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주회사 출범 당시 “SK그룹의 지주회사 전환은 선진 지배구조를 향한 변화의 첫발”이라고 했던 최태원 SK 회장은 올해 “각 회사의 자율·독립경영 기조를 강화하고자 ‘따로 또 같이 3.0’이라는 새로운 기업지배구조를 정립해 안착시켜 나가고 있다”며 “재무구조와 사업구조를 끊임없이 개선해 그 힘으로 모범적인 기업지배구조를 가다듬어 가겠다”는 의지를 실천해왔다.
현재 SK의 새 지배구조는 일면 봉건제와 유사하다. 과거 중국과 중세 유럽의 국가들이 광활한 영토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통치수단으로 지방분권화된 봉건제를 실시했던 것은 오늘날 규모가 커진 대기업이 조직을 개선하고자 계열사의 독립·책임경영을 강화하고 있는 것과 상통한다.
특히 SK의 경우 ‘임금 없는 봉건제’로서 지방분권화의 강점을 극대화했다. 최태원 회장이 스스로 그룹 회장직에서 물러나는 결단으로 여느 재벌그룹이 안고 있는 오너경영의 한계를 쇄신한 것이다.
SK 지주회사는 기존의 관리자 역할에서 벗어나 전문투자조직을 신설하는 등 투자자 역할로 변화하고 있다. 또한 각 계열사는 수펙스추구협의회를 위시한 위원회 경영 아래 자율경영을 강화하는 중이다.
이러한 지배구조는 조직 의사결정의 유연성과 속도를 높여 소위 ‘대기업병’이라 불리는 조직의 복잡성과 융통성 없는 프로세스문제를 해소해준다.
국내 3대 그룹인 SK의 올해 실험적인 체제 개혁은 국내 재벌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울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따로 또 같이 3.0’이 도입된 지 채 7개월도 안됐지만 이미 조기안착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 28일 SK가 한중 수교 후 최대 규모의 석유화학 합작사업을 성사시킨 것은 중국 정부가 SK의 새로운 모습에 신뢰를 보이고 있음을 방증한다.
무엇보다 SK의 지배구조 개선은 글로벌 경영을 위한 포석이다. 그간 SK가 선진화된 지배구조를 갖추고자 한 노력은 글로벌 성과로 이어져왔다.
지난해 SK는 세계적인 경기침체에도 사상 최대 규모인 600억달러의 수출실적을 달성했다. 수출비중도 2011년 67%에서 지난해 74%까지 커졌다. 600억달러는 지난해 국내 전체 수출액의 10%가 넘는 수치다.
뿐만 아니라 그룹의 봉건제적 자율경영 강화기조는 계열사의 사업별 분권화로 이어져 좋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 사업지주회사로 분할한 SK이노베이션이 대표적이다.
화학사업 자회사인 SK종합화학이 이번 중국 우한 프로젝트에 성공한 것은 물론, 석유 자회사인 SK에너지의 경우 국가대표 수출기업으로 성장했다. 지난해 국내 전체 수출액에서 석유제품이 조선·자동차·반도체를 제치고 처음으로 1위를 차지한 바 있다.
한편 SK는 재판 중인 최태원 회장의 부재 속에 별도의 지주회사 출범 7주년 기념행사는 치르지 않기로 했다. 체제 개혁을 주도해왔던 최 회장의 노력에 힘입어 그룹사는 승승장구하고 있지만 마냥 웃을 수 없는 게 그룹 내부의 사정이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