또 한 번의 위기에 직면했다. 글로벌 금융위기와 유로존 재정위기 등으로 세계 경제가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다. 한국 경제도 그동안의 성과에 안주하지 말고 초심으로 돌아가 위기 극복을 위한 묘안을 짜내야 할 시점이다.
지난해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인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경제위기 극복의 중책을 맡게 됐다. 박 당선인은 경제민주화로 일컬어지는 재벌개혁과 중소기업 지원, 서민경제 활성화 등의 어젠다를 내세워 대선에서 승리했다. 박정희 정권 초기 반기업 이슈를 강조해 민심을 얻으려 했던 모습과 묘하게 겹쳐진다.
그러나 박정희 정권이 그랬듯이 박 당선인도 대기업을 끌어안지 않고는 경제성장을 이룰 수 없다. 이를 의식한 듯 박 당선인은 기업인들과 만날 때마다 투자 확대와 고용 창출에 힘써줄 것을 당부하고 있다.
박 당선인으로부터 공을 넘겨받은 이건희 회장은 적극적으로 화답했다. 이 회장은 어려운 경제여건 속에서도 "(올해 투자를) 늘릴 수 있으면 늘릴 것"이라고 밝혔다.
또 올해 신년사를 통해 "투자와 일자리 창출에 적극 동참해 국민경제에 도움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회장은 "경제가 어려울수록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더 무거워진다"며 "삼성은 우리 사회에 희망을 줘야 한다"고 역설했다.
전문가들은 삼성의 올해 투자액이 50조원대로 사상 최대 규모에 달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재계 맏형다운 통 큰 행보다.
이 회장은 단순히 투자를 늘리는 데서 그치지 않고 한국 경제의 차세대 성장동력이 될 신수종 사업 육성에도 팔을 걷어붙였다. 삼성은 태양전지와 자동차용 배터리, LED(발광다이오드), 바이오·제약, 의료기기 등을 5대 신수종 사업으로 정하고 오는 2020년까지 23조3000억원을 투자할 방침이다.
박정희와 이병철, 박근혜와 이건희. 2대에 걸친 인연이 위기에 빠진 경제를 살리는 원동력이 될지에 관심이 집중되는 이유다. 앞으로 5년 동안 대한민국호를 이끌게 된 박근혜 당선인과 글로벌 톱10 기업으로 성장한 삼성의 이건희 회장이 어떤 시너지를 창출할지에 국내외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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