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성현 한국상장사협의회 정책본부장
한국상장회사협의회는 한국거래소 유가증권시장에 상장한 750여개 회사를 회원사로 두고 있다. 필자가 맡은 주요업무 가운데 하나가 실무상담이다. 해마다 1만건이 훌쩍 넘는다. 상법, 자본시장법, 공시규정 등 복잡하고 어려운 법규 내용과 실무 절차를 물어온다. 상장사가 지켜야 할 법규는 많고 어렵다. 어떤 공시 담당자는 공시내용을 모두 입력한 후, 마지막 완료 버튼을 누르기 전에 십자성호를 긋고 기도를 한단다. 그냥 하는 농담이 아니다.
이렇듯 기업 구성원은 대부분 착실하게 법을 지킨다. 하지만 언론 보도에 비친 기업 이미지는 부정적인 것이 많다. 자연스럽게 기업은 개혁과 청산 대상이 된다. 정치인은 상법개정을 비롯한 규제강화 법안을 쏟아낸다. 그런데 이런 논의는 벌써 수십년 동안 되풀이돼 왔다. 법을 개정해서 해결될 문제라면 벌써 끝났을 것이다. 혹시 우리는 원인을 근본적으로 잘못 짚고 있는 것은 아닐까.
기업 자체와 개인적인 비위 사건을 구별하지 않은 결과다. 횡령이나 배임을 저지른 기업인에 대해서는 잘잘못을 분명하게 따져 책임을 엄격하게 물어야 한다. 하지만 현재 국회에 제출된 법안은 전체 기업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면서 모두 뜯어고치려 한다. 그것도 회사 입장에서 기본법인 상법 개정을 통해서 말이다.
지배구조 개선을 통해 기업투명성을 제고한다는 상법개정안 취지에는 원칙적으로 동의한다. 다만, 상장기업 전체, 나아가 거의 모든 회사를 대상으로 규제 강화에 나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특히 상장사는 기업공개 회사라는 점에서 강한 규제를 받고 있다. 현행 상법도 세계적으로 입법례를 찾아볼 수 없는 규정이 많다. 감사(위원) 선임 시 3% 의결권 제한 제도가 대표적이다. 일부 상법개정안은 여기에 더해 감사위원까지 분리 선출하자고 주장한다. 해외 투기자본에 의해 경영권이 위협받을 수밖에 없다.
상장기업 대부분은 중견·중소기업이다. 대기업은 14%에 불과하다. 나머지 86%가 중견·중소기업이다. 게다가 상장된 중견·중소기업은 상장기준을 통과한 알짜기업이다. 해외 투기자본이 군침을 흘리게 마련이다. 기업이 꾸준히 성장해야 소액주주도 성장할 수 있다. 중견·중소기업이 존속할 수 있는 경영권 방어제도를 먼저 도입해야 한다.
세상에 만능열쇠는 없다. 기업지배구조 문제도 마찬가지다. 특정 지배구조를 마치 정답처럼 정하기 전에, 우리에게 맞는 지배구조를 기업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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