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프로스 정부는 지난 16일(현지시간)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과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100억 유로(약 14조4000억원)의 구제금융을 받는 대신 예금에 세금을 부과해 58억유로를 확보하기로 했다.
대신 10만 유로(약 1억4400만원) 이상의 예금에 9.9%, 그 이하에는 6.75%의 세금을 매기기로 했다. 그러나 예금자의 반발이 거세지고 금융시장도 불안해지자 유로존 재무장관들은 긴급 전화회의를 열고 소액 예금에는 과세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키프로스의 뱅크런(대규모 예금인출) 우려가 커지면서 18일 유럽 주요 증시는 일제히 하락했다. 이탈리아 주가는 0.8% 하락한 것을 비롯해 영국과 프랑스도 각각 0.5% 떨어졌다.
소액 예금은 제외하는 조건으로 10만 유로 이상의 고액 예금에 대해선 과세를 15.6%로 늘렸다. 이 수준의 예금자는 대부분 러시아인이다. 키프로스가 조세천국으로 불리면서 러시아인들이 대규모 자금을 예치했다. 이에 러시아는 고액의 러시아 예금 일부가 몰수된다며 격노했다. 지난 주말에만 해도 10만 유로 이상 과세가 9.9%였을 때 비난의 목소리가 커졌는데 과세가 더 늘어난 것이다.
무디스에 따르면 러시아인의 예금액이 키프로스 전체 예금액 중 33~50% 수준인 200억~ 310억 달러 가량 이를 것으로 추산됐다. 전문가들은 러시아 예금자들의 손실액이 무려 20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러시아 은행 주가는 급락했다. VTB 은행의 주가는 무려 6.5%나 떨어졌다. 이에 따라 앞으로 러시아인들 자금의 행방도 주목되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만일 키프로스 정부가 유로존 회원국의 권고를 받아들여 결정을 내린다면 이는 불공정하고 비전문적이며 위험한 결정이 될 것”이라며 "은행 문제를 예금자들에게 떠넘기는 예금 과세 결정은 공정하지 못하다”고 비난했다.
키프로스 의회는 당초 구제금융 합의안 비준안 표결을 18일에 진행할 예정이었으나 19일로 연기했다. 다만 의회 56석 가운데 20석만이 니코스 아나스타시아데스 키프로스 대통령의 민주 회복당이 차지했기 때문에 비준안이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다. 만약 구제금융안이 의회를 통과하지 못하면 키프로스의 대형 은행 2곳이 부도를 맞을 것이라고 EU 관계자들은 경고했다.
구제금융 합의 후 뱅크런 우려가 커지면서 키프로스 정부는 21일까지 임시 은행휴무일로 지정하고 은행 영업을 중단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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