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핵위협에 대응해 어느 때보다 요구되고 있는 공고한 한미동맹을 반영한 인사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서울대 화공과에 입학한 뒤 중퇴하고 육군사관학교에 진학했다. 수석입학과 수석졸업을 할 정도로 학구파였다고 한다. 생도 시절부터 병서인 손자병법을 300회 이상 정독하고 이를 부하들의 교육훈련에 접목했던 유명한 일화가 있다.
김 내정자는 참여정부 시절 연합사 부사령관으로 재직할 때 삐걱대던 한미관계 속에서도 당시 버웰 벨 연합사령관과 전폭적인 신뢰관계를 맺어 양국 현안을 무리 없게 소화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각종 연습 및 훈련 때 전쟁원리를 적용한 창의적인 전법을 구사했고 부하들의 의견을 충분하게 경청한 후 대안을 제시하는 스타일이다.
군의 한 관계자는 “한반도에서 미래전은 어떤 양상으로 전개되고 어떻게 싸워야 하며 이를 위해 어떤 무기체계를 가져야 하는지를 평생의 화두로 삼은 분”이라며 “국방분야 개혁방향에 대한 논리적인 대안을 소신 있고 일관성 있게 제시했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전했다.
김 내정자는 군 시절 김장수 국가안보실장 내정자의 뒤를 이어 7군단을 맡았으며 1군사령관으로 곧바로 진출했다. 군단장에서 1군사령관으로 영전한 인물은 김 내정자가 처음이라고 한다.
△경남 김해(65) △육사 28기 △육군대학 교수부장 △2사단장 △합참 전력기획부장 △7군단장 △제1군사령관 △연합사부사령관 겸 지상구성군사령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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