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이제는 '국민중심' 개헌 ①기본권 보장 강화] ‘국민’ 넘어 ‘보편적 인간’으로 '민생개헌'해야

  • 국제 인권 기준에 맞는 수준으로 전면 개헌…양성평등·아동인권 등 실질적 평등 구현

[그래픽=아주경제]




아주경제 주진 기자 = 대한민국 헌법이 지향하는 가치는 ‘민주주의 실현’이며 헌법의 목적은 ‘국민의 자유와 기본권 보장’에 있다. 그러나 헌법이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한 국민은 정작 개헌 논의에서 철저히 배제돼왔다. 개헌은 권력쟁취를 위한 ‘정치적 흥정’ 대상으로 전락했다.

지난 30여 년간 이어진 ‘낡은 헌법’을 고치는 일은 결국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달라진 시대상에 맞게 국민생활과 직결되는 기본권을 포함해 헌법 전면 개정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헌법이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기본권 수호와 공동체의 청사진을 제시하는 사회통합적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본질’에서 개헌의 논거를 찾아야 한다. 본지는 제68주년 제헌절을 맞아 국민의 공감대를 견인할 수 있는 ‘민생 개헌’의 방향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헌법의 궁극적 목적은 인간의 존엄을 보호하고 실현하는 것, 즉 기본권 구현이다. 그동안 개헌의 중심이 돼온 권력구조 개편, 선거제도 등은 이를 위한 도구일 뿐이다.

1987년 6월 이후 우리 사회는 엄청난 변화를 겪었다. 외환위기(IMF) 사태, 실업자와 비정규직의 양산, 빈부 격차 심화, 가파른 저출산·고령화, 세계화, 외국인 노동자 유입과 국제결혼 급증에 따른 다민족·다문화 사회화, 인터넷과 스마트폰 사용 급증으로 인한 정보화 사회화, 남북교류 확대 등 달라진 시대상과 사회상은 30여년 전 낡은 헌법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 됐다.

고도의 경제 발전과 높아진 민주주의 의식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 사회는 투명성, 공정성, 안전성,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포용성 등 공동체 의식이 취약하다. 보편적 인권, 기본권을 강화하는 것이 개헌의 주 방향이 돼야 한다고 헌법학자들은 입을 모았다.

헌법 제2장 ‘국민의 권리와 의무’는 국민의 기본권을 명시한 장이다. 헌법학자들은 ‘국민’, 즉 국적을 보유한 자, 내국민만의 기본권 보호로 국한된 문구를 보편적 ‘인간’으로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 사회는 이미 세계화 속에서 다민족·다문화 사회로 가고 있고, 수많은 외국인들이 대한민국 헌법의 효력범위 안에서 거주·생활하고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내국민 보호를 전제로 한 기존 헌법의 틀을 과감히 넓혀 외국인을 포함한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추구하는 개방된 기본권 보장으로 가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이 경우 제10조 뿐 아니라 12, 13, 16, 17, 18, 19, 20, 21, 22조 등이 모두 해당된다.

그 외 세금을 내는 국민에게 주어지는 참정권이나 사회적 기본권 등에는 국민 또는 대한민국 국민인 자로 명시해 기본권 주체를 이원화하는 것도 고려해볼 수 있다.

평등권 조항인 제11조 1항은 차별 금지 사유로 ‘성별’, ‘종교’, ‘사회적 신분’ 세 가지만 명시하고 있는데, 형식적 평등이 아닌 실질적 평등 구현이 현재의 평등 개념임을 감안할 때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들을 폭넓게 보호하기 위해서는 차별 금지 사유를 최대한 구체적으로 예시해야 바람직하다는 견해가 많다.

유럽연합 기본권 헌장 제21조는 “성별, 인종, 피부색, 종족 또는 사회적 신분, 유전적 특징 언어, 종교 또는 세계관, 정치적 또는 여타의 견해, 소수민족에의 소속, 재산, 출생, 장애, 연령 또는 성적취향을 근거로 어떠한 차별도 금지되어야 한다”고 기술하고 있다.

