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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쓰레기 더미 속에서 생활하다 동주민센터 복지플래너 윤병도 팀장(오른쪽)과 신현형 주무관으로부터 발굴돼 주거환경 개선이 이뤄진 지갑순씨(가명)가 환하고 웃고 있다.[사진=강승훈 기자 shkang@]
아주경제 강승훈 기자 = "세상에나 새 집에 이사온 기분이었죠.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기분이 좋았어요. 당장은 허리가 아파 거동이 쉽지 않지만, 기회가 되면 힘든 이웃들에 내 행복을 고루 돌려줄 겁니다."
서울 성동구 성수2가1동이 지갑순씨(가명·84)와 아름다운 인연을 맺은 건 올해 6월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정신장애 3급 장애인 유철영씨(51)의 장애등급 재판정 시기를 알리고 복지상담을 실시하기 위한 방문이었다. 동주민센터 윤병도 생활복지팀장과 신현형 복지플래너는 쓰레기가 가득 찬 집안 광경에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신현형 주무관은 "복도는 물론이고 문을 열자 입구부터 곳곳에 천장 높이까지 각종 물건들로 빼곡했다. 그야말로 주거지가 '쓰레기 산'으로 덮였다는 표현이 옳다. 수 십개의 망가진 우산에다 가전제품까지 넘쳐나 너무나도 안타까웠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두 직원은 현관 앞에서 당황스러운 첫 인상에 신발을 벗고 들어갈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집에는 방 2개에 거실이 있었지만, 한 사람이 겨우 누울 수 있는 제한된 공간에서 어머니 지씨와 막내 철성씨(49) 등 아들 유씨 형제가 겨우 새우잠을 자며 생활했다.
이들 세 식구가 쓰레기 더미에 갇히게 된 것은 약 10년 전부터다. 철성씨가 어떤 물건이든지 버리지 못하고 저장해두는 '저장강박증' 증세를 보이기 시작한 때다. 하루도 빼먹지 않고 동네에서 매일 이것저것을 갖고 들어왔다. 그렇게 차츰 쌓이다가 어느 순간에 온 집안을 채웠다. 최근까지도 이런 행동은 이어졌다.
어머니는 잠시나마 불필요한 물건들을 내다 버리면서 아들 설득에 나섰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급기야 포기 상태에 이르렀다. 출가한 두 딸들 역시 먼 곳에서 사는데다 도움을 줄 형편이 되지 않았다. 지씨는 무릎 통증 등으로 걸음이 자유롭지 못해 집안에만 머물렀고, 장애를 가진 철영씨 또한 외부와 단절된 채 살아갔다. 그나마 막내는 난청으로 일반적 의사소통이 어려웠지만 공사장에서 막노동(일용직근로자)으로 힘겹게 가족 생계를 책임지고 있었다.
성수2가1동 주민센터는 자체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이들 가족에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먼저 집안의 쓰레기를 치우기로 정하고 수 차례 가족들을 설득했다. 초기에 경계의 눈초리를 보내기도 했지만 점차 마음이 열렸고, 결국 주민센터의 호의를 받아들였다.
여기서 지역사회의 협조도 큰 역할을 했다. 엄청난 양의 쓰레기를 정리하는데 관내 경찰기동대와 이웃 10여 명이 흔쾌히 두 팔을 걷었다. 지난 7월 29일 대대적인 청소와 함께 방역이 이뤄졌다. 이후 서울시 및 해비타트(Habitat)의 집수리 프로젝트와 연계해 장판, 도배, 단열, 전등 교체 등 전반적으로 새롭게 단장했다.
복지플래너와 방문간호사는 청결한 주거여건이 유지되도록 주기적으로 찾고 있다. 장기적 심리고립 방지 차원에서 정신건강증진센터 심리치료를 받도록 계속 독려 중이다. 이제 청결하지 못한 환경으로 파생된 건강 챙기기와 향후의 재발방지 관리를 위해 관심을 쏟고 있다.
윤병도 팀장은 "난청인 동생의 장애등급 판정을 안내해 빠른 시일 내 적절하게 여러 서비스가 제공되도록 하겠다. 더불어 철영씨가 장애인 재판정을 받아 등록이 마무리되면 기초생활보장수급 신청으로 이어지게 할 것"이라고 밝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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