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현상은 우리나라 남부지역 기후가 점차 아열대로 변하면서 공항·항구를 통해 국내로 들어온 뎅기열 모기가 오래 살아남을 수 있는 환경이 갖춰졌기 때문으로 분석됐다. 따라서 조만간 국내에서 모기에 물려 감염된 뎅기열 환자가 발견되고 이후 토착적으로 유행할 가능성까지 대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28일 이근화 제주의대 교수 연구팀의 ‘기후변화·세계화가 모기 매개체에 미치는 영향’ 논문을 보면, 2010년 4월부터 2011년 3월까지 제주도 7개 지역에서 감염병매개 모기를 채집한 결과, 서귀포시 복목동에서 잡힌 흰줄숲모기(뎅기열 매개체)의 유전자 염기서열이 베트남에 서식하는 것과 똑같았다. 연구팀에 따르면 뎅기열 창궐지역인 베트남 흰줄숲모기의 제주도 서식 사실이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흰줄숲모기의 유전자 염기서열은 일본(나가사키)·미국·프랑스·싱가포르에서 채집됐거나 국내 남부지역에서 자생하는 흰줄숲모기와는 유전자 계통분류상 전혀다른 것이었다.
따라서 연구팀은 베트남의 흰줄숲모기가 공항이나 항구를 통해 제주에 들어와 살아남은 것으로 추정했다.
실제로 이번 조사에서 채집된 흰줄숲모기의 지역별 개체 수는 제주공항(800마리)과 제주항(166마리) 근처가 이외 5곳보다 월등히 많았다. 웨스트나일열을 옮기는 빨간집모기와 말라리아 매개체인 중국얼룩날개모기 역시 제주공항 등에 집중적으로 분포했다.
더구나 지금까지는 다른 지역에서 감염병 매개 모기가 들어와도 기후가 맞지 않아 겨울을 나지 못하고 모두 죽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이번 조사에서 외래 유입 모기가 상당 기간 생존, 뿌리를 내릴 가능성까지 확인됐다.
흰줄숲모기와 빨간집모기는 제주에서 11월까지 발견됐고, 월평균 기온 및 강수량과 채집 모기의 밀도 사이에는 강한 상관관계가 나타났다. 이 때문에 북쪽 제주시보다 남쪽 서귀포시(보문동 등) 부근에서 연중 더 오랜 기간 모기를 채집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흰줄숲모기는 제주시 부근에서는 6~10월에 잡혔지만, 서귀포시에서는2개월 더 긴 5~11월에 발견됐다.
이근화 교수는 “이번에 발견된 베트남 모기에서는 다행히 바이러스가 나오지 않았지만, 만약 감염된 베트남 모기가 국내로 들어와 사람을 물면 한반도에서도 토착적으로 뎅기열이 발생하고 퍼질 수 있다는 뜻”이라며 “이런 변화는 ‘기후 온난화’와해외로부터 사람과 물류가 자주 드나드는 ‘세계화’의 영향”이라고 설명했다.
연구팀에 따르면 지난 41년동안(1970~2012년) 제주도 기온은 평균 1.7℃ 높아져아열대 기후로 바뀌었다. 특히 남쪽 서귀포시는 기온 상승 폭이 2.0℃에 달했다.
이 교수는 “최남단 제주도가 열대성 질병이 한반도로 유입되는 ‘관문’ 인만큼, 제주에 전문기관을 세워 정부가 열대성 감염 질환 연구와 예방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조언했다.
뎅기(Dengue) 바이러스 감염으로 나타나는 뎅기열은 높은 열을 동반하는 급성 질환으로, 주로 열대·아열대 지방에서 모기를 통해 전파된다. 베트남은 올해 들어 환자 수가 2만3천여명에 이르고, 필리핀과 태국에서도 올해 6~7월까지 각각 193명, 71명이 뎅기열로 목숨을 잃었다. 우리나라는 최근 유행 지역을 다녀오고 나서 발병하는 경우가 해마다 30여 명씩 보고되고 있으나, 아직 국내에서 감염된 사례는 없다.
질병관리본부와 제주대 의학전문대학원 환경보건센터의 지원을 받은 이 연구의 논문은 지난 25일 미국공공과학도서관이 발행하는 온라인 학술지 ‘플로스원(PLoS ONE)’에 실렸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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