일부 여성계에서는 심각한 남녀불평등이 온존하고, 성평등 지수도 세계 최하위임을 감안해 가정·교육·노동에 있어 법적, 실제적 평등을 실현하기 위해선 평등권에 양성평등 조항을 신설하자는 주장을 꾸준히 제기해왔다. 장애(우) 차별 금지도 특수성을 감안해 독자적 조항으로 신설돼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평등권과 별개로 제34조 ‘사회보장’에 생활보호대상자 규정이 있는데 신체장애자(인)을 질병·노령 기타의 사유로 생활능력이 없는 국민과 동일선상에서 거론하고 있어 손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 밖에 요즘 우리 사회에서 아동 학대와 범죄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는 점에서 유엔아동권리협약을 참고해 아동에 대한 생존, 보호, 발달, 참여의 권리를 규정하는 아동 인권 조항을 신설해야 한다는 목소리에도 힘이 실리고 있다.

제19조, 제20조에 명시된 양심과 종교의 자유에 사상의 자유도 포함시켜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아울러 제21조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 역시 다양한 방식의 의사 표현을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다.

특히 제21조 제3항과 제4항에 명시된 ‘통신·방송·신문의 설립은 법률로 정한다’, ‘공중도덕’ ‘사회윤리’를 근거로 한 언론 기능 제한 예시는 권력 등이 언론 출판의 자유를 자의적으로 제한할 수 있다는 독소조항으로 꼽힌다.

또 급격한 정보화사회 진입으로 개개인의 정보 보호 중요성이 커지는 만큼 개인정보의 생산·보유·이용·열람·삭제·제공 등에 있어 당사자의 통제권과 결정권을 명확하게 규정하는 조항을 독자적으로 신설할 필요가 있다. 정보 소외 계층에 대한 정보접근권도 함께 설정해 정보 격차를 해소해야 한다.

노동의 권리와 관련해서는 제32조 제2항 “모든 국민은 근로의 의무를 진다. 국가는 근로의 의무의 내용과 조건을 민주주의 원칙에 따라 법률로 정한다”는 내용을 삭제해야 한다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사유재산제를 토대로 한 자본주의 사회이고, 헌법의 자유민주주의적 본질을 따져볼 때 국가가 국민에게 노동을 강요하는 것이 성립될 수 없다는 것이다. 또 근로라는 용어 역시 ‘부지런히 일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어 ‘노동’으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일부 헌법학자들은 납세와 국방의 의무 외 근로·교육의 의무는 헌법적 사항이 아니므로 삭제하고, 법률에서 해결해야 한다는 의견도 내놓고 있다.

또 모든 공무원의 노동 3권을 보장하되 고위공직자나 특수직역 근무자 등 공공적 책임이 요구되는 경우에 한해 예외적으로 제한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이밖에 안전권을 신설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지난 2014년 국회의장 직속 헌법개정자문위원회는 ‘모든 인간은 위험으로부터 안전한 권리를 갖는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신체와 정신적 온전성을 보호 받는다’ 등의 안전권 조항을 신설한 개헌안을 제시한 바 있다. 북한 주민의 탈북을 염두에 둔 망명권과 범죄 피해자의 인권보호 조항도 별도로 신설했다.

한편, 기본권을 제한하는 조항과 관련해서는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공공복리’는 과거 권위주의 시대 국민들을 억압하는 대표적 이유로 악용돼온 만큼 삭제하고, 보편적 헌법 가치인 ‘타인의 자유와 권리 보호’ ‘공동체 안정’ 등으로 대체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헌법학자들은 유럽인권규약을 참고해 헌법에서 보장하는 기본권을 최대한 국제 기준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오동석 아주대 로스쿨 교수는 "기본권 보장을 위해 국제 인권 기준에 맞는 법률 개정을 수반한 개헌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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