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는 것이지만, 동양사태 등으로 비롯된 금융당국의 신뢰 하락을 물타기 하려 한다는 불만과 의혹마저 나온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자 금융사들은 잔뜩 몸을 움츠리는 모습이다.
17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이 연일 금융사 최고경영자(CEO)들의 문제점을 들춰내자, 언제 어떤 일로 금융당국의 지적을 받을 지 모른다는 긴장감이 흐르고 있다. 이런 분위기는 금융당국이 이른바 'MB맨'으로 불리는 금융인들을 겨냥했을 때부터 감지되기 시작했다.
금감원은 어윤대 전 KB금융그룹 회장을 비롯해 이명박 전 대통령의 측근으로 불리던 전 금융지주사 회장들의 비자금 조성 의혹을 집중적으로 조사하고 있다. 뒤늦게라도 불법 비자금 조성 여부를 밝혀내는 것이 당연하지만, 어쨌든 'MB 금융인'을 솎아내려는 의도가 있다는 견해가 팽배하다.
단지 'MB 금융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최근 며칠간 금감원은 금융사 CEO들의 연봉 및 성과보수 체계의 문제점을 낱낱이 파헤쳤다. 금융지주사(10개), 은행(18개), 금융투자사(12개), 보험사(25개) 등 65개 금융사 성과보수 현황 및 모범규준 이행실태 점검결과를 발표한 것이다.
조사 결과 지난해 기준 금융사 CEO 연평균 보수는 금융지주사가 15억원으로 가장 많았고, 금융투자사(11억원), 은행ㆍ보험(10억원) 순으로 나타났다. 과도한 성과보수를 챙긴 일부 CEO들도 공개돼 파장이 일었다.
금감원은 금융사의 실적은 악화됐음에도 불구하고 CEO들이 챙긴 돈은 줄어들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하며, 불합리하게 운영되는 성과보수체계를 시정하도록 금융사를 지도하겠다고 밝혔다.
이처럼 CEO와 관련된 구태가 드러나자 금융사들은 어느 때보다 긴장하고, 조심하려는 모습이 역력하다. 동양사태가 터지면서 어느 때보다 금융사에 대한 금융당국의 감시가 엄격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체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은행권 한 관계자는 "금융당국이 동양사태로 뒤통수 맞고 신뢰가 바닥에 떨어지자, 다른 금융사와 일부 CEO들에게 화풀이 하려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토로했다.
금융공기업들도 불편하긴 마찬가지다. 상당수 금융공기업의 전 기관장들이 'MB맨'이었기 때문이다. 금융공기업 한 관계자는 "공기업은 민간 금융사에 비해 급여 체계가 투명하므로 기관장의 보수가 문제되진 않을 것"이라며 "그러나 현재 금융권 분위기가 우려스러운 것은 마찬가지다"고 말했다.
특히 금감원이 불완전판매를 근절하기 위해 미스터리쇼핑을 강화하자, 금융사들은 긴장의 고삐를 더욱 바짝 죄고 있다. 동양사태가 터진 시점에서 사소한 잘못이라도 지적 당할 경우 어느 때보다 강한 질책과 징계를 받을 게 분명하다. 금감원은 12월까지 은행, 증권사, 보험사 등 52개 금융사의 2160개 점포를 대상으로 미스터리쇼핑을 실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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