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
집권 6개월을 보낸 박 대통령 정부의 재계 정책은 '경제 민주화'로 상징되는 압박의 연속이었다. 오죽하면 재계에서 "일단 정부가 시키면 '무조건' 따르라"는 말이 스스럼없이 나왔을 정도다. 반기업 정서를 배경으로 한 정부와 국회의 공격에 재계는 바짝 엎드려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날 예정된 오찬은 그동안 볼 수 없었던 모임이라는 점에서 주목을 끈다. 첫째 박 대통령이 먼저 참석을 요청했고, 둘째, 전국경제인연합회와 대한상공회의소 등 경제단체를 배제한 채 산업정책을 총괄하는 산업통상자원부가 모임을 주관했으며, 셋째 10대 그룹 리스트에는 포스코와 KT 등 정부 투자 또는 공기업 출신 기업이 빠진 순수 오너 그룹으로 꾸려졌다. 마지막으로 청와대에서 각 총수들에게 3분간 직접 발언할 시간을 준비해 달라고 한 것도 눈길을 끈다.
이는 박 대통령이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기보다는 총수들로부터 많은 이야기를 듣기 위한 자리로 마련했다고 볼 수 있다. 정부 각 부처와 여당, 경제단체를 통해 걸러진 이야기를 듣던 박 대통령이 총수들의 속내를 직접 살펴보겠다는 뜻으로, 그만큼 재계와의 소통이 원하는 만큼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박 대통령이 앞서 두 차례 총수들과의 만남에서 투자와 고용을 독려했고, 기업들도 이에 부응하겠다는 방안을 제시했으나 정작 상반기를 되돌아보니 기업들의 투자는 계획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고용도 기대만큼 이행되지 않고 있어 그 배경에 대해 총수들과 직접 대화를 통해 해법을 모색하겠다는 것이다.
따라서 총수들은 이번 오찬에서 박 대통령에게 무조건 '선물'만 안기려고 하기보다는 현재 기업들이 처한 현실, 즉 전경련과 대한상의 등 경제단체를 통해 제기했던 다양한 현안을 정리해 직접 의견을 전달할 가능성이 높다. 기업의 목을 죄는 분위기를 완화시켜야 정부의 경제 부흥책에 부응하는 다양한 활동을 전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총수들은 박 대통령에게 대기업과의 '소통'을 넓혀 달라는 요청도 할 것으로 보인다. 일종의 '핫라인'이라고 불릴 수 있는 대화의 통로를 열어줌으로써 증대되는 불확실성을 제거해 달라는 것이다.
재계 고위 관계자는 "이번 오찬이 박 대통령이 총수들을 다그치는 자리가 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아버지 고 박정희 대통령이 재임 시절 수시로 총수들과 자리를 함께 했던 것처럼 공무원들로부터 듣지 못했던 경제 현안에 대해 총수들로부터 많은 이야기를 듣고 싶어할 것"이라면서 "총수들이 '쓴소리'에 가까운 정부에 대한 불만을 박 대통령에게 제기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또 다른 재계 관계자는 "글로벌 경기침체도 있지만 결국 기업들이 예상보다 더 활발한 활동을 하지 못한 것은 한국 사회 전반에 미치고 있는 반기업 정서 때문이라고 본다"며 "경제민주화 법안과 상법 개정안 등 기업 경영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이 논의되면서 정작 재계의 입장은 제대로 반영되지 못했다는 것을 이번 오찬 때 총수들이 부각시켜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한편, 이날 오찬에는 폐렴으로 입원한 후 최근 퇴원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과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구본무 LG 회장, 신동빈 롯데 회장, 허창수 GS 회장, 조양호 한진 회장, 박용만 두산 회장 등이 참석한다.
또 재판 중인 최태원 SK 회장을 대신해 김창근 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이, 김승연 회장을 대신해 홍기준 한화케미칼 부회장이, 현대중공업그룹에선 전문경영인인 이재성 현대중공업 사장이 참석할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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