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정로칼럼]윔블던 대회와 리그렉시트

[김영우 동반성장위원회 전문위원]

윔블던 대회가 끝났다. 그동안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윔블던대회는 어느덧 140년의 전통을 지닌 최고의 테니스대회로서 권위는 여전하다. 윔블던은 잔디(lawn)경기장과 딸기 아이스크림, 그리고 흰색 운동복이 유명세를 더하는데 일조한다.

그중 선수들의 복장이 모두 흰색이어야 한다는 복장규정(dress code)은 많은 가십거리를 제공해왔다. 규정에 따르면 모든 참가선수는 머리부터 신발바닥까지 거의 완벽한 흰색(almost entirely white)을 착용해야 한다. 과거 유럽의 상류층이 테니스를 즐길 때 입었던 흰색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종전에는 4대 그랜드 슬램 대회에도 흰색 복장규정이 있었지만 1971년 US오픈을 필두로 줄줄이 흰색 복장규정을 폐지했고, 이후 메이저 대회에서는 선수들은 화려한 옷차림과 독특한 디자인이 눈길을 모았다. 윔블던에서는 여전히 겉옷은 흰색이어야 한다는 규정을 유지했지만 빨간 속옷을 입은 선수가 등장하게 되어 경기가 중단되는 일도 있었다. 한 마디로 권위에 대한 도전이었다.

이에 불만을 품은 정상급 선수들이 참가를 거부하기도 했지만 주최측의 복장 규정은 강화되어만 갔다. 복장이 규정에 맞는 지를 심의하느라 경기가 지연되면 관중들이 가끔 나체 스트리킹으로 항의하기도 했다. 하지만 윔블던은 속옷뿐만 아니라 신발창마저도 100%로 흰색이어야 한다는 등 10개 조항의 규정을 재작년 추가했다. 윔블던의 권위를 위해 꼭 필요한 규제라는 것이다.

최근 영국이 세계적인 주목을 받는 것은 또 있다. 바로 브렉시트 때문이다. EU 회원국들은 사람, 상품, 자본, 서비스 4가지 요소의 자유로운 이동을 허용하고 있다. 그런데 영국은 난민 때문에 일자리가 없어지니 사람의 이동을 제한하기 위해 EU를 떠난다는 것이다. 그러나 막상 국민투표가 통과되고 나니 다른 요소에 대해서는 깊이 고민하지 않았던 모습이 역력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런 분위기를 언론에서는 브렉시트를 후회한다는 의미로 리그렉시트(regrexit)라는 신조어로 표현하고 있다. 반면 브렉시트를 반대하던 EU집행부는 4가지 요소를 다 지킬 수 없다면 ‘어서 떠나라’는 입장으로 선회했다. 추가로 이탈이 예상되는 국가들에게 보내는 경고인 셈이다.
여기서 영국이 EU에 참여한 과정을 복기해볼 필요가 있다. 독일과 프랑스가 주축이 된 철강석탄공동체가 1951년에 설립될 때 영국은 애써 관심조차 두지 않았다. 그러나 세계 경제 질서가 미국으로 완전히 넘어가고 일본의 무서운 추격을 보면서 영국은 유럽경제공통체(EEC)에 가입했다. 이어 유럽경제가 급속하게 통합되면서 유로존으로 재편될 때 영국은 파운드화를 독자적으로 사용하는 예외적 지위를 얻었다.

한 마디로 EU에는 가입했으나 유로를 사용하지 않는 일종의 특별한 지위를 유지했던 것이다. 그러나 1991년 마스트리흐트 조약에 이어 국경이 허물어지는 솅겐조약이 체결될 때도 영국은 다소 느슨한 형태의 선택적 통합을 고집했다. 각국이 주권은 가지지만 경제 통합이 가속화되는 길을 걸었을 때도 영국은 자율성을 고집하다보니 EU와의 충돌이 잦아졌다.

경제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영국은 표를 의식해 내부의 목소리에 좀 더 주목했고 브렉시트라는 초강수가 일단 성공한 것이다. 그러나 시장의 반응은 냉담했다. 영국경제 자율성을 높이기는커녕 심각한 경기침체가 예상된다는 분석이 주류를 이루어 브렉시트는 포퓰리즘 정치의 폐해를 보여주는 사례가 되었다.

한편 집권당에서 누가 당수가 되더라도 영국이 쉽게 EU를 떠나지 못하고 회원국으로 남아 있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 때 영국의 지위는 브렉시트를 통해 EU의 균열을 가져 온 댓가로 종전과는 달라질 것이라고 본다.

앞에서 본 윔블던 대회는 1968년에서야 외국선수들의 참여를 받아들여 메이저 대회에서는 가장 늦게 오픈경기로 바뀌었다. 이때부터 윔블던 경기는 세계 최고 대회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까다로운 EU의 규정은 영국경제의 자율성을 손상시킨다는 영국인의 생각에는 이해가 간다. 하지만 EU라는 큰 울타리에서 벗어난 영국의 앞날은 결코 순탄치 않을 것이다. 오늘날 윔블던대회가 가장 권위있게 된 것은 가장 까다로운 흰색복장규정 때문일 수도 있다. 화려한 컬러 시대에 뒤떨어진 방향이라고 흰색복장규정을 없앤다면 또 하나의 리그렉시트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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