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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쇼핑이 칠면조를 이긴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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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3-11-30 2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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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경제 워싱턴 특파원 홍가온 기자 =미국의 최대 명절인 추수감사절과 최대 규모의 할인행사가 펼쳐지는 블랙 프라이데이.
 
이제 이 두 특별한 날은 뗄레야 뗄수 없는 관계가 되어 버렸다. 미국인은 추수감사절 하면 블랙 프라이데이를 떠올릴 만큼 블랙 프라이데이는 미국인들의 생활 속에 깊게 자리 잡았다.
 
언론보도는 둘째 치더라도 당장 내 집 식구와 주변을 둘러보면 블랙 프라이데이가 얼마나 막강한 힘을 발휘하는지 알 수 있다.
 
이번 추수감사절에 딸 아이가 자기도 친구들과 함께 블랙 프라이데이를 맞으러 쇼핑몰에 가겠다고 해서 ‘특별히 살 거라도 있냐’고 물었다. 대답은 ‘노’.
 
미국 언론도, 일부 쇼핑객들의 경우 마땅히 살 것은 없지만 블랙 프라이데이 때만 되면 웬지 밤새 쇼핑몰 앞에서 기다려야 하고, 문이 열리는 순간 잽싸게 뛰어 들어가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을 느낀다며 일종의 ‘중독’ 증세를 보인다고 보도했다.
 
이러한 ‘블랙 프라이데이 중독자’가 많음을 알아 챈 건지 올해는 꽤 많은 유통업체들이 ‘전통’의 블랙 프라이데이, 그러니까 추수감사절 바로 다음 날이 아닌 추수감사절 당일 할인행사를 시작했다.
 
업체들은 영하 날씨 속에서 벌벌 떨며 매장 오픈을 기다리는 쇼핑객들이 안쓰러워 그랬다고 하지만,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한 상술임은 누구나 짐작할 수 있다.
 
실제로 지난해 블랙프라이데이 하루 전날 할인행사를 했던 업체들의 수입이 증가했다는 조사결과가 나왔고, 업체들마다 이러한 좋은 기회를 놓칠 수 없다는 계산이 올해에도 하루 일찍 시작하게끔 만든  것이다.
 
블랙 프라이데이는 그동안 적자를 면치 못하던 업체들이 추수감사절과 크리스마스 등 명절 연휴기간동의 반짝 세일을 통해 흑자로 돌아선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블랙 프라이데이 특수를 맛보려는 기업측과 평소에 갖고 싶었지만 돈이 없어 할인 기간만을 목빠지게 기다리는 쇼핑객들을 비난할 수는 없다.
 
하지만 해가 거듭할 수록 블래 프라이데이 때만 일어나는 사건사고가 강도를 더해 간다는 점이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매장 문이 열리자마자 뛰어 들어가 평소 갖고 싶었던 물건 상자를 집어들었는데 또 다른 사람이 동시에 붙잡아 벌어지는 싸움은 해마다 볼 수 있는 광경이다. 
 
하지만 아무리 갖고 싶어도 흉기를 휘두르거나 테이저건(전기충격기)까지 동원해 물건을 뺏으려 하지는 않았다. 올해는 싸움을 말리다 다친 경찰도 속출했다.
 
아무리 사고 싶은 물건이 있어도 쇼핑하는데 정신이 팔려 갓난 아이를 차에다 내버려 두고 줄을 서지는 않았다.
 
블랙 프라이데이로 인한 가정파괴도 심각한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미국도 추수감사절이 되면 멀리 있던 자식들이 부모를 보기 위해 고향집에 내려와 함께 칠면조를 먹으며 가족간의 정을 나누곤 했다.
 
그런데 이러한 모습들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추석 날 어머니가 힘들게 맛있는 저녁 상을 차려놨는데 자식들은 온통 텐트와 담요를 싸가지고 나가 밤새 쇼핑하고 오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온 가족이 한데 모여 따뜻한 정과 함께 나눠 먹던 칠면조를 과열된 쇼핑행태가 눌러 이겼다는 소리가 나올만 하다.
 
커다란 가전제품 박스를 들고 매장을 나서며 마치 전쟁에서 승리한 병사처럼 활짝 웃는 쇼핑객의 모습이 씁쓸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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