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기를 놓쳤지만 알짜기업 매각을 통해 투자자 보상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보여줌으로써 LIG그룹은 이미지 개선을 위한 일말의 희망을 갖게 됐다.
사기성 기업어음(CP)을 발행한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는 구자원 LIG그룹 회장은 지난 13일 오너 일가가 사재를 출현해 올해 안으로 CP투자자들의 피해액을 모두 보상하겠다고 밝힌 뒤 6일 만에 그룹의 모태인 LIG손해보험을 매각하겠다고 발표했다.
오너 일가의 사재 출연으로도 피해액 전액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다는 판단에 따라 신속한 현금 확보를 위해 그룹 알짜기업 매각이라는 초강수를 단행하게 됐다.
LIG그룹 관계자는 “LIG손보가 그룹 유일한 유가증권시장 상장사이고 가장 큰 기업이기 때문에 매각이 가장 원활히 이뤄질 것으로 보여 결정한 것”이라면서 “최대한 신속하게 진행하기 위해 공개매각으로 결정했다. (구 회장도) 투명하게 하라고 당부했다”고 설명했다.
매각 대상은 6.78%의 지분을 보유해 최대주주인 구본상 LIG그룹 부회장과 0.24%의 지분을 가진 구자원 회장 등 특수관계인 16명이 보유한 1257만4500주(지분율 20.96%)로 시가로 환산하면 약 3600억원대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여기에 경영권 프리미엄을 더할 경우 시장에서는 실제 매각 규모가 최소 4400억원, 최대 63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LIG건설 CP를 샀다가 피해를 본 피해자는 약 700명, 피해 금액은 약 2100억원 규모에 달한다. LIG그룹은 올 초 2억원 이하 투자자 등 550여명에게 약 450억원, 지난 8월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투자자 50여명에 약 280억원 등 총 730억원을 지급한 바 있으며, 연말까지 나머지 1300억원 가량의 현금을 마련해 피해자에 보상할 계획이다. 일단 LIG손보 매각만 이뤄진다면 피해액 전액 보상 약속은 지킬 수 있게 된다.
구 회장은 발표 직전 임직원들에게 보낸 메시지에서 “LIG손보는 저와 임직원의 피땀이 어려있는 만큼 영원히 함께 해야 한다는 간절한 마음이 있었다”며 “그러나 ‘투자자 피해보상’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회사의 지속 성장을 위해서는 지분매각이 최선의 방안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됐다”도 깊은 회한을 밝히기도 했다.
LIG그룹은 조심스러워 하고 있지만 오너 일가의 사재출연과 핵심 계열사 매각을 통해 피해 보상이 이뤄진만큼 징역 실형을 선고받은 구 회장과 아들 구본상 LIG넥스원 부회장에 대한 감형으로 이어지길 희망하고 있다. 지난 9월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4부(김용관 부장판사)는 구 회장에게 징역 3년, 구 부회장에게 8년의 실형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당시 판결은 재계 내에서도 충격으로 받아들여진 바 있다.
또 다른 LIG 관계자는 “피해자 분들의 분노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고, 이번 결정으로 아픔이 조금이라도 줄어들었으면 하는 바람이다”면서도, “많은 고심 끝에 내린 결정인 만큼 재판부에서 구 회장 부자에 대해 선처를 내려주길 바라는 마음도 없지 않다”고 전했다.
바닥으로 떨어진 그룹 이미지를 회복시켜 사업을 다시 안정궤도에 올리는 일도 시급하다. LIG그룹은 LIG손보 매각으로 피해액을 충당하고도 상당한 액수의 현금을 가용할 수 있을 전망이다. 이 자금으로 오너 일가와 LIG그룹은 회사 이미지 개선과 사업 정상화에 투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범 LG가에 속하는 LIG그룹은 1959년 설립된 범한해상보험(현 LIG손해보험)을 모태로 한다. 1970년 LG그룹에 인수된 뒤 럭키화재, LG화재해상을 거쳐 1999년 11월 고 구인회 LG 창업주의 첫째 동생인 고 구철회 LIG그룹 회장이 LG화재를 계열 분리시키면서 독자적인 지배체제를 갖췄다. 이어 2004년 7월 방산업체 넥스원퓨처(현 LIG넥스원) 설립, 2006년 7월 건설업체 건영(현 LIG건설) 인수, 2008년 6월 증권사 LIG투자증권을 설립했으며, 현재 △금융(LIG손보·LIG투자증권·LIG투자자문·LIG자동차손해사정) △방산·첨단기술(LIG넥스원·LIG에이디피) △엔지니어링(LIG엔설팅) △서비스·IT(㈜LIG·LIG시스템) 등의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LIG손보가 떨어져 나가면 가장 큰 매출 비중을 차지했던 금융사업 규모가 줄어들어 LIG넥스원 등 제조업 중심으로 사업구조가 개편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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