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아베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와 관련, 사상 처음으로 낸 정부 대변인 성명을 통해 "개탄과 분노를 금할 수 없다"고 강력히 성토했다.
이로써 경색국면을 벗어나지 못했던 한·일 관계는 나락으로 치닫게 됐다. 이에 따른 양국 간 정상회담 가능성도 더욱 멀어질 조짐이다.
주일본 미국대사관도 성명을 통해 "아베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에 실망했다"는 미국의 공식 입장을 밝혔다.
특히 현직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는 2006년 고이즈미 준이치로 당시 총리 이후 7년 만이다. 따라서 이번 참배가 양국 관계에 미치는 영향이 메가톤급 악재라는 평가다.
◆정부 "개탄과 분노 금할 수 없어"
전례를 찾아보기 힘들게 한·일 양국은 정상회담이 전혀 없는 한 해를 보냈다.
박근혜 대통령이 그동안 일본의 계속된 '정상회담 개최 구애'에도 불구하고 부정적 입장을 보여왔던 찰라, 이번 아베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로 양국 간 정상회담 개최는 극적인 반전이 없는 한 당분간 성사 가능성을 점치기 힘든 국면에 접어들었다.
정부 대변인인 유진룡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이날 성명 발표에서 "아베 총리가 그간 이웃 나라들과 국제사회의 우려와 경고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과거 식민지배와 침략전쟁을 미화하고 전범들을 합사하고 있는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 데 대해 우리 정부는 개탄과 분노를 금할 수 없다"고 밝혔다.
정부가 일본 정치지도자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문제와 관련, 외교부 대변인이 아닌 정부 대변인인 유 장관을 통해 입장을 발표한 것은 처음이다.
그동안 정부는 외교부 대변인 명의의 성명을 통해 이 사안에 대응해왔다. 이는 정부가 이 사안을 그만큼 엄중하게 보고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김규현 외교부 1차관은 이날 오후 대사 대리 역할을 맡고 있는 쿠라이 타카시 주한 일본대사관 총괄공사를 불러 우리 정부의 입장을 일본 측에 전달했다.
◆한·일 관계 개선 움직임 '올스톱'
일본의 책임 있는 정치지도자가 태평양전쟁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우리 정부의 기본 입장이다.
일본 자민당 내각의 2인자인 아소 다로 부총리 겸 재무상이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강행하자 지난 4월에 윤병세 외교부 장관의 방일을 전격 취소할 정도였다.
따라서 부총리와는 격이 다른 아베 총리가 참배한다는 점에서 정부 내에서도 "엄청난 외교적 파장이 있을 것"이라는 말이 흘러나온다.
외교부 당국자는 "참배하는 것을 보면 아베 총리가 대화를 하겠다고 하는 것이 과연 진정한 것인가 심각한 의문이 든다"며 "오늘 아베 총리의 참배로 인해 여러 가지 부정적 영향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본다. (향후) 발생할 수 있는 어떠한 결과에 대해서도 모든 책임은 일본에 있다는 것을 분명히 한다"고 말했다.
당장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해 물밑에서 진행되던 각종 움직임이 동결될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한·일 양국은 새 정부 들어 처음으로 차관급 전략대화를 갖기로 합의하고 일정을 최종 조율하고 있는 상태였다. 당초 이달 말로 추진됐던 전략대화는 내년 초에 여는 방향으로 한·일 양국이 대략 합의했고, 이와 함께 양국은 3년여 만에 안보정책협의회도 열기로 하고 일정을 잡는 중이었다.
진창수 세종연구소 일본연구센터장은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해 열심히 움직이는 상황에서 아베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에 간다는 것은 파장이 클 것"이라며 "앞으로 (아베 총리의 집권이 예상되는) 3년간은 양국 관계가 힘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중국도 즉각 반발
중국 외교부도 아베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대해 "역사정의와 인류양식에 공공연히 도전하는 행위로, 강력한 분노를 표시한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청융화 주일 중국대사는 이날 오후 사이키 아키타카 외무성 사무차관을 직접 만나 항의했다.
중국 언론은 아베 총리의 야스쿠니 방문 소식을 긴급으로 전하면서 야스쿠니 신사는 14명의 A급 전범이 합사된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이라는 점을 상기시켰다.
신화통신은 그동안 일본 각료와 의원들의 반복된 신사 참배로 일본의 야만적 침략에 고통받은 한국과 중국의 강한 반발을 불러왔음을 강조해 파고를 예고하기도 했다.
역사문제와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열도 문제 등으로 대립해온 중·일 관계도 이번 아베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로 급격한 냉각기에 접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한·일 정상회담 개최도 당분간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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