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쿠르드자치정부(KRG)가 강행한 분리·독립 찬반 투표의 잠정 집계 결과 유권자 90% 이상이 독립을 찬성한 것으로 나타났다. 분리·독립이 오랜 숙원이었던 만큼 쿠르드족 내부는 축제 분위기지만 연쇄 독립 운동 가능성에 인근 중동 국가와 유엔 등 국제사회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알자지라 영문판, 영국 일간 가디언 등 외신에 따르면 25일(이하 현지시간) 치러진 KRG 독립 찬반을 묻는 주민투표에는 유권자 534만 여명 가운데 약 80% 이상이 투표에 참여한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현지 선거관리위원회는 출구조사 결과를 토대로 90% 이상이 찬성한 것으로 보고 있다. 투표가 마감된 오후 7시부터 개표를 시작, 72시간 내 최종 투표 결과가 나올 전망이다.
투표 결과는 법적 구속력을 갖지 않는다. 다만 찬성 다수로 통과될 경우 KRG는 주민들로부터 협상 권한을 위임 받아 이라크 중앙정부, 주변국과 함께 독립 여부를 협상할 수 있다. 독립 국가 수립을 오랜 숙원으로 삼았던 만큼 투표 직후 찬성 가능성이 높아 지자 자지구 수도 아르빌 등에서는 주민들의 자축 분위기가 조성됐다.
반면 이번 투표를 계기로 각국 내 쿠르드족의 분리·독립 운동을 자극할 수 있다는 우려에 따라 인근 국가에서는 군사적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국가 없는 세계 최대 민족'으로 일컬어지는 쿠르드족은 중동을 중심으로 2500만~3500만 명이 분산돼 있다.
일단 이라크 의회는 25일 긴급회의를 통해 KRG와의 분쟁 지역에 군대 파견을 요구하는 정부 권고안을 가결하는 한편 예고 없는 군사훈련을 단행했다.
터키는 KRG의 원유 수출용 송유관을 차단하고 하부르 검문소의 통행을 제한하겠다고 밝혔다. 하부르 국경은 KRG의 주요 대외 교역길이다. 지리적으로 터키, 이라크 중앙정부, 이란, 시리아에 접해있는 상황에서 터키가 국경을 막으면 이라크 쿠르드 자치구는 사실상 봉쇄된다.
터키에 머물고 있는 쿠르드족이 1400만 명에 달하는 만큼 경제 압박을 통해 독립 운동을 사전 차단하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이밖에 이란과 러시아도 등도 중동 국가 정상간 통화를 통해 KRG의 독립 찬반 투표를 '불법 선거'로 규정, 투표 결과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입장이어서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국제사회도 후속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 등에 따르면 미 국무부는 성명을 통해 "일방적인 투표는 쿠르드 KRG와 이라크 중앙정부, 주변국들과의 관계를 복잡하게 만든다"고 지적하면서 "이슬람 과격 무장단체인 이슬람국가(IS)의 격퇴를 위해 통일된 이라크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안토니오 구테헤스 유엔 사무총장도 "이번 투표가 중동 정세를 잠재적으로 불안하게 만들 수 있다"며 "이라크 중앙정부와 KRG의 대화와 타협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