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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X, 동양그룹이 무너진 데 이어 효성그룹도 조석래 회장과 아들 3형제에 대한 수사가 확대 조짐을 보이고 있으며, CJ그룹과 한화그룹, SK그룹, 태광그룹 등도 총수가 옥고를 치르고 있다. 대한전선은 오너 일가가 그룹 경영권에서 손을 뗐으며, 금호아시아나그룹도 위태로운 상황이다. 향후 어떤 대기업이 사정·금융감독 당국의 표적이 될 지 알 수 없다.
재계 고위 관계자는 “이렇게 다수의 대기업이 한꺼번에 위기를 겪고 있는 것은 오랜만이다. 저성장 기조가 장기화되고 있는 가운데 생존에 목을 건 기업들의 자연스런 퇴출이 지연되면서 현재의 상황으로까지 불거지게 된 것”이라면서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간에 이번 사태는 재계의 판도를 바꾸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고 전망했다.
재계 구조개편은 시장 내에서 자발적으로 진행되기보다는 정부의 개입에 의해 인위적으로 이뤄진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박정희 대통령의 집권 초기인 1960년대 말 이뤄진 부실기업 정리가 첫 사례로 꼽힌다. 당시 국내 최대 수출업체였던 천우사를 포함해 수십여개의 기업들이 하루아침에 날아가 버렸고, 1세대 창업주 상당 수도 자리에서 물러났다.
1979년부터 1980년까지 진행된 제2차 부실기업 정리 때는 중화학 분야의 경쟁적인 투자에 따른 부작용으로 다수의 기업이 퇴출됐고, 1982년에는 이철희·장영자 사건으로 대기업들이 쓰러지는 사건도 발생했다.
전두환 대통령 집권 시절인 1980년대에도 국제그룹 삼호 경남기업 한양 삼익주택 반도목재 대한선주 정우개발 범양상선 등이 무너졌는데, 특히 1985년 5월부터 1988년 2월까지 6차에 걸쳐 시행된 제3차 부실기업 정리 결과 제3자 인수 56개사, 계열기업 정리 13개사, 청산정리 2개사, 자체정상화 12개사 등의 조치가 이뤄졌다.
1990년대에는 정부의 경제정책이 수출 드라이브 중심에서 내수 진작으로 돌아서면서 재계에 먹구름이 드리우기 시작하더니 1998년 IMF 외환위기 사태를 전후로 현대그룹이 쪼개지고, 대우그룹과 진로그룹, 한보그룹 등이 해체됐다.
2000년대 초반 벤처 거품의 붕괴까지 더해지면서 생사의 갈림길에 섰다가 살아남은 기업들은 2000년대 중반까지 성장곡선을 그려가는 듯 했으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계기로 또 다시 위기의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렸다.
IMF 외환위기를 겪은 재계는 글로벌 금융위기에 대한 선제적 대응에 성공하는 듯 했지만 오히려 구조조정이 늦춰진 것이 화근이 됐고, 5년이 지난 2013년 대기업 퇴출 사태를 뒤늦게 겪고 있다.
기업 및 기업인들의 등장과 퇴출은 산업 생태계에서 이뤄지는 자연스럽고 바람직한 현상이다. 하지만 한국의 대기업들은 등장은 자유로웠던 반면 퇴출은 그렇지 못했다. 올해 재계를 대상으로 한 대대적인 구조조정도 문제의 싹을 빨리 잘라내지 않은 채 상처를 감추기에만 급급했던 기업과 기업인들의 자세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비난이 나오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계에서는 국가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정부의 일방적인 압박이 심하다며 기회를 줘야 한다는 의견을 조심스레 제기하고 있다.
특히 과거 부실기업 정리와 퇴출 때에는 주인을 잃은 기업들이 다른 대기업 또는 신생기업들에게 인수됐고, 이들을 인수한 기업들은 재계의 새로운 질서를 만들었다. 충격을 자체 흡수할 수 있는 역량이 기업들에게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는 생존이 가능한 기업들 중 상당 수가 불황을 견뎌내느라 기초 체력이 많이 소진된 상태이기 때문에 다른 기업을 인수할 여력이 없다. 구조조정의 상처가 회복되는 데에는 예상보다 긴 시일이 걸릴 수 있다는 것이다.
재계 관계자는 “아이러니하게도 대기업에 의한 경제력 집중은 한국 경제의 단점이자 장점인데, 허리를 받쳐줄 중견·중소기업의 기반이 열악한 상황에서 그나마 존립하고 있던 대기업군이 무너진다면 산업계 전반에 걸쳐 형성된 가치사슬의 한 축이 끊어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부실경영에 대한 책임은 기업인이 져야 하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기업인의 잘못을 기업 전체의 잘못으로 여기고 조직을 흔드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며 “재계에 대한 구조 개편은 상황에 맞춰, 경제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진행했으면 하는 바람이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